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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흙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날마다좋은날 2005. 11. 3. 08:26

"흙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흙을 등지는 농심

 

단국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 정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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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91년)에 60여만명의 농민이 조상대대로 일궈온 흙을 등지면서 농촌을 떠났다. 이제 농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6백여만명, 나이 많은 사람들과 부녀자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다. 돌보지 않아 묵혀 있는 논과 밭이 6만7천여 정보였고, 금년에는 10여만 정보가 유휴농경지로 남아있을 것이란 예상들을 하고 있다. 1백76만여 농가중에서 1백40여만 농가가 농사를 이어 지을 젊은이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 농촌마을에 애기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소리가 몇년전부터 나오고 있다. 수백에 달하는 농촌국민학교가 폐교되었고, 농업고등학교는 지원자가 없으니 아예 개명하여 공업계 또는 실업계 고교로 전환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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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태어나 70세까지 산다면 날수로 떠져 2만5천여일이 된다. 매일 세번씩 일정량을 먹어야 하니 대략7만5천번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태고 이래로 지금까지, 아마도 영원히 투쟁은 계속되리라. 먹거리가 무엇인가? 바로 생명체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이 서로 먹히고 먹으며 생존해 가는 것이다. 수백만의 생물종 중에서 사람이라고 하는 종만이 유일하게 먹거리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동물이다. 바로 생명체를 가꾸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생명체가 어디에서 가꾸어 지는가? 바로 흙이다. 사람들은 수천년동안 그 흙에서 생명체를 가꿔 더 많은 결실을 얻으려 온갖 지혜를 모아서 살아왔다.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탐욕이 끝없으니 더 많은 먹거리를 거둬들이기 위해서 생명과학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켜 왔다. 그 기술이란 무엇인가? 다른 생명체들을 못살게 하는 기술인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고 앞으로 그러한 기술개발에 꾸준히 정성을 들일 것이다.

   지구상에는 사람이라고 하는 동물이 우점종이 됐으니, 사람이외의 다른 종들은 소멸되어 갈 수 밖에 없고, 그 속도가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다른 생명체들이 더 많이 소멸되리라.

   사람의 먹거리 즉 생명체를 가꾸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농민인 것이다. 수천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이 땅을 파고 씨를 뿌리는 것이다. 흙의 기(氣)와 하늘이 기(氣)를 조화롭게 받아 들여 열매가 잘 맺히도록 가꾸는 사람이 농민이다. 조상대대로 그렇게 해온 그 흙이 건강해야 자손만대에 건강한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농민들은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꾸던 일을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가꾸므로 흙을 가꾸는 지혜는 깊어간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몸소 깨닫게 되고, 아울러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동녁이 밝아 오면 농민은 들로 나간다. 그곳에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체가 별탈이 없었는지 보살피러 나가는 것이다. 밤새 별일 없음을 확인하고 하늘에 대하여 감사나는 마음을 갖는다. 생명체가 뿌리내려 살고 있는 그곳의 흙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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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흙이 무엇인가? 한줌의 흙속에 수천 수억의 생명체가 있으니, 역시 흙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다. 사람도 생명을 다하면 그 흙으로 돌아간다. 유라시아대륙 동쪽끝에 토끼꼬리 모양으로 붙어 있는 22만평방킬로미터의 한반도에 수십억의 우리 선조들이 살다가 그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하니 흙속에 조상의 숨결이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정기가 그 흙속에 배어 있는 것이다. 흙속에 뿌리내려 조상의 숨결을 들여 마시고, 민족의 정기를 이어 받으며 자라는 생명체들 - 벼??보리??콩등, 오늘에 사는 우리들의 먹거리이다.

   여름에는 벼나 콩씨를 뿌려 가꾸고, 가을에는 보리를 뿌려 가꿔야 흙이 건강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을 농민들은 알았다. 그리고 사람이나 동물이 먹고 배설하는 배설물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흙이 건강하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다른 사람이 가꾸는 생명체가 건강해야 나의 생명체도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안다. 그러하니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남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사소한 이익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하늘에서 빛과 생명수를 내려주어 생명체가 잘 자라게 해 준다. 때로는 하늘에서 너무 많은 비를 쏟아 붓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가 한창 번성할 때인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 생명체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하늘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려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농민들은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67%가 산지인 한반도에 우리조상들이 살아오면서 골짜기 마다 계단을 만들고 무너지지 않게 축대를 쌓으며 물을 가두어 벼를 재배하게 된 것이다. 하늘이 노할 때를 대비하면서 기본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지형에 맞게 생명체가 뿌리를 내려 살게 하고, 쏟아 붓는 빗물이 더 노하지 않게 가두어 두려고 하니 지세에 맞게 논두렁을 만들게 됐고, 그래서 논두렁이 굽어지게 된 것인즉, 하늘의 노하심을 조금이라도 달래 보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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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잘 살게 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됐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으며, 편안하게 힘들이지 않고 사람대접 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하늘을 두려워 하고 흙의 고마움을 느끼며 생명체를 가꾸면서 사는 일이란 고달픈 일이다. 내가 낳은 아이를 보살피듯이 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농(農)자 붙은 업(業)이란 그래서 기피하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 영위해야 할 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흙을 건강하게 하여 생명의 결실을 수확, 좀 더 풍요롭게 잘 살아 보려 발버둥 쳐봐야 얼굴에는 깊게 골패인 주름살만이 남고,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업수여김을 받기 십상이고, 내새끼 돌보듯 생명체를 가꿔봐야 쓰레기가 되어 버림받는 신세가 되기 다반사이다.

   하늘이 두렵고, 흙에게 미안하며, 조상뵙기가 송구스러우나 어쩔수 없이 조상대대로 내려 오던 그 터전, 그 흙을 등지지 않을 수 없다. 생명체를 가꾸는 농심을 가진 농민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 드는 것이다.

   농심이 떠나고 있는 골짜기의 논과 밭에는 잡초가 우거지기 시작한다. 논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늘의 노하심을 달랠 방도를 수천년 마련해 왔는데도 방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하루 1백mm이상의 비가 내릴때가 있다. 그때마다 논두렁이 굽은 골짜기의 논들이 잘도 다스려 줘서 하늘의 노여움에 대한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한 것이다. 하늘이 더욱 무서워진다. 언제 어느곳에 재앙이 내리게 될지 두렵기만 하다. 앞으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루게 될까?

   농심이 흙을 등질수 밖에 없으니, 하늘을 두려워하고 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점점 잃어가게 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쪽으로 치닿고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없어지고 있다. 반생명적인 작태를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 남의 생명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끔 됐으니, 입에 담기도 두려운 범죄가 발생한다. 내생명도 부지하기 어렵게끔 환경이 주어지니 청소년의 달이며,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5월에 스스로 목숨을 끓어버리는 청소년들이 속출한다. 그런가 하면 내 생명을 보존키 위해 두겹 세겹의 벽을 쌓으려고 안간 힘을 쏟아 붓는다. 이웃이 멀어져간다. 나만이 잘 살려고 헤매게 된다.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급기야 집단이기주의로 발전하여, 이상태로 가다가는 인간들의 종말이 곧 도래하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인간들의 탐욕이 극에 달해 가면서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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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땅에서 나는 먹거리를 가지고는 30%미만 밖에 자급이 안된다. 남의 땅에서 자란 먹거리를 가지고 우리들의 배를 대부분 채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들의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결과가 초래되도록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조상 숨결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꼴이다. 점점 제 땅, 제 민족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혼을 몽땅 남에게 내주고 있으며, 민족정기의 소멸을 재촉하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7천만 동포가 수천년 동안 보금자리를 틀어 살고 있는 이 산하를 어떻게 가꾸어야 대대후손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먼저 농심을 되살리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자연스럽게 생명운동이 전개될 것이다. 내가 있고, 네가 있으며, 그래서 우리라고하는 생명공동체의 의식이 높아질 젓이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추진하게 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모이게 하는 정책도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노하심을 달래기 위해 쌓아 놓은 산골짝의 논둑을 더욱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방도가 나올수도 있을 것이다. 흙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식물??동물??사람이 같이 어우러져 사는 지혜가 과학기술과 접목이 되어 나올 것이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사니 좁은 농토를 가꾸면서도 소득을 올리수 있는 대책도 나올수 있을 것이다. 생명체를 가꾼 사람들이 모여 생산물에 대한 부가가치를 높혀줄수 있는 정책이 도출될 수 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사람??동물??식물을 함께 가꾼다는 것이니, 근본적으로 범죄를 없애고, 환경을 보전하는 방책을 찾고, 윤리??도덕을 확립하여 나라가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흙을 등지지 않게끔 농심을 더욱 가꾸어 나가려는 노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단대신문 논단

출처 : 친환경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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