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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이전에 ‘가족’임을 되새겨야

날마다좋은날 2006. 1. 28. 11:28

종교인 이전에 ‘가족’임을 되새겨야

<한겨레 2006/1/25/수/종교수행28면>

 

 

▲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모이다 보면 차례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보이기도 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른 종교 가족간 명절 나기

설 연휴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가족들이 모처럼 만에 함께 하는 명절에 부모·자식, 형제·자매간 다른 종교적 문화로 인해 갈등을 빚는 집이 적지 않다. 불과 100여년 만에 서구 종교문화가 안방 깊숙이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다종교 사회가 돼 가족간 이종교가 많아졌다. 어찌 보면 한국만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명절 때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전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모처럼 함께 한 가족 중 자신의 종교만을 내세우는 이가 있으면 가족 간 반목을 야기하거나 자칫 서먹해질 수 있다.

1년 만에 만난 가족들의 차례상 앞 갈등

서울에 사는 직장인 정명진(42)씨는 즐겁기만 하던 고향길이 몇 년 전부터 부담스러워졌다. 5년 전부터 개신교 교회에 나가게 된 한 누나는 명절 때면 연로한 어머니가 차례상을 차리는 것에 대해 “귀신에게 무슨 제사냐”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정씨는 무종교인이고, 그의 아내는 1년에 몇 차례가량 절에 나가는 불자다. 그런데 누나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 간다”며 전도에 적극적이다. 수십 년 전부터 교회에 나갔던 다른 형제·자매들은 명절날이면 가급적 종교보다는 공통의 얘기를 화제 삼아 덕담을 나누지만, 그 누나는 달랐다. 그 누나의 말을 듣다 못한 정씨가 반론을 펴게 되면 그 때부터 가족의 분위기는 썰렁해지기 시작한다. 정씨는 “1년 만에 한 두 번 얼굴만 봐도 좋기만 하던 누나로부터 매번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당하다 보니, 명절 때가 돼도 마주 대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종교만 내세우면 분위기 서먹해지기 십상
다른 종교 비방 삼가고 덕담 나누며 서로 이해해야

경기도 안양에서 교회에 다니는 직장인 박지환(45)씨의 형제 자매들도 개신교, 가톨릭, 불교, 무종교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종교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머니는 종교가 다른 자식들을 배려한 때문인지 새벽 일찍 혼자서 차례상을 차렸다가 치우는 경우가 많고, 차례상을 본 가족들도 대부분이 차례상을 고유한 전통으로 인정하는 편이다. 또 “자기도 모르게 다른 종교나 성직자에 대한 비방이 입 밖에 나올 때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있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대화할 때는 가급적 다른 종교에 대한 비방은 삼가고 덕담을 해주려 애쓴다”고 했다.

종교인이 안내하는 기쁜 명절 맞이

◇ 불교단체 정토회 박석동 기획실장= 명절 때 왜 가족들이 만나는가. 자기 종교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종교 때문에 모인 게 아니고, 단지 가족이기에 모인다는 것만 분명히 알아도 종교로 인해 갈등을 빚지는 않는다. 갈등이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만 옳다’는 아집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가족으로 만날 수 있다. 불교가 관용의 종교라고 하면서도 의외로 더 아집이 심한 경우에 많다. 이에 대해 불자들이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부처님이 법당 안에만 있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단 그리스도인이나 무종교인으로 있다고 여긴다면, 다른 종교나 문화의 차이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 서울 신수동 성당 주임 김민수 신부= 가톨릭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초기에 제사를 반대해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오래 전부터 조상 제사를 허용한다. 성묘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선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해선 곤란하다. 자기 종교만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입장보다는 다른 종교도 이해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 서울 천호동교회 홍순원 목사= 개신교인들이 갈등을 빚는 것은 대부분 제사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제사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조상묘에 절도 하게 한다. 조상을 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배로 승화시키는 게 제사의 참뜻으로 본다. 우상 숭배란 제사와 같은 전통 문화가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나 ‘천황 숭배’같은 게 아닌가. 구약성서에서도 제사장이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먹는다. 다른 종교인들을 모독하는 것은 종교인이기 이전에 ‘함께 하는’ 가족의 자세가 아니다. 가족과 이웃과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인 삶이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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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별 설 차례법

<한겨레 2006/1/25/수/종교수행28면>

 

격식보단 정성스런 마음이 중요
 

우리 나라의 전통 차례문화는 유교적이지만 각 지역과 가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따라서 너무 격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정성스레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전통 설 차례는 조상신을 땅 위로 모시는 의미에서 술을 세 번 붓는 강신을 시작으로 조상께 절하는 참신과 술을 올리는 헌작, 음식을 드시도록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 유식, 조상을 전송하며 절하는 사신, 음식을 나눠먹는 음복 순으로 진행된다.

불교에서는 차례상에 술과 육류를 피하고, 술 대신 차를 올린다. 불교에선 ‘차례(茶禮)’가 차를 올리는 데서 유래했다고 본다. 따라서 차와 과일 위주의 제물과 위패를 모시고 업을 씻는 진언과 반야심경 등을 봉독한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유교가 조상들을 위로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불교에선 조상이 집착과 업을 끊고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한다.

불교에선 술 대신 차
가톨릭, 제상에 십자가
개신교, 차례 대신 ‘감사예배’

가톨릭은 조상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니라 조상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전통이자 가족 공동체 친교의 장으로 보고 조상제사 예식시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제사에 앞서 불목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를 살펴 기꺼이 화해하기로 다짐하고 고해 성사한다. 제상은 집안의 관습에 따라 차리고 제상엔 향로와 향합, 촛대와 함께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 제상에서 십자 성호를 긋는 것으로 시작하는 외엔 전통 제사와 유사하다. 제상에 절을 한 뒤엔 “언제나 ○○를 기억하여 이 제사를 올리오니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라고 고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개신교의 경우 대부분의 교인들이 명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토착문화의 수용 분위기에 따라 대한감리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기독교장로회 등 대표적인 교단들이 명절예식서를 준비했다. 기독교장회회의 차례예식인 ‘감사의 예배’는 찬송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이 시간,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도록 낳고 길러주신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억합니다. 먼저 가신 조상님들 앞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친교를 통해 저희 가족간의 우애가 더욱 두터워지게 하옵소서’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린다.

원불교에선 설날 아침 교당에 나와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는 이들이 많다. 가정에서 지낼 때는 술 대신 꽃과 향을 올리고, 조상들에게 집안 사정을 보고하고, 마음 속으로 기원하는 심고를 올린다.

천도교에선 맑은 물 한 그릇으로 제를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제상을 차려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제상을 벽 쪽이 아니라 산 사람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게 독특하다. 조상의 정령과 기혈의 원천인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시고 있으므로 제사를 받는 것도 결국 나라는 의미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