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유기농업기사협회

다시, 황우석 박사가 나서야 할 때다

날마다좋은날 2005. 12. 12. 09:04
다시, 황우석 박사가 나서야 할 때다

국민적 영웅 황우석 박사가 나락으로 떨어질 뻔 했다. 함께 일했던 전직 연구원의 은밀한 제보가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이의 정당한 내부 고발이기보다는 개인적인 불만에서 비롯된 비겁한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피를 나눈 형제'이고 '통역사'라고 떠벌리면서 챙길 것은 모두 챙긴 제럴드 섀튼의 느닷없는 결별 선언으로 표면화된 논란이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제보를 받았던 방송국이 무리한 취재를 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미 폭탄은 터져 버렸고 지금까지의 피해만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불신의 늪이 얼마나 깊고, 우리 사회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한심한지에 절망을 느낀다.
 
 
◀ YTN은 지난 4일 오후 3시부터 정시뉴스 `YTN 24`를 통해 MBC PD수첩팀이 중대 증언을 했다고 주장해 온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김선종, 박종혁 연구원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연구원들은 "PD수첩팀이 10월 20일 인터뷰에서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취소될 것이며 구속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YTN 보도를 확인하고 PD수첩팀의 강압적 취재 과정에 대해 즉각 사과했다. ⓒ 동아일보
 
 
 
‘문제 제기’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난자 제공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진즉에 밝혀졌어야 했다. 처음에 어느 철없는 생명윤리학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온당하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가 난자 채취의 과정에 대해 모두가 용납할 수 있는 합의를 했던 것도 아니고, 국제 수준의 규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제 수준의 연구 관행이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가장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황 박사가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을 했던 것은 분명한 잘못이고 실수였다.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연구 윤리 전문가에게 의존했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많이 늦기는 했지만 진실을 밝히고 사과를 한 것은 백 번 옳은 일이었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명한 절차를 마련하지 못했던 우리도 '인간' 황 박사의 어려운 사과를 순수하게 받아주어야 한다. 황 박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황 박사를 죄인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말 큰 일이 터져 버렸다.
 
언론사가 입수한 제보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황 박사의 연구가 모두 가짜라는 내용이었음이 공개되어 버린 것이다. 다름 아닌 국정의 청와대가 직접 밝힌 내용이었다.  결국 윤리 문제에서 시작된 논란이 복제소 영롱이를 포함한 황 박사의 모든 결과가 '가짜'라는 엄청난 의혹으로 번져 버렸다. 별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가 온 나라를 뒤흔드는 폭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의 명예까지 걸린 그야말로 국제적인 스캔들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정재계의 비리 사건에서 흔히 보아왔던 것과 똑같은 지루하고 소모적인 진실 게임이 우리를 짜증나고 화나게 만들었다. 방송사가 직접 실험 결과를 확인하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한 실수이고 잘못이다. 방송사의 역할은 자신들이 접수한 제보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그동안 어떤 사실을 확인했는지를 밝히는 선에서 끝나야 한다. 생명과학 연구의 전문성이 없는 방송사가 내린 결론을 '사이언스'가 인정해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방송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방송사의 취재 과정이 도무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물론이고 엄청난 협박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방송사 측에서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다른 방송사가 보도할 때까지 꼭꼭 숨겨두었던 배짱은 대단했다. 황 박사가 진실을 선뜻 밝히지 못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심각한 문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언론의 윤리 의식도 철저하게 검증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 지난 11월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대 강당에서 열린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에 황교수를 취재하기 위한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여 버린 황 박사의 처지는 정말 안타깝다. 그동안 국민들의 환호에 들떠 있던 그가 느꼈을 절망이 어느 정도였을 것인지는 쉽게 짐작된다. 굳게 믿었던 정부의 고위 관리까지 어설픈 사실만 공개하고 입을 다물어 버린 것도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원해주지 않았던 과학기술계에 대한 섭섭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의 입장도 난처하다. 실험 결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야 하는 일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 박사에게 더 큰 용기와 책임감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선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는 방송사에 정체도 분명하지 않은 시료를 던져주었던 것은 황 박사의 실수였고, 대국민 사과 이후 황 박사가 잠적해버린 것은 더욱 큰 잘못이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용감하게 나서서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지금까지 황 박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정부도 황 박사에게 과학자답게 진실을 밝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느닷없이 불거진 '가짜 복제' 논란
 
이번 사태는 우리 정부의 한심한 위기관리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난자 채취와 관련된 윤리 논란과 연구 결과의 '가짜' 논란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윤리 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회의 논란은 건전하고 바람직한 것이었다. 애국심에 불타는 누리꾼들의 압력으로 광고주가 광고를 포기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은 이번이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
 
정말 당혹스러운 일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그런 누리꾼의 모습이 불만스럽다며 아무 대책도 없이 '가짜 논란'에 불을 지펴버린 일이었다. 그런 사실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방송사의 '무리한 취재'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혀주기만 했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다른 길은 없다. 땅에 떨어져버린 우리 사회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를 되찾기 위해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뿐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과학자들이 연구실에 ‘틀어 박혀서' 진정으로 세계적인 업적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훌륭한 성과에 대한 대중적 환호는 뜬구름에 불과한 것이고, 과학자의 업적은 그런 환호에 의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기'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인기에 연연한 기업가가 성공할 수 없듯이 대중적 인기에 맛을 들인 과학자도 진정으로 성공할 수가 없다. 민감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가 직접 언론에 나서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리도 과학자들의 홍보, 윤리, 법률 문제를 전문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가 됐다.
 
과학자를 '실험실 밖'으로 불러내지 말아야
 
무엇보다 우리 과학기술 정책에서 불필요한 '거품'이 과감하게 제거되어야 한다. 공연히 노 벨상과 100조원의 시장을 들먹이면서 스타 과학자를 만든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을 당장 멈춰야 한다. 열심히 연구하는 유능한 과학자들을 조용히 찾아내서 적절한 수준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과학자를 '실험실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생명 윤리에 집착하던 사람들도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물론 생명 윤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합의를 못해서 존재하지도 않는 '규범'을 지키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연구 성과를 무작정 가짜라고 몰아붙이던 사람들도 자숙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주역이었던 과학자들을 아무 근거도 없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