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 국가 R&D 균형 발전의 대안 | |||
지자체 간 분업이 '성공의 열쇠'
참여정부의 제1과제라는 국토 균형발전.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전국 각 지방 자치 단체마다 '지역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녹차밭' 하나를 밑천으로 지역 특성을 활용해 산업과 연계해 혁신을 꿈꾸는 전라남도 보성, 아이디어와 행정력을 바탕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해 나가는 '함평'과 '장성' 등 이제는 군 단위 이하 지자체마저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실제로 시 이상의 지방자치 단체를 살펴보면 너도나도 ‘R&D(연구개발) 활성화' 만이 지역혁신의 초석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혁신 산업을 창출해 나가겠다는 대전, 실속 있는 R&D를 통해 본격적인 산업단지로 거듭나겠다는 충·남북, 광(光)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광주 등 전국의 지자체들 사이에서 '과학기술 진흥을 통한 도시역량 강화' 전략이 본격화 되고 있다.
▲ 한국전력공사 본사의 광주 이전이 결정된 지난 6월 24일 광주 시내의 한 모델하우스 앞에 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지방 R&D역량 강화에 직결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 동아일보
R&D를 통한 지역혁신
그 중 대덕연구단지는 대표적인 모델로 손꼽힌다. 1973년 조성되기 시작한 대덕은 나름의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국가 기초기술의 밑바탕을 닦는데 많은 공헌을 해 왔다. 각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로 창출된 상품의 경제적 가치를 따진다면 어림잡아 1000조원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 '지역혁신'의 바람을 타고 대덕을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쌓은 연구 역량을 '사업화'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나섰다.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는 “대덕연구개발 특구 출범을 계기로 10년 내에 나스닥에 20개 기업을 상장시키고 입주기업 3000개, 매출 30조원, 기술료 수입 5000억 원을 창출하자”고 특구발전을 위한 비전을 내놓은 바 있다.
연구단지가 자리 잡고 있는 지자체도 혁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대전시는 시 전체를 '첨단 과학 산업 도시'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메카트로닉스, 정보통신, 바이오, 첨단부품소재 등 다양한 클러스터를 결성하기 위한 지원에 나섰다. 지역 산업체는 물론 대학, 출연연, 군관계자 역시 “연구결과를 산업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며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유비쿼터스, 국방 산업, 원자력, 항공우주 분야를 담당할 ‘신성장 산업 클러스터’를 동시 출범시켜 미래 산업에 대비하겠다는 복안도 실행해 나가고 있다. 크고 작은 18개 혁신 클러스터를 모아 구축한 ‘4X4 혁신 클러스터’는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며 상호교류를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을 꾀하고 있다. 기업·연구소·대학·군 참여 기관만 1300여개를 넘어선다.
이 같은 결과로 대덕은 특구 지정에 따른 각종 혜택, R&D 활성화를 통한 혁신역량 강화를 노리는 기업체들 사이에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최근 대덕 이전을 결정한 중견 휴대전화 제조사인 VK도 그 중 하나. 그 외에도 여러 업체들이 '기업하기 좋은 지역'이란 평가를 내놓으며 대덕행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불과 2년 전만해도 드넓은 황무지 외엔 볼 것이 없었던 '대덕테크노밸리' 지역은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를 방불케 한다. 129만평에 달하는 신산업단지에 입주하려는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별 협력으로 2~3만 달러 '중심'돼야
지역 혁신 전문가들은 “대덕의 연구역량과 사업화는 또 다른 문제”라며 “가까운 충·남북과의 연계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충·남북은 대덕이 갖지 못한 ‘산업역량’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대전·충남·충북이 어우러지는 '중부권 단일시장'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 지역 300여 벤처기업을 대표하고 있는 정선용 충남벤처기업협회장은 “천안, 아산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이 잘 갖춰진 지역이며 충북 오창은 자본투자가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며 “연구 인프라가 우수한 대덕과 연합한다면 중부권은 세계 수준의 산업 메카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국이 광역화되어가며 각 지자체들이 독자적인 산업화 노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각개전투’ 형식의 싸움이 아닌, 지역 특성을 살려 상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연합전선’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도 “행정단위별로 독립된 지역시장은 중부권을 묶는데 큰 걸림돌이니 지역을 초월하는 정부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며 “지역별 혁신역량을 하나로 묶는다면 우리나라가 2~3만 달러 시대로 들어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덕의 과학자들 역시 충·남북과의 연계를 중요시 하고 있다. 국내 출연연 과학자 중 첫 번째 억대 연봉 수혜자로 올라선 박홍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산업화와 제품화 기술개발은 충북이, 그 핵심 역량이 되는 바이오 관련 연구는 대덕이 책임져야 한다”는 ‘지역 연계론’을 폈다. 실제로 충북이 ‘바이오토피아’란 슬로건을 내 걸고 오송·오창 지역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만큼 두 지역의 연계는 필수라는 의미다.
박 박사는 “기초연구는 대덕이 담당해야겠지만, 산업은 충북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며 “충북도의 바이오 육성사업은 중앙정부 차원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에만 '올인'할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도시-기업간 상생경영의 대표 사례에 속하는 대덕연구단지. 지역 혁신을 꾀하는 타 지역에 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동아일보
지역 특성 살린 R&D 발굴
그렇다면 지역혁신을 위해 각 지역이 선택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혁신 방법은 지역마다 달라진다. 반드시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역량만으로 혁신을 꾀할 필요는 없다.
고속철도 이용자가 늘면서 전국 주요 도시들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인 지 오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이 갖추고 있는 '장점'을 파악하고 이를 집중 육성해 다른 혁신도시와 연계하는 방안은 가장 좋은 모범답안일 것이다.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6시간 이상 달려야 겨우 다다를 수 있던 경남의 한적한 시골 도시 '통영'은 '천연 자원과 R&D 인프라를 하나로 묶어 지역 혁신을 꾀하고 있는 대표 지역이다.
가두리 양식장 등으로 유명했던 통영은 바다회, 충무김밥 등의 먹을거리와 한려해상국립공원 등의 볼거리 때문에 단순한 '관광지'로만 인식돼 왔던 곳이다. 바닷가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던 곳이지만, 현재는 바다목장 사업으로 우리나라 수산업의 '조용한 혁명'을 이끌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의 R&D 역량과 지역 특성을 잘 살린 '혁신 성공사례'라 부를 만하다는 것이 지역 주민의 말이다.
통영은 지난 1994년, 경기지역에 위치한 '한국해양연구원'과 연계해 '바다목장'을 조성해 왔다. 어망으로 바다를 막아 물고기를 기르는 '가두리 양식'이 아닌, 물고기가 살기 적합한 환경을 분석해 과학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해산물 자원을 풍족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과는 2002년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통영의 가구당 소득변화를 살펴보면 2002년 2천4백여만 원에서 2003년 2천7백여만 원으로 증가했다. 양식이 아닌 버젓한 자연산 물고기이기 때문에 잡는 즉시 고가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해양연에 따르면 2016년에는 가구당 630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홍기 통영바다목장자율관리위원회 위원장은 "10여 년간 목장을 가꾸어 왔으니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다"며 "위원회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날마다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영이 가시적 자원인 '바다'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반해 '전남 광주'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태양을 모태로 혁신을 꾀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빛 고을'이란 이미지를 통해 산업화에 집중하고 있는 광주 역시 이 같은 사례를 잘 반영한다.
광주는 지역 환경이 만들어낸 ‘혁신모델’을 살려, ‘빛’을 주제로 한 산업이라면 모든 분야에서 1위가 되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지난 1999년부터 꾸준히 추진해 왔다. 광주는 여기에 독자적인 사업 추진 대신 다양한 분야에서 외부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광주시는 조선대 내에 ‘태양에너지 실증연구단지’를 건립하고, 사업화를 원하는 전국의 모든 사업체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대덕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공조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가정용 광통신망(FTTH) 시범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산업 활성화 효과 역시 뛰어나다. 광산업 집적화단지와 광산업 클러스터 조성, 이미 구성돼 있는 광산업에 대한 관리사업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으며, 200여개 광산업 관련 업체가 입주해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광주시에 따르면 관련 매출 역시 급성장해 2010년이면 총 생산액만 7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대덕이나 광주시와 같은 지역 성공사례는 지역혁신이 국가 균형발전과 직결된다는 점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허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부단장은 “현재 정부는 지역혁신협의회를 구성해 지역별 균형발전을 집중추진하고 있다”며 “지역 내 산·학·연·관 등 역량을 망라한 지역 대표체계를 출범하고, 지역의 특기를 살린 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하는 길” 이라고 말했다. ▶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 일대 35만여평 부지에 조성 중인 센텀시티 지방산업단지 조감도. 지역 환경에 맞는 R&D 전략을 짜는 것만이 지방 연구 역량과 산업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동아일보
제2, 제3 대덕이 생긴다
타 지역으로 연구 성과를 확산시키는 모범적인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대덕에만 모여 있던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전국 각 도시에 분원을 건립하는 등 지방 R&D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이 동시에 분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전북 정읍은 '대덕의 R&D역량이 도입돼 성공한 지역혁신의 대표사례'로 통한다.
원자력연은 현재 정읍에 '첨단방사선연구원'의 건립을 대부분 끝마쳤다. 2대의 감마선 조사 시설(고준위·저준위)도 설치 완료됐으며 곧 10MeV의 전자 가속기, 100KeV의 이온빔 가속기 등을 추가로 도입해 원자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핵 조사 시험시설을 구비할 예정이다.
정읍시는 이 같은 원자력연구원의 구상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시는 우선 연구소 직원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 단순한 기숙사가 아닌 '전원주택 단지'를 건립해 제공키로 했다. 또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 관련 산업체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노력을 전사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공계 꿈나무들을 적극 육성하는 '특성화 중·고등학교'를 추진하는 등 산·학·연 공동 출자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등 다양한 협력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원자력연은 지난 9월 한국토지개발공사와 '첨단과학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당초 목적은 연구소와 정읍시가 연계해 '방사선융합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으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까지 동참키로 했다. 여기에 한국식품안전연구원 등을 비롯해 총 7개 기관이 연구기관들도 잇따라 분원을 내기로 결정했다. 결국 정읍시는 '첨단과학산업단지'로 명칭을 확대해 '정읍의 대덕화'를 꾀하고 있다.
이 밖에 기초연, 생명연 등 분원 설립이 잇따라 진행되고 있는 충북의 오창, 한국기계연구원이 분원을 설립하고 있는 전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우주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전남 고흥 등 전국 여러 도시가 R&D를 통한 지역 혁신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전승민 대덕넷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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