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돌은 방바닥 밑으로 불기운을 넣어 방을 덥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지금은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온 불편한 문화유산 정도로 치부되고 있지만 가까이 있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 온돌은 한글·금속활자와 함께 우리 과학문화의 정수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보물이다.
최근 온돌과 관련 두 가지 굵직한 뉴스가 있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굴된 발해시대의 온돌 유적과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국제온돌학회 소식이다. 전통 온돌 원리를 이용한 건강 의료 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온돌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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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자연환경생태건축연구소에서 열린 여름 온돌학교의 실습. photo 국제온돌학회
- 학계에서
“발해는 우리땅이란 생생한 증거”… 고구려 전통 온돌 사용
온돌학회 세미나 “윗목 아랫목 원리 아파트에 도입” 제안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0월 16일 러시아 연해주의 9세기 발해 성터 유적에서 고구려 전통을 계승한 발해의 전형적인 온돌 시설을 갖춘 대규모 건물지가 발굴됐다고 밝혔다. 발해 수도의 궁성(宮城)에 비견되는 ‘왕성급’ 유적지로 꼽히는 이곳은 블라디보스토크 동북쪽 360여㎞ 지점, 우수리강 상류에 위치한 ‘콕샤로프카(Koksharovka)-1’ 성터다.
가장 긴 동쪽 벽의 길이가 650m, 서벽 340m, 남벽 250m, 북벽 405m 등 전체 성벽 길이가 1645m에 달하고, 면적은 16만㎡에 이르는 콕샤로프카 성터 중 이번에 발굴된 곳은 평지성(平地城)의 북쪽 부근. 모래와 점토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대지를 1m 이상 높게 조성한 대형 건물지에서 한자로 ‘곡(曲)’ ‘유(由)’자 형태의 온돌 구조가 발견된 것이다.
아궁이 두 개에서 각각 시작된 두 개의 고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설치됐으며 북쪽 벽 중앙에서 한데 모여 건물 밖에 있는 커다란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크기는 동서와 남북으로 각각 10m 정도다.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寧安)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나 지린성 허룽(和龍)의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에 위치한 서고성(西古城)처럼 발해 왕성의 궁전 건축물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온돌 양식이다.
‘온돌 생활’이 한민족의 전통 생활양식인 점으로 미뤄볼 때 콕샤로프카의 유적은 발해가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했고 우리 조상들의 세력 범위가 연해주 우수리강 상류 일대까지 미쳤음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는 자료인 셈이다. 그동안 발해를 말갈왕조로 간주해 온 중국·러시아 학계의 논리를 일축하는 근거다.
하루 뒤인 10월 17일, 전남대에서는 국제온돌학회의 학술대회가 열렸다. 2002년부터 시작해 벌써 일곱 번째를 맞는 행사다. 올해 주제는 ‘전통 온돌의 계승과 현대적 이용’. 찬란한 우리의 전통 구들 문화를 계승하고, 알리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자리다.
첫 발제자는 방학봉 옌볜대 교수(발해사 연구소장). 방 교수는 ‘발해 난방시설 유적의 재해석’에서 “발해 유적의 조사 발굴 결과, 상경용천부 궁성 안의 제4궁전 본전 등 29개 발해 난방시설 유지 가운데서 구들 시설이 있는 유지가 28개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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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해의 온돌 유적이 발굴된 러시아 연해주의 콕샤로프카 성터. photo 조선일보 DB
- 학술대회는 온돌의 현대적 이용에 대한 연구 발표가 주를 이뤘는데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의 김성완 박사는 ‘공동주택의 건식 온돌시스템 개발’에서 모르타르를 사용하는 기존의 습식 방식 대신 시공이 간편하고 위 아래층 사이의 소음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건식 온돌(pre-fab floor system)과 이중바닥 온돌(double floor system)의 개발 사례를 짚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설치된 대부분의 온돌이 모르타르층을 시공하고 마감하는 반면, 건식 온돌 시스템은 단열 완충층과 고무 방진재, 아연 도금 강판 위에 최종 마감재를 시공하는 형식이다. 이중바닥 온돌은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OA 플로어 제품을 이용해 형강 구조체 위에 바닥타일(판넬)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조동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환경연구실장의 ‘공동주택의 윗목·아랫목 온돌시스템 적용성 평가’ 연구도 주목 받았다. 전통적인 윗목·아랫목 개념을 현대적 공동주택에 도입해 보자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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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0월 17일 전남대에서 열린 국제온돌학회 학술대회.
- 열 손실이 많은 창 주변에는 상대적으로 좁게 설치하는 식으로 배관의 간격을 조절해서 윗목·아랫목을 구성하는 방법과, 하나의 공간을 두 개의 난방 구역으로 나눠 두 개의 배관망을 구성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배관망을 따로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윗목과 아랫목에 공급되는 온수의 온도를 다르게 하는 것으로 아파트의 경우 발코니에 아랫목을 적용하고 거실에는 윗목을 적용하면 한층 효과적인 난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제온돌학회장인 김준봉 베이징공업대 교수는 친환경 생태건축에서 온돌 시스템의 효과와 적용 방법에 대해 짚었다. 온돌은 원적외선 방사 효과에 따라 물의 분자운동이 활성화 되어 인체의 세포운동을 촉진시키며 복사열의 전달과정에서 먼지와 진드기가 공기를 타고 순환하는 것을 줄여 호흡기 질환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환자실을 온돌방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유럽 병원들의 사례도 들었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홀대 받는 온돌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도 많았다. 충북대 리신호 교수는 전통 온돌인 구들이 옛날의 불편한 문화유산 정도로 생각돼 구들을 놓는 온돌 장인이 무형문화재에 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온돌인증 표준 무형문화재 지정에 대한 고찰’)했고, 배재대 건축학부 김종헌 교수는 안동 하회마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온돌의 특성을 부각시키고 멸실 위기에 있는 재래식 온돌을 중심으로 등재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온돌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등재에 대한 가능성’)고 주장했다.
앞서 국제온돌학회는 지난 8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자연환경생태건축연구소에서 전통 온돌(구들) 놓기와 친환경 생태주택 흙집 짓기 체험행사도 벌였다. 전통 구들 놓기에 대해 이론 강의를 듣고 오홍식 구들문화원 원장의 지도로 전통 온돌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도 갖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