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유기농업

[유기농산물 현주소](③-1)국제화 기로에 선 국내 유기농가

날마다좋은날 2005. 11. 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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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농산물 현주소](③-1)국제화 기로에 선 국내 유기농가
세계일보. 2004. 9.14.

내년부터 코덱스 가이드라인 비상

공장형 축분쓰면 유기농 인증 못받아
값비싼 외국산 사용땐 경쟁력 상실  




   ◇14일 친환경 양돈농장인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화현축산(대표 노창수)’의 분만축사에서 한 직원이 새끼를 난 어미 돼지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사진위> 축산분뇨 발효기가 축사에서 거둬들인 돼지의 생 분뇨를 발효시켜 유기질 비료를 만들고 있다.  
  
내년부터 유기농산물 인증에 현재보다 더욱 강화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 기준이 적용됨에 따라 유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코덱스 기준에 따르면 절반 이상(54.7%)의 국내 유기농가가 퇴비로 써온 ‘공장형 축분’을 사실상 이용할 수 없어 농가들에는 대체 퇴비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어떻게 바뀌나=그동안 국내 유기농산물 인증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썼느냐만 따졌을 뿐 퇴비의 성분은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부터 코덱스 지침에 따라 유기축산에 의한 배설물이 아닌 공장형 축분을 퇴비로 쓰면 유기농산물로 인증받지 못한다. 공장형 축분은 일반농산물로 만든 사료와 수의약품에 주로 의존해 좁은 축사에서 소나 돼지, 닭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축산농가에서 나온 배설물이다.

코덱스와 정부는 그동안 공장형 축분이 항생제나 합성항균제, 성장촉진제, 호르몬제 등 사람에 해를 입히는 수의약품에 오염됐을 뿐 아니라 일반농산물의 잔류농약이 가축 체내에 쌓일 위험이 크다며 사용 제한을 권장했다. 그러나 일반 농가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값이 싼 데다 효과도 뛰어나 농작물 등과 섞어 퇴비로 애용해왔다. 앞으로 국내에서 유기축산 인증을 받으려면 예방 목적으로 수의약품을 투여해서는 안 되며, 가축에 유기농산물로 만든 유기사료를 40% 이상, 무농약농산물을 50% 이상 먹여야 한다. 다만, 가축이 병에 걸렸을 때는 한시적으로 수의약품을 투여할 수 있다.

◆유기농가 현실은=문제는 국내에서 유기축산 인증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내 유기농가들은 유기축산 농가가 인증을 받고 축분을 공급하길 기다리거나, 축분이 아닌 코덱스 기준에 맞는 다른 퇴비를 구하거나, 혹은 외국의 유기사료를 사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 5월부터 친환경축산직불제 시범사업이 시행된 상황에서 그보다 한 단계 위인 유기축산 농가의 탄생을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요원하다는 게 농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중국 등 땅 덩어리가 큰 나라와 달리 농산물 재배 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에서 축분을 대체할 만한 다른 퇴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연계조직인 ‘한살림’ 생산자모임의 배영태 사무국장은 “질소가 많은 작물인 헤어리베치를 논에 심어 그 대안을 찾으려고 해도 벼 수확 후 파종시기를 맞추기 힘들어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며 “(유기농가에서) 한두 마리 소를 키우자는 제안도 나오긴 하지만 그것으로 필요한 축분량을 얻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흙살림’의 유병덕 인증팀장은 “대규모 축산 농가의 축분을 퇴비로 안 쓰면 수질오염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발효시켜 완숙퇴비로 쓰는 방법이 우리 실정에 맞다”며 “항생제나 호르몬을 쓰지 않는 친환경, 순환적인 축산농가의 분뇨를 유기사료로 인정하는 등 우리식 코덱스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기축산의 미비로 결국 외국산 유기사료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단체들은 국내 사료보다 2배 이상 비싼 비용 부담과 가뜩이나 수입 유기자재가 판치고 있는 국내 시장이 외국산 유기사료에 잠식당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농복구회’의 이기송 부총재는 “사료회사에 외국산 유기농원료 등을 배합, 유기사료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더니 공장라인 증축, 비싼 원료값 등을 이유로 일반 사료에 비해 2.5∼3배 비싼 가격을 불렀다”며 “국내 유기농업 보호 차원에서 정부의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유기농산물 인증 전망에 대해서는 농림부와 농가측 입장이 엇갈린다. 농림부는 현재 무농약 전환 계획을 갖고 있는 농가가 1% 정도에 불과해 대부분 대체 퇴비를 이용,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생활협동조합의 김창근 수도권연합 부장은 “코덱스 기준의 엄격성으로 상당수 국내 유기농산물이 무농약 수준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황정미·민병오·황계식·이강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