왕은 아무와도 다투지 않는다.
현실적인 강한 정치를 강조했던 법가 사상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철학이 노장 사상이다. 특히 노자의 정치관은 그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무위·무욕·무지와 관계된다.
자연적 질서에 거스르는 인위적 조작은 나라를 더욱 위기로 몰 뿐이고, 그렇게 하여 발생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인위적 조작을 만들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왕을 강과 바다에 비유한다.
강이나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낮게 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 위에 있고 싶으면 말을 낮게 하고 백성들 앞에 서고 싶으면 스스로 뒤에 처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앞에 있어도 거추장스럽게 여기지 않으며, 천하의 모든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추대해 준다. 아무하고도 다투지 않기 때문에 그와 대적할 자가 없다. - 도덕경 중에서 -
천하만물은 자연을 따라 스스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도 소박하게 자연의 도를 따르면 화평할 수 있다. 그러나 욕심과 간사한 지혜를 농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가 싸움과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노자는 <대도를 버리기 때문에 인의가 없고, 지혜가 나오기 때문에 큰 거짓이 있게 마련이다>고 하였다. 즉, 인간의 지혜나 도덕윤리 등의 인위적 지배 형태는 인간사회를 더욱 악하게 만들 뿐이다.
법과 제도를 엄하게 하면 범죄가 줄어들 것 같으나 실은 더 큰 범죄가 발생하고 따라서 법을 더 강화하게 되고, 다음 번에는 범죄자는 엄한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더 교묘하고 음성적인 범죄를 꾸미게 된다.
결국 범죄를 없애는 길은 인간이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무시한 채 위정자는 무위자연을 버리고 더욱 인위적인 조작을 하고자 백성의 재물과 생명을 요구한다. 따라서 백성은 폭정에 시달리게 되고 고통은 날로 쌓여가게 된다.
위정자가 세금을 많이 거두니 백성이 굶주리고 위정자가 지나치게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도리어 잘 다스리지 못하고 위정자가 자신의 생명은 중시하고 백성의 생명을 경시 하기 때문에 백성이 가볍게 죽는다.
-도덕경 중...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백성을 대상으로 삼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절차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잇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자연을 거여갛기 않는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을 놔두라는 초월적 방법론이 있을 뿐이다. 강력한 정부, 힘있는 군주의 허상을 버리고, 진정으로 강해지는 길을 보라는 그의 충고가 의마하는 것이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지라도, 법가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는 철학적 모색임에는 분명하다.
참고 자료
동양 문화와 노자(老子)
과학 만능을 구가해 온 현대인들은 이제 그 과학을 낳게 한 실증주의적 철학에 식상해 하고 있다. 흔히 말하기를 「동양 문화의 근저에는 없는 것의 얼굴을 보고, 소리 없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무엇이 숨어 있다」고 한다. 오늘의 세계를 이루는 데 앞장서 온 서양인들이 동양 문화에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섭취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이 얼굴 없는 것의 얼굴을 보고 소리없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을 최초로 가르친 철인이 바로 노자다.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재난들은, 인간이 필요한 일을 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온갖 불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데서 생긴다.」고 말하고, 「사람이 만일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를 행하게 되면, 단순히 그 개인적인 재난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도시에 온갖 형태의 정치 속에 원래부터 있는 재난까지도 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인류 문명의 비뚤어진 길과 위험성을 경고하여 인간의 불필요한 노력의 철저한 포기를 가르치고 무위의 편안한 사회에 인류의 참된 행복을 주장한 것도 노자가 그 최초의 철인이었다.
노자에 있어서 <얼굴 없는 얼굴. 소리 없는 소리>는 그의 철학의 바탕이 되는 「도」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도란 것은, 얼굴이 있고 소리가 있는 모든 것이 거기로부터 생겨나고 거기로 다시 돌아가는 이 세계의 근원에 있는 궁극적인 실재였다..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은 생명변화를 되풀이하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도는 만물의 생멸과 변화를 초월하여 요구하고 무한하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유구무한한 실재인 도에 근원적인 자각을 가지고 그 얼굴 없는 얼굴을 지켜보고 그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자신이 본래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하면 좋은 것인가 인간이 참다운 의미에서 산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분명해진다고 가르치는 것이 노자 철학의 근본이다. 그는 이를 위해 도가 어떤 실재인가를 갖가지 말로써 설명한다. 인간의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도라고 전제하면서도 혹은 시적인 표현으로 혹은 상징적 비유적인 말로써 혹은 역설적 부정적일 말로써 이모저모로 설명한다.
도가의 효시인 노자와 유가의 효시인 공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상가인데 어떻게 공통점이 있을 수 있냐구요? 그것은 다름 아는 중용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용의 주요한 논거로서 어떠한 움직임이 극단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는 자연 불변의 법칙을 들고 있습니다."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말라"는 것이 두 사람의 일치된 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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