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유기농업

Ⅲ. 한국 친환경농업 정책에의 교훈

날마다좋은날 2008. 7. 8. 19:37

 

Ⅲ. 한국 친환경농업 정책에의 교훈

2001년 7월에 이어 2002년 8월, 그리고 2003년 5월, 2004년 7월, 2004년 9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필자는 각각 농림부와 울진군 또는 대산농촌문화재단의 부분적인 재정지원 하에 우리나라 친환경유기농업 관련 민관대표들을 인솔하여 캐나다와 미국, 일본, 쿠바 그리고 북유럽 알프스 산악지방의 유기농업 현지 연수를 안내한 바 있다. 2002년 연수 때는 British Columbia주의 수도가 있는 Victoria에서 제14차 세계유기농업 대표자회의가 열려 50여개 국 1,200여명의 각국 유기농업 관련자와 자리를 함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유기농산품 전시회에 한국 유기농식품을 당당히 선보일 수 있었다. 2003년의 쿠바 연수는 하바나에서 열린 제5회 세계유기농대회에 27개국 600여명의 지구촌 유기농 대표들과 우리 대표들이 함께 참석, 세계 유기농업에 관한 경험과 기술을 교환하며 쿠바의 유기농업 현장에서 그 가능성을 새로이 확인할 수 있었다. 2004년 울진군수를 비롯한 자문단의 캐나다, 미국, 쿠바 유기농 시찰여행 때는 현지 유기농업 대표자와 소비자단체, 행정가들과 심층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북유럽 알프스 지역의 독일, 스위스, 이태리 등지의 산악지대 유기농업은 빼어난 경관과 아름다운 자연환경 생태계를 한데 어울러 관광자원화하는 농산촌 어메니티(amenities) 자산화가 돋보였다.
이 같은 해외연수를 통해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의 국제화와 세계화의 지평선을 확장하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외국 유기농업 제품이 한국으로의 진출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고 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적극 나서서 친환경농업을 지원 육성하고 불완전하나마 할 수 있는 껏 판로를 개척해주며 소비자들이 적극 호응하여 유기농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하에서는 역설적으로 외국의 유기농산물과 그 제품이 값싸고 맛좋은 품질을 앞세워 언제든 국내시장을 뚫고 들어 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1. 자립 자조 협동정신의 유기농업 운동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미국, 캐나다, 일본, 쿠바,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한 한국유기농 시찰단과 동행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농민대표들의 단골질문의 하나가 "귀 정부는 얼마나 유기농업을 지원하는가"를 빠뜨리지 않고 묻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유기농업 기술선진국인 캐나다는 물론 선진국 정부의 경우 EU(유럽)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라는 것이 기술개발과 유기농 자재보급 지원 및 R&D 에 머물고 있을 뿐, 우리의 친환경직접지불제와 같은 직접적인 현금지원은 없다. 이 점은 2010년에 유기농산물의 비중을 10%로 목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통상적인 농업보조 이외에 특별한 지원이라고는 NGO들에 의한 지역사회 농업지원프로그램(Community Support Agriculture)과 지역사회 식량안보운동(Community Food Security Program) 등 유기농민과 NGO/NPO에 의한 유기농산물 지역소비촉진 운동에 대해 우리 정부의 현장농업 체험 지원처럼 농·도 연대사업을 약간 그것도 2002년부터 지원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2002년 10월, 일본 구마모토(熊本)에서 개최된 시민환경회의에서 참가하였을 때는 일본 유기농민들이 NHK 방송에서 기획 보도한 1시간짜리 '한국의 유기농업' 특집 비디오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에 소개된 우리나라의 '신토불이, 농도불이' (身土不二, 農都不二)라는 농업 슬로건을 그대로 옮겨 한 분과회의의 모토로 내세우고 토론하고 있었다. 20-30년 전부터 극히 최근까지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선생'(先生) 역할을 자임하던 일본의 유기농민들이 모처럼 소비자와 정부 대표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회의 기간 내내 한국의 친환경유기농업의 급성장 배경을 학습하며 한국 정책을 따라 배우자고 결의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한국 정부의 친환경 유기농업 성공 정책과 소비자들과의 적극적인 연대사례를 일일이 되물어 학습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얼음은 물에서 났으나 물보다 차다"는 선인의 말이 생각났다. 심지어 구마모토 유기농업의 정신적 지도자라 일컬어지는 토구노 사다오(德野貞雄) 교수 같은 이는 우리나라의 친환경 유기농산물의 선전 구호이었던 "벌레 먹고 못 생겨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라는 표어와 신토불이(身土不二), 농도불이(農都不二) 라는 슬로건을 마치 일본유기농운동의 모토로 만들 작정인양 일본 소비자 대표들과 구마모토 유기농업연구회 하자마(間司) 이사장 및 오오구시(大和기) 구주 농정국장 등이 참석한 모임 등에서 수차례나 소리 높여 제창케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과거의 제자가 오늘의 선생이 된 듯한 착각을 한 때 가졌으나 최근의 우리 내부 상황을 보면 혹시나 누가 알까 두려워졌다.
그러다가 다시 캐나다와 미국 등 선진국의 유기농업 성장 배경과 세계유기농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과의 만남을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부의 특별한 재정적 지원이 없이 일편단심 비화학(非化學)적 유기농업 경영에 전심 전념해온 확고한 철학과 신념이 마침내 도시소비자들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심금을 움직여 유기농산물 수요 붐을 일으켰으며 지금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비료, 농약, GMO곡물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다국적 초국경기업들(MNC 's/TNC 's)의 반대 억압 로비와 싸워 이긴 결과이다. 연수단을 감격시킨 사건 중에는 UBC 농과대학 학생들이 3㏊의 대학건물 후보지를 농성 끝에 지켜내어 유기농업 시험장으로 만들고 밤낮으로 유기농업 현장 실습에 몰두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현장실습에서 자신을 얻은 학생들은 앞으로 일생을 캐나다의 유기농업 발전에 종사할 것임은 물론이다.
BC주 과일생산의 65%를 담당하는 오까나깐 골짜기의 과수 유기농민들은 일본과 한국 시장을 겨냥하여 후지사과와 체리의 유기재배에 성공, 이미 일본과 미국 시장에 출하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R&D 지원을 바탕으로 특별한 재정지원이 없이 유기농민들이 자력으로 협회를 조직, 선별 가공 판매하는 과정에서 해외시장마저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이한 점은 바로 이곳의 중심부인 섬머랜드 Summerland 라는 곳에 우리나라의 농촌진흥청 같은 역할의 중앙정부 농업시험장이 유기과수에 대한 품종, 기술, 자재, 천적의 개발 보급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음이 인상적이었다. 이 시험장에는 일본 등 수개 국에서 정부 연구사들이 파견되어 있으나 아직껏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연구관을 호스트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여 동행한 우리나라 유기농대표들을 무안케 했다. 왜 우리나라의 과수농업에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가가 없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2. 남북한 유기농업 협력의 가능성

2003년 5월의 쿠바 세계유기농대회에서 다시 확인한 바이지만, 쿠바는 전체 농민과 농업이 모두 친환경 유기농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로 인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적소 적시에 조달할 수 없었던 상황 하에서 선택하게 된 유일한 농법이었다고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친환경 유기농업 기반과 기술개발을 준비해 온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친환경 정책이 21세기 세계 사조(思潮)의 주류가 되고 있는 세기적 대변혁 시점에서 볼 때 이제까지 담배, 사탕수수, 커피 등 단작 화학농업의 대표주자였던 쿠바가 친환경 유기농법이 세계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역사의 엄연한 아이러니(逆說)라 할 수 있다. 이미 정농회(正農會)가 발행한 21세기의 모델 『쿠바의 유기농업』(가네꼬 요시노리 외 지음)과 환경농업단체 연합회가 발행(2003. 10)한 『인류 미래의 희망, 쿠바의 유기농업』그리고 쿠바 농업기술청과 유기농본부가가 주최한 국제연찬회의에서 발표된 사례는 기술청 소속의 모든 연구소와 연구원들이 '조상대대로의 토착농법을 현대적 생물과학기술과 접목' 시켜 생산성 향상도 도모하고 겸하여 생태환경과 소비자 건강 및 생명을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현대적 유기농 기술을 개발 보급하였다. 그로인해 농민들의 소득증대와 지역사회의 균형발전, 나아가서 쿠바의 식량자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증거를 검증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유기농업 기술수준을 전국의 유기농민과 정부 당국이 합심 노력하면 한층 높은 단계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캐나다 UBC의 초청으로 2002년 10월 31일-11월 7일까지 밴쿠버와 BC주를 방문한 북한농업 행정가 및 학자 일행 4명이 역시 열심히 이곳의 유기농법을 연수하고 귀국하면서 자국내 식량 및 부존자원 현상을 들어 친환경 농업분야로의 본격적인 전환가능성에 대해 회의하고 고심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쿠바와 여러모로 국제 정치경제환경이 비슷한 북한 농업으로서는 유기자재 공급만 원활히 확보된다면,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국민건강과 생명과 환경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현대적 친환경 유기농법을 도입할 수 있다고 믿기는 하지만 그 조건이 성숙되지 않음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즉, 북한의 현실은 일부 미생물 제재의 개발경험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유기질 원자재를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어 과감히 유기농업으로 정책전환을 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남북한간의 농업협력분야 과제의 하나로 우리 민관이 북한에 친환경 유기농업의 자재, 기술을 제공하고 이의 가공 판매(무역) 분야에 적극 협력할 수 있음을 뜻한다. 국내에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혐오산업으로 지탄 받기 시작한 우리나라 축산분뇨를 정부 주도로 산야의 부산물과 섞어 퇴비화 시켜 그렇게 제조된 국제규격의 유기질비료를 남북한의 유기농업지원에 적극 활용하는 1석 3조의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 일을 중앙정부가 하지 못하면 지자체나 농업인·시민단체라도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3. 우려되는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현황

농림부는 1999년부터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도를 실시하여 왔다. 2003년에는 친환경농업 직접지불보조금을 ha당 79만4천원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앞으로 ha당 100만원 대로 상향조정될 날도 머쟎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98년 11월11일 제2회 농민의 날을 기해 정부가 '친환경농업 원년' 을 선포하면서 직접지불제를 공표한 자리에서 당시 농림부장관이었던 필자가 유기농업단체 대표자들과 주고받은 우려와 다짐들이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은 과거 2-30년 동안 정부의 직접지원은 커녕 억압받는 정책 분위기에서 오로지 신앙적인 신념과 철학을 가진 선구적인 농민(단체)들에 의해 묵묵히 실천되고 뿌리내려 왔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1997년 친환경농업 육성법이 제정되었고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그 시행령을 제정, 시행하였다. 정부가 능동적으로 21세기 친환경 세계 사조에 부응하고 WTO 개방체제와 IMF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우리나라 농업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시행령 제정과 더불어 농업·농촌기본법에 친환경 유기농업을 직접 재정지원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친환경농업 직불제를 실시하였다. 농산물 품질관리원을 설립하고 인증제도를 도입했으며, 소비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계도로 소비수요를 불러일으키는데 일단 성공하였다.

<표 1>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인증 추이(1999-2003)
주: 1) 전환기 유기농가 포함.
자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2004.



<표 2> 친환경 쌀 재배농가(인증) 추이(1999-2003)

주: 1) 전환기 유기농 포함.
자료: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2004.

그와 동시에 농림부에 친환경농업과를, 그리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을 신설하고 품질인증제도를 실시하였다. 1999년부터는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도를 처음으로 제정 실시하고 그에 앞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제정, 친환경농산물의 유통을 담당케 했다. 다른 한편, 전국의 농협 하나로 매장에 친환경농산물의 판매코너를 설치 운영케 하였다. 특히 정부주도하에 전국적으로 수백의 크고 작은 친환경농업특구를 지정하였고 퇴비증산과 유기농 자재지원 그리고 농·소·정 협력사업으로 녹색관광 겸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실시,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유기농산물의 중요성, 즉 환경생태계 보전효과와 소비자 건강, 생명에 대한 안정성을 일깨우게 하였다.
곧이어 정부는 친환경농업 발전 5개년 계획을 공표 시행하였다. 1차적으로 정부는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 완전유기농업을 구분 지원했으나 장차 그 생산 및 소비규모가 커질 경우 유기농산물을 독립 표시하고 나머지 친환경 농산물은 '우수 농산물'(GAP: Good Agricultural Product)로 별도 지원할 구상이었다. 특히 소비자들에게는 "벌레 먹고 못 생겨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라는 표어를 널리 홍보하고 네 가지 품질인증마크를 인지시켰다. 그 결과 1999년에서 2003년 5년 사이에 친환경농업은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어 전국적으로 인증면적 기준 27배, 인증농가 기준 18배의 증가라는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얻게 되었다.

1) 사이비 친환경농업인
그러나 만약 정부의 재정지원만 믿고 무임승차한 자질이 의심되는 농가들이 사전교육과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우후죽순처럼 너도 나도 친환경농업에 뛰어 들 경우 불행한 사태가 예상되었다. 그리고 농업인들의 유기농업 참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저농약 농산물을 친환경농업 인증에 포함시킨 것에 대하여 최근에 적지 않은 비판이 일고 있듯이 손쉬운 저농약 친환경농업에만 안주할 경우 어떻게 유기농을 육성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순수 유기농업만 권장할 경우 3-5년이 소요되는 기간 농가지원 방법과 체제가 묘연하다. 그래서 당초 계획으로는 5년 후, 즉 2004년도부터선 저농약 인증제를 폐지하고 '좋은 농산물'(Good Agricultural Product)로 전환시키고 다시 5년 후엔 무농약 인증마저 폐지하여 '유기농산물'만 인증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아직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시행결과를 검토해 볼 때 심상치 않게 사이비 유기농산물의 출현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훼손하거나 유기농산물 수요를 급감시킬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또는 너무 값이 비싸져 외국의 값싼 유기농산물들이 대거 수입될 수도 있다. 유기농단체와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교육 감독하여 유사(사이비) 친환경 농가들이 발붙일 틈을 사전에 막고 생산비를 더욱 낮춰 판매가격을 내리는데 계속 노력해야 우리 유기농업이 항구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혹시라도 사이비 유사 유기농가들이 작당하여 흔한 말로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경우, 정부가 권장했으니 정부가 보상하라고 들고 일어서는 사례 역시 절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면 수많은 친환경 농산물 애용 소비자들이 이러한 일부 천민상업적인 농민들의 행태에 실망한 나머지 유기농산물에 대하여 등을 돌릴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미래가 암담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당시에 유기농업 대표들과 함께 우려한 바 있었다. 그래서 수구초심, 초지일관으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깨달아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며, 하늘도 살리며, 소비자와 건강을 지키는 농사"를 짓겠다는 신념과 철학을 두루 공유하도록 자체 교육과 계몽으로 사전에 정신적인 무장을 단단히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친환경 유기농업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지속할 경우 하늘이 돕고 땅이 도와 소비자와 정부가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이 유기농업 실천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다짐했었다.
이것이 2-30년 전 부터 지금까지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기농 선구자 농민들의 일관된 근심이며 철학이다. 최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지난 4년(1999-2003) 사이에 친환경 농업 인증 농가 수가 18배가 늘어나 2003년 말 현재 어느덧 23,302 농가로써 전체 농가의 1.8%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머쟎아 10만호, 20만호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앞서 걱정한 우려들이 사실로 나타나 오히려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에 큰 위기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 그런 조짐이 최근 이곳저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여 선의의 모든 친환경 농민들로 하여금 더욱 흙과 물과 하늘과 생명농업에 정직하게 종사할 수 있도록 미리 자체내부의 부정적인 요인을 자율적으로 제거할 "채찍과 당근" 정책이 필요하다. 담당기관에 대해 지도, 감독, 지원업무의 예산과 기구를 대폭 확대해 주고 끊임없이 친환경농업인에 대한 대대적인 반복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2)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낮은 곳으로
"이상과 도덕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되, 실천과 협동은 더 낮은 곳을 찾아 가는" 유기농업 철학이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단체들의 공식입장, 즉 앞으로 나아 갈 목표로 채택되었으면 한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초심(初心)을 다시 다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자나 사 먹는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생산해서 돈이나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이 유기농업의 궁극적인 실천목표가 아님을 우리는 그동안의 선진유기농 연수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유기농으로 돈을 벌고 소득을 늘인다기 보다는 참 농부의 이상과 농심(農心)의 철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물(하늘의 선물)이어야 참 유기농업이다. 하늘과 땅과 물과 생명을 살리려고 구슬땀을 흘릴 때 하늘은 반드시 도시소비자와 정부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 친환경 유기농업을 북돋울 것이다. 다시 강조하려니와 "국민을 움직여야 농업이 산다." 이제 우리는 더 높은 것을 향하여 더 낮은 곳으로 나아 갈 때이다.

Ⅳ.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정책의 전개방향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에 '친환경농업 원년의 해'가 선포되어 친환경농업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농업은 그 자체가 생명·환경산업이므로 이 부문이 일반화될 경우 21세기 생명·환경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선순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1. 친환경농업 정책의 개선 방향

첫째, Codex 유기식품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육성·발전시켜 나가되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은 국제기준에 고려되도록 이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꾸준히 보강해야 한다. Codex 유기식품 국제기준이 의무사항은 아닐지라도 WTO체제에서 이 기준을 준수하여 생산된 외국의 유기농산물 및 식품 수입이 증가할 것에 대비하여 수입유기농산물에 대하여 국내산과 동등한 현지 확인조사와 수입허가 절차를 보강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나라 유기농산물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무역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관련법규를 보강하여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유기농업 육성정책과 무역(수입)대책 수립이 적극 요청된다.
본래 Codex 기준을 작성하는데는 미국, EU, 호주, 뉴질랜드와 같이 한 장소에서 유기자원과 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순환농업이 가능한 넓은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의견이 주로 반영되었다. 그 결과 벼 농사가 중심인 아시아 지역의 농업현실과는 맞지 않는 기준이 많다. 국내산 유기농산물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동양식품을 생산해내는 한·중·일 3국이 공동 유기농산물 인증제도를 구축하고 나아가서 IFOAM과 같은 국제유기농업단체 등을 통하여 영농규모가 영세한 아시아 지역의 농업특징을 반영한 공통규범의 보완작업이 필요하다.
즉, 동북아시아 국가의 유기농업 생산조건 및 소비식품 문화가 구미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적극적인 협조체제로 동북아시아형 유기농업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제정하여 국제기구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 강구되어야 한다.
둘째, 공장식 현행 축산경영을 양계, 한우, 낙농, 산양 등부터 우선적으로 유기축산으로 점차 전환해 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축산업은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사육하는 밀집형 공장식 축산의 형태로 발전하여 왔다. 가축의 사양체계는 생산효율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기업화되었고 가축의 복지와 동물의 권리를 도외시한 채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료이용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항생제, 성장촉진제, 그 밖의 질병예방 약품과 첨가물이 과용 또는 남용되어 축산물의 안전성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돈콜레라, 뉴 캣슬병, 구제역, 광우병 등은 환경오염과 약품 및 농후사료 남용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셋째, 친환경농산물의 품질관리를 점차 전문 민간기관에 이양하여 보다 책임 있고 실질적인 관리가 되도록 해야 하나, 이들 정부대행, 민간인증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와 함께 감독 및 벌칙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한 수입 유기농산물과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에 대한 검사 및 표시 등의 기준이 하루빨리 통합 정비되도록 친환경농업법과 식품위생법을 통합 개정하여 문자 그대로 농식품행정이 '농장에서 식탁까지'(from farm to table) 일원화되어야 한다.
넷째, 친환경농산물의 수요 증가와 함께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의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하여 이를 취급하는 유통·판매·가공업자와 수입업자에 대한 인증제도 실시와 감독 관리 규정도 대폭 손질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유기농축산업 성공의 필수조건인 자재와 기술보급이 국가 주도로 행해질 수 있도록 농림부와 농촌진흥청 및 농산물품질관리원의 기능과 예산과 기구가 보강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능력배양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유기질 비료와 천연 농약, 천적 개발과 배양, 보급, 미생물 농약의 개발 지원이 강화되어야 하고 흙살리기를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지방 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지원이 필요하다..

2. 친환경농업 정책의 과제

친환경농업을 추진하기 위한 정책목표는 농업생산의 경제성과 생산성 확보, 자원과 환경생태계 보전, 인간의 건강과 식품의 안전성 제고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책방향은 토양의 보전, 농업으로 인한 환경오염 감축, 농업의 환경정화산업화, 농업 폐기물 재활용, 안전 농산물 생산 및 유통체계 확립 등이다.
이 같은 정책목표에 따라 새로운 농업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주요 정책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친환경농업 기술과 유기질 자재의 개발 보급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양의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이 본격화된 지난 40여년 이전까지 무려 5천여년 이상 우리나라 농축산업을 지탱해 오던 비화학적 전통농업기술과 자재를 재발굴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거기에 현대과학기술(생물학적, 물리학적, 전자기술 등)과 접목하여 농가수준에서 이용이 간편하고 생산성이 높은 현대적 유기농법을 적극 개발, 보급하여야 한다. 이른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새 농법이 창안되어야 한다. 본래 농업과 같이 완전경쟁 구조를 갖는 산업에서는 독점산업과는 달리 기술개발 투자분야는 농진청 등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새로운 신기술이 농업분야에서 계속적으로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보급되지 못하여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지 못하는 원인이 대부분 고비용 때문임을 적시하여 미생물 농약, 생물학적 기술과 재제, 유기질 퇴비 등에 대한 공공기관 주도의 연구개발과 민간연구에 대한 국가지원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더구나 친환경농업 자재는 주로 영세 벤처기업이 공급하기 때문에 R/D에 대한 투자도 매우 미약하다. 미생물 농약이나 유기질 비료 등은 토착적인 것이어야 유기농업의 현지화가 가능하므로 손쉽게 수입재제에 의존하는 미생물 농약이나 유기질 비료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조나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미생물을 외국의 수입산에 의존하다가 큰 화를 자초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2) 친환경농업 실천농가의 소득안정 대책이 중요하다.
친환경 농산물이 관행 농산물보다 비싼 가격으로 거래됨으로서 생산자는 약간의 프리미엄 가격을 얻을 수 있으나 이것이 그대로 소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비 또한 높기 때문이다. 직접지불제도는 환경재로서의 유기농산물의 생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기 때문에 다양한 보상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보증하는 보험제도의 실시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3) 지역단위별 친환경농업 생산주체를 육성하되 가족농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단위형이나 읍면 단위형, 시군 단위형으로 발전시켜야 지역사회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친환경유기농업에 대한 정부지원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지역사회 환경지키기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본의 "지산지소" 운동, 캐나다와 미국의 "지역주민후원 유기농운동"을 참조하여 지방 소비와 학교급식에 유기농산물이 우선적으로 소비되도록 해야 한다.

4) 유기축산과 가공부문을 서둘러 육성해야 한다. 외국의 유기축산물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수입되면 우리의 축산업은 급속히 붕괴될 수 있다. 또한, 경종농업에 필요한 유기자재의 순환적인 자원이용 차원에서도 친환경·유기축산, 즉 유축농업의 도입 지원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청과 긴밀히 협조하여 유기식품의 표시기준을 국제화하고 수입 유기농산물과 식품에 대한 현지방문 검사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외국의 사이비 유기식품의 범람이 우려된다.

5) 지역단위로 유기자원의 순환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농업부문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업, 축산업, 경종농업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지역단위에서 임업, 축산업, 경종업간의 협력체계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행정은 물론이고 생산자 단체인 농협, 축협, 임협간의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지역단위별로 「친환경농업 연합체(가칭)」의 결성도 생각해 봄직하다. 나아가 가장 일차적으로 환경보전이 잘된 한계지역, 간척지, 조건불리지역 등을 시작으로 대규모 '친환경농업 특별구역'을 지정하여 육성할 필요가 있다.

6) 친환경농업 정책심의를 위한 '친환경농업발전위원회'를 활성화하고 현장 실천농가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조건과 농가경영규모, 작물별 특성에 적합한 친환경농업 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친환경농업 기준을 정기적으로 심의 강화(예, 저농약 농산물을 친환경농업 분류에서 삭제 검토)함으로써 친환경농업의 실천기반을 굳건히 다져나가야 한다. 그와 더불어 종합적인 농토배양 추진 및 축산분뇨 자원화와 직불금 상향조정, 친환경농산물 유통활성화, 국제협력 강화 등의 정책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7) 농사란 원래 현지(local)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여건에 적합한 기술보급 체계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각 도별로 지방자치단체, 농촌진흥원, 농업기술센터, 대학, 지역농협, 친환경농업 선도농가로 구성된 친환경농업 실무팀(Task Force) 또는 지역단위 유기농업연구센터 등을 설립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단위의 친환경농업이 부가가치를 높여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별 품목별 경영의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 건전한 토양의 조성을 위해 안전한 농자재의 자가 생산 활용, 오염되지 않은 물의 이용, 자원절약형 농업, 친환경농업 전문단지화하고 생산품목의 다양화, 건강 기능성 농산물 개발 및 명품화를 통한 범위의 경제성 제고를 도모해야 한다. 지역단위 연구소와 대학 연구기관과 연계한 친환경농업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8) 농-소-협-학-정 협동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는 친환경농산물의 유통활성화 지원과 품질관리, 소비자는 친환경농산물 소비 증대, 생산자는 친환경농산물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직장 및 도시의 생협운동이 활성화 되도록 정부는 제도개선과 지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도시와 농촌 여성인력이 유기농업 실천운동에 다목적으로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하여야 한다.

9)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농산물 품질관리법을 현실조건과 미래지향에 맞게 개정 보완해야 한다. 특히 저농약, 무농약 농산물들을 우수농산물(Good Agriculture Product)로 분류, 지원은 계속하되 유기농산물(Organic Food)은 독립해 품질 표시·인증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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