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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어 가는 대안농법 슈타이너와 생명역동농법

날마다좋은날 2015. 9. 14. 08:56

함께 만들어 가는 대안농법

슈타이너와 생명역동농법

글 / 장 길 섭·농부, 풀무학교 교사


** 이 글은 <녹색평론>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저자의 동의 아래 2회에 걸쳐 월간이장에서 소개되었다.(2004. 10)


 

정농회와 슈타이너 농업 강좌의 인연

귀농한 지 3년째 되던 1995년 1월, 정농회 정기 연수회에서 생명역동농업에 관한 강의를 처음 듣게 되었다. 프랑스인으로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여 일본에서 생명역동농업을 연구·실험하고 있는 ‘피리오 도니’라는 농부가 칠판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분필로 우주의 별들을 그려 보여 주며 하루 종일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오재길 선생이 통역을 했는데, 너무나 생소한 내용인지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우리 전통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인데 외국 것을 또 들여 와 배울 이유가 뭐냐며 투덜대는 회원도 있었고, 진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반응하는 회원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전에 국내에 소개된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어 보려고 끙끙대던 경험이 있어서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피리오 도니 씨의 강의가 끝나고,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정농회가 새롭게 지향해야 할 농업 형태로서 생명역동농업을 도입하여 연구·실천하자는 오재길 선생의 제안이 별다른 논란 없이 받아들여져, 1995년 1월 이후 생명역동농업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우선, 유럽에서 발간되고 일본에서 재편집된 『생명역동농업 농사력』을 들여 와 1995년부터 해마다 번역하여 농사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루돌프 슈타이너가 독일 농민들을 대상으로 1924년 6월 7일부터 16일까지 열흘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생명역동농업의 근본 원리를 강의한 『농업 강좌』의 번역에 착수했다. 번역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7년만인 2002년 1월에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루돌프 슈타이너의 농업 강좌』라는 제목을 달고 우여곡절 끝에 불완전한 대로나마 우리말 번역본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보다 꼭 100년 먼저 태어난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나는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국내에 간략한 전기가 번역되어 나와 있고 슈타이너의 책이 몇 권 나와 있지만, 300여 권이 넘는다는 그의 전집 중에서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은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슈타이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나로서는 다만 지난 7년 동안 생명역동농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농법을 제대로 실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농업 강좌』에서 설명된 내용이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늘 의문을 품으며 농사를 지어 왔고, 또 반복해서 여러 번 『농업 강좌』를 읽어 본 경험에 의지해서 이 책에 대하여 어설프게나마 요약·소개해 보려고 한다.


『농업 강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보고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은 세 가지 정도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인간과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농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 또는 관점이 필요한데, 그것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그 세 가지를 요약한다면 “첫째, 농업을 지구 안에서만 한정하여 볼 것이 아니라 우주까지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단위 농장 안에서 모든 것을 순환·자급해야 한다. 셋째, 단위 농장 안에서 생물 다양성을 최대한 드높임으로써 생태적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과 우주적 시각

첫째로 농업을 우주까지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은 슈타이너가 시종일관 현대 과학과 현대 농업이 근거한 방법론을 문제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 과학은 ‘현미경적 시야’로 사물을 전체의 맥락에서 분리해 내고 이것을 다시 조각내서 늘 죽은 시체만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농업의 경우, 농업 또는 식물의 성장을 단지 땅과 영양소 등 물리·화학적 요소에 한정시켜, 다시 말하여 지구 안에서만 한정시켜 본다는 점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편협한 현대 과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현대 농업의 결과,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농작물의 생명력은 점점 쇠퇴하고 영양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농작물은 더 이상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고, 20세기가 지나지 않아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슈타이너는 말했다. 슈타이너가 보기에 이것은 단지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적인 문제’였다. 농업에는 정신적·영적·우주적인 세계에서 오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데, 현대 과학은 이 사실에 무지하고 따라서 당면한 농업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업 강좌』에서 다루어진 것은 어떤 조건에서 여러 종류의 동식물이 잘 성장하는가, 또 어떻게 퇴비를 사용하고 잡초와 병충해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슈타이너는 우주적·정신적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면서, 식물의 성장에는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가 총체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슈타이너는 농업을 전체 우주의 한 부분인 땅·식물·동물, 그리고 인간이라는 요소를 가진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고, 인류가 이 우주와의 전체적 관련 속에서 농업을 새롭게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생명과 함께 자연도 소멸되고 퇴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과학은 현미경적·부분적 관점으로 인해 자연과 농업을 올바로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농업에 작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정신적·영적 관련 요소에 무지할 수밖에 없는 반면, 정신과학적 관점(인지학적 관점)은 전체적·총체적으로 진정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 과학의 좁은 시야로는 볼 수 없는 농업에 작용하는 우주적·정신적 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태양과 달의 빛과 온기가 작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태양계의 모든 행성로가 태양계 밖의 항성에서 오는 별 기운들도 농업(여기에서 농업은 식물, 동물, 인간, 곤충, 광물 등 자연의 살림살이 전체를 포함한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별 기운들이 농업에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농업에서 농토를 개량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규산과 석회가 이것을 매개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볼 때,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수성·금성·달(내행성)의 기운은 석회가 매개하여 식물과 동물이 살아가는 데 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지구 바깥쪽에서 공전하고 있는 목성·화성·토성(외행성)의 별 기운은 규산이 매개하여 동식물에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이 때, 공전 주기가 짧은 내행성들은 주로 일년생 식물이나 사는 기간이 짧은 식물에 영향을 미치고, 공전 주기가 긴 외행성들은 나무와 같은 다년생 식물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러한 태양계 내의 별들과 태양계 밖의 별들의 영향 전체를 한 마디로 ‘우주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이러한 우주 기운이 땅에 잘 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어떤 하나의 씨앗에는 특정한 천체의 위치가 영향을 미친 특정한 형태, 다시 말해서 운동하는 전 우주의 한 순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를 들면, 사과를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꼭 목성(기운)을 먹는다는 것이고, 자두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가 토성(기운)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만든 것이 ‘생명역동농업 농사력’인데, 이것은 특정한 순간의 별자리들이 곡물과 과일·엽채류·근채류·꽃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관찰하여 파종·정식·수확 시기를 적절하게 알려 주는 구실을 한다. 농사력과 함께 중요한 것이 이른바 ‘예비제’인데, 이것은 정신적 요소를 땅에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다.


농사에는 무엇보다도 질소가 중요한데, 자연의 질소에게는 네 형제가 있다고 한다. 이 네 형제도 질소와 마찬가지로 농업에 아주 중요한데, 수소·산소·탄소·유황이 그것이다. 질소는 별 기운이라고 부르는 정신을 실어 나르는 운반자고, 산소는 생명 기운을 실어 나르는 운반자다. 유황은 정신의 전달자고 탄소는 형태를 만드는 조각가다. 수소는 형태, 정신, 별 기운을 우주로 다시 실어 가서 풀어 주는 존재다. 자연 속에서 위에 든 다섯 원소는 식물과 동물의 형태를 만들고, 성장하게 하고, 정신을 실어 나르고, 그것을 다시 해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거름을 땅에 넣어 준다는 것은, 사람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활기를 얻고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땅에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농사를 지을 때는 좋은 퇴비를 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소와 같은 위장이 긴 동물에게서 얻을 수 있다. 이 동물의 배설물 속에는 생명 기운과 별 기운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우리가 농경지에 퇴비를 넣어 준다는 것은 생명 기운과 별 기운을 땅에 주는 것이다.


암소 뿔 속에 암소 똥을 넣어 겨울 동안 땅 속에 묻어 두면, 긴 겨울 동안 모든 생명 기운이 고도로 응축되어 뿔 안에 있는 똥 속에 들어가 모인다고 한다. 이것이 ‘소똥 예비제’인데 이것을 따뜻한 물에 풀어서 논밭에 뿌리면 땅을 더욱 기름지게 만들고 풍부한 수확물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자연이 하는 일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농장은 하나의 생명체

두 번째로 농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단위 농장 안의 모든 것을 순환·자급해야 한다는 내용은 다음에 인용하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