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친환경농업 이대론 안된다 5.생활속에서 나오는 캐나다의 유기농업
강진신문 2005. 12. 8.
캐나다 북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캐로우나시. 벵쿠버시에서 동남쪽으로 5시간 정도 승용차로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길이만 100㎞에 이르는 오카나간(Okanagan)호수가 유명한 곳으로 BC주 500여 유기농 농가 중 104개가 이 호수 주변에 분포돼 있다.
이곳의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Summerhill Pyramid Winery) 농장은 관광객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다.
이 농장은 유일하게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기농포도로 제조한 와인이 캐나다 최고품질을 자랑한다. 규모 역시 캐나다에서 가장 큰 유기농 포도농장으로 42에이커에 달한다.
와인상점의 지배인 티비(Tibby)씨는 “캐나다는 세계 제일의 와인국가이다. 케나다에서 최고인 섬머일의 와인은 세계 최고나 마찬가지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섬머힐 와인이 최고의 대접을 받기 까지는 이 농장의 주인 스티븐(Steven)씨의 18년 고생이 있었다. 스티븐씨는 유기농포도에서 최고의 와인맛이 나온다는 것을 믿고 1987년부터 유기농업을 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농약을 하지 않았고 퇴비는 항상 토양의 상태를 체크 한 후 유기비료만 투입해 왔다.
스티븐씨가 지난 1998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유기농업협회 (COABC; Certified Organic Association of British Columbia)로부터 유기농인증을 받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 유기농업협회로부터 지금도 매년 심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같은 노력 덕분에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30% 정도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국토를 유지하고 있다는 캐나다에서도 유기농 농산물은 이처럼 여전한 관심거리다.
캐나다에서 유기농인증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는 3천여호 정도로 이들이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은 전체 캐나다 농산물의 1% 정도에 해당된다.
미국, 독일과 함께 세계 유기농업을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는 캐나다의 유기농업 규모로는 형편없어 보이지만 1%에 대한 의미는 각별하다.
버논시에 있는 COABC의 로셸 아이젠(Rochell Eisen· 여)씨는 “일반 농산물이 크게 불신을 받지 않은 가운데 유기농산물이 고유의 영역을 확보해 가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며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럼 캐나다 농민들은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유통시킬까. COABC의 추정에 따르면 캐나다의 유기농산물은 전체 생산물의 70% 정도가 생산 현지에서 판매(Direct Market)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가 가장 성공한 경우이고, 인근 베론시 필그림(Pilgrim) 농장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와 딸기의 상당부분을 현지 주민들이나 농장방문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판매는 유기농산물 뿐 아니라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여서 유기농산물만의 고유형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도시 유통망도 괜찮은 편이다. 캐나다 벵쿠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그랜드빌 아일랜드 퍼블릭 마켓. 한국 같으면 동대문시장이나 광주의 양동시장쯤 되는 이곳에서 유기농산물은 꽤 인기있는 품목이었다.
3평 정도의 유기농전문매장의 주인 스톰럭(Storm Luck)씨는 지난 여름의 ‘영광’을 들려 주었다. 지금 매장옆으로 3배 정도의 유기농산물 전문코너를 운영했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는 것이다.
럭씨는 “유기농산물이 다른 농산물 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고정 소비층이 분명히 있다”며 “겨울에는 유기채소가 나오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판매량이 다소 소강상태라 매장을 줄인다”고 말했다.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지역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점은 세이프웨이(SAFYWAY)로 통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동이나 군단위에 하나씩은 세이프웨이가 있다.
기자가 몇 군데를 돌아본 결과 벵쿠버 시내의 세이프웨이는 물론 외곽에 있는 세이프웨이에도 보통 20여가지의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고정 유기농코너가 조그맣게 설치돼 운영되고 있었다.
유기농산물 유통을 가장 크게 담당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는 역시 유기농 전문매장이다. 벵쿠버시에 있는 유기농전문매장은 규모가 컸다.
벵쿠버시 부촌중의 하나인 서구 2285번가에 있는 케이퍼스(CAPERS)는 매장규모가 400여평에 달했다. 1993년에 들어선 벵쿠버의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매장이며 취급 유기농산물은 500여가지에 달한다.
이곳의 고객서비스 팀장인 사리 로긴(Sary Login)씨는 “한달에 3만명 정도가 매장을 이용하고 있다”며 “매출은 정확히 얘기해 줄수 없지만 전년도 보다 크게 늘었다”고 소개했다.
케이펄스 매장에 유기농산물을 넣으려는 농민들은 우선 마케팅 부서에 신청서를 제출해야하고 이를 접수한 회사측은 담당직원을 보내 우선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주변 여론을 청취해 해당 농민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었다.
이처럼 유기농산물을 취급하는 판매점이 벵쿠버시에서만 7개에 달해 유기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캐나다 유기농산물이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무리없이 다가가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인증기관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BC주의 COABC처럼 캐나다에는 전국에 4개의 인증기관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이란 국가기관이 인증업무를 담당하지만 캐나다는 일본유기농업인증협회(JAS)와 마찬가지로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정부기관이 담당하는 인증업무와 민간단체의 그것은 장단점이 있어 어떤게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COABC의 커스틴 케인 수석 감독관의 말) 민간인증업체가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철저히 배제된다. 유기농인증기관의 운영비를 보조해줄 뿐이다. 연방정부나 주 정부, 시정부가 유기농업 규모를 계획하지도 않고 농민들에게 지원하는 것도 전무하다.
유기농업이 환경을 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농업인데 국가나 자치단체가 농민들을 지원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로첼 아이젠(Rochell Eisen)씨는 질문 내용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냐. 유기농업은 시장논리에 따를 뿐이다. 유기농산물의 가치가 떨어질 때 언제든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판단하도록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증여부만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대답했다.
결국 인증기관도 소비자들을 위해 존재 할 뿐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일본의 유기농업 구조와 크게 다른게 아니였다.
협소한 공간에서 어렵게 소득을 창출해야하는 우리나라 농업여건과 캐나다와 일본의 농업구조는 크게 다르지만 유기농업이야말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말은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BC주의 콜롬비아대학은 유기농업은 시간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UBC)의 학생수는 5만명이지만 이곳의 졸업률은 약 50% 정도이고 나머지는 중도 탈락한다.
학생들은 그만큼 고된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만 덕분에 이 학교의 실력은 세계 50위안에 링크돼 있다.
이 대학의 광활한 캠퍼스 서쪽 끝에 산림으로 둘러쌓인 ‘UBC 농장’이 있다. 북미지역에서 캐나다의 유기농업은 1등으로 꼽히고, 브리티시대학 유기농연구소는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강진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이 해 준 담당교수인 아트봄케 교수는 자리에 앉으라는 인사도 없이 곧바로 밭으로 걸어나갔다. 마크란 조교가 아트봄케 교수의 뒤를 따랐다.
유기농관련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캐나다에서는 유기농의 대부로 통하는 세계적인 유기농 권위자다.
60에이커에 이르는 농장은 하얀 눈이 덮혀 있었다. 이 곳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는 유기농산물은 250여 가지 정도. 농대생들의 기본적인 실습과 함께 연간 2천500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 주민들이 유기농 채소의 경작을 돕고 있다.
한 지점에서 조교가 눈을 걷어내자 눈이 부시도록 푸른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조교가 보여 주려한 것은 새싹이 아니라 새싹아래 땅을 덮고 있는 종이로된 부직포였다.
봄케 교수는 “부직포를 이용해 영양분 공급을 조절하고 제초효과도 보고 있다”며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 유기농산물이 어느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는지를 실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농장 곳곳에는 실험용 소규모 포장이 즐비했다. 봄케교수와 마크 조교는 여기서 나온 연구결과를 수시로 연구저널이나 유기농잡지등에 기고해 농민들이 실제 농사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농민들이 신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데 인색하지 않을까. 봄케교수는 “한국의 농민들이나 캐나다 농민이나 전통농법을 지키려는 고집이 쎄다”고 웃었다.
봄케교수는 그러나 “그런 농민들을 설득하고 때론 유도해서 장기적으로 유기농업을 과학화하는게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UBC 농장에서 나온 유기농산물은 매년 5월 하순부터 10월까지 주말이면 농장에 마련된 좌판에서 직접 판매된다. 농장 한 켠에 판매대가 마련돼 있는데 시설이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벵쿠버 주민들이 유기농산물을 구입하고, 유기농산물 재배 농민들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교환하는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장이 열리면 보통 200여명의 주민들이 UBC 서쪽 숲속에 숨어있는 장을 찾고 있다.
유기농업 방법이 학문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학생들에게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공부까지 병행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세계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자랑하면서 일반농산물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캐나다이지만 한쪽에서는 이처럼 치밀하게 유기농업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봄케교수는 “땅을 지키고 가꾸어서 미래의 후손들도 건강하게 살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오랜 세월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10년 이상 한길을 간 사람 정도가 유기농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10년 경력의 배태랑이고, 경남 함양의 양기조씨도 10년 한길을 걸어왔다.
일본의 도치키현의 가누마시 센도마을의 다시마씨는 22년 째 유기농업을 하고 있고 . 시모쯔카현 리부촌의 나카야씨 역시 18년 구력을 자랑한다.
캐나다 캐로우나시의 스티븐씨는 18년 동안 유기농의 외길을 걸어왔고, 베론시 Pilgrim 농장의 로버트 힐터씨도 10년동안 한 우물을 파왔다.
2. 유통망을 확보하라
유기농산물의 비중은 현 단계에서 세계적으로 1~2% 정도. 국가적인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품의 유통을 대부분 농민들이 직접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5년 이상된 단골손님을 적지 않게 확보하고 있고, 함양의 양기조씨도 서울 백화점에서 마당발로 통하고 있다. 일본의 다시마씨는 찾아오는 단골손님 중심으로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고, 나카야씨는 대도시 소비층을 직접 발로 뛰며 잡고 있다.
캐나다의 스티븐씨는 와인공장을 차려놓고 주변 호수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포도와 와인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3. 신뢰를 형성해라
오랜세월이 필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유통망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연관있는 말이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유통업자에게 사기를 당한적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믿고 쌀을 보내주었다.
일본의 다시마씨는 “내 농산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건을 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고정고객과 유대관계가 깊다. 나카야씨는 단골들을 불러 밭일을 시킬 정도로 소비자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캐나다의 스티븐씨가 생산하는 유기농 포도주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이 되어 버렸다. 오늘의 신뢰가 있기 까지 그동안 스티븐씨가 겪어온 어려움을 말로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4. 가족이 함께 준비해라
유기농은 오랜 시간과 끈기가 필요한 농업이다. 중간에 좌절할 때가 많다. 그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부부가 함께 유기농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성공확률이 높았다.
칠량의 김길남씨 부부는 처음부터 부부가 함께 유기농업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유기농업을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부간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일본의 나카야씨 역시 처음 유기농업을 한 동기가 부인이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권유에서부터 출발했다.
중간에 수차례 좌절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부부가 함께 극복했다. 유기농업은 자리를 잡기까지 경제적 실패가 많을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사랑이 큰 힘이 되는 경우다.
5. 한가지 품목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유기농업은 여러가지를 재배해서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게 지혜로 보였다. 유기농쌀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나라 농민들과는 달리 일본이나 캐나다는 여러 가지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시마상이 재배하고 있는 유기농산물은 일곱가지에 달하고, 나카야씨는 20여가지의 밭작물을 재배하면서 한가지가 실패하면 다른 작물에서 이를 벌충하는 과정을 확보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포도나 사과등을 직접 판매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쥬스공장이나 와인공장을 운영하면서 위험부담을 줄이고 있었다. 앞으로 유기농업은 쌀을 재배하면서 가축을 키우고, 가축에서 나온 축분을 가지고 퇴비를 만들면서 과수원을 함께 운영하는 순환식 영농이 되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6. 환경을 살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철학이 필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의 유기농산물 재배 농민들은 큰 부자가 아니였다. 수확량은 적게 내면서 오히려 고생은 더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환경을 살리면서, 남들보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주희춘 기자 ju@gj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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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신문 2005. 12. 8.
캐나다 북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캐로우나시. 벵쿠버시에서 동남쪽으로 5시간 정도 승용차로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길이만 100㎞에 이르는 오카나간(Okanagan)호수가 유명한 곳으로 BC주 500여 유기농 농가 중 104개가 이 호수 주변에 분포돼 있다.
이곳의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Summerhill Pyramid Winery) 농장은 관광객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다.
이 농장은 유일하게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기농포도로 제조한 와인이 캐나다 최고품질을 자랑한다. 규모 역시 캐나다에서 가장 큰 유기농 포도농장으로 42에이커에 달한다.
와인상점의 지배인 티비(Tibby)씨는 “캐나다는 세계 제일의 와인국가이다. 케나다에서 최고인 섬머일의 와인은 세계 최고나 마찬가지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섬머힐 와인이 최고의 대접을 받기 까지는 이 농장의 주인 스티븐(Steven)씨의 18년 고생이 있었다. 스티븐씨는 유기농포도에서 최고의 와인맛이 나온다는 것을 믿고 1987년부터 유기농업을 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농약을 하지 않았고 퇴비는 항상 토양의 상태를 체크 한 후 유기비료만 투입해 왔다.
스티븐씨가 지난 1998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유기농업협회 (COABC; Certified Organic Association of British Columbia)로부터 유기농인증을 받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소요됐다. 유기농업협회로부터 지금도 매년 심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같은 노력 덕분에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30% 정도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국토를 유지하고 있다는 캐나다에서도 유기농 농산물은 이처럼 여전한 관심거리다.
캐나다에서 유기농인증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는 3천여호 정도로 이들이 생산하는 유기농산물은 전체 캐나다 농산물의 1% 정도에 해당된다.
미국, 독일과 함께 세계 유기농업을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는 캐나다의 유기농업 규모로는 형편없어 보이지만 1%에 대한 의미는 각별하다.
버논시에 있는 COABC의 로셸 아이젠(Rochell Eisen· 여)씨는 “일반 농산물이 크게 불신을 받지 않은 가운데 유기농산물이 고유의 영역을 확보해 가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며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럼 캐나다 농민들은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유통시킬까. COABC의 추정에 따르면 캐나다의 유기농산물은 전체 생산물의 70% 정도가 생산 현지에서 판매(Direct Market)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섬머힐 피라미드 와이널리가 가장 성공한 경우이고, 인근 베론시 필그림(Pilgrim) 농장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와 딸기의 상당부분을 현지 주민들이나 농장방문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판매는 유기농산물 뿐 아니라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여서 유기농산물만의 고유형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도시 유통망도 괜찮은 편이다. 캐나다 벵쿠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그랜드빌 아일랜드 퍼블릭 마켓. 한국 같으면 동대문시장이나 광주의 양동시장쯤 되는 이곳에서 유기농산물은 꽤 인기있는 품목이었다.
3평 정도의 유기농전문매장의 주인 스톰럭(Storm Luck)씨는 지난 여름의 ‘영광’을 들려 주었다. 지금 매장옆으로 3배 정도의 유기농산물 전문코너를 운영했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는 것이다.
럭씨는 “유기농산물이 다른 농산물 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고정 소비층이 분명히 있다”며 “겨울에는 유기채소가 나오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판매량이 다소 소강상태라 매장을 줄인다”고 말했다.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지역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점은 세이프웨이(SAFYWAY)로 통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동이나 군단위에 하나씩은 세이프웨이가 있다.
기자가 몇 군데를 돌아본 결과 벵쿠버 시내의 세이프웨이는 물론 외곽에 있는 세이프웨이에도 보통 20여가지의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고정 유기농코너가 조그맣게 설치돼 운영되고 있었다.
유기농산물 유통을 가장 크게 담당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는 역시 유기농 전문매장이다. 벵쿠버시에 있는 유기농전문매장은 규모가 컸다.
벵쿠버시 부촌중의 하나인 서구 2285번가에 있는 케이퍼스(CAPERS)는 매장규모가 400여평에 달했다. 1993년에 들어선 벵쿠버의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매장이며 취급 유기농산물은 500여가지에 달한다.
이곳의 고객서비스 팀장인 사리 로긴(Sary Login)씨는 “한달에 3만명 정도가 매장을 이용하고 있다”며 “매출은 정확히 얘기해 줄수 없지만 전년도 보다 크게 늘었다”고 소개했다.
케이펄스 매장에 유기농산물을 넣으려는 농민들은 우선 마케팅 부서에 신청서를 제출해야하고 이를 접수한 회사측은 담당직원을 보내 우선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주변 여론을 청취해 해당 농민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었다.
이처럼 유기농산물을 취급하는 판매점이 벵쿠버시에서만 7개에 달해 유기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캐나다 유기농산물이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무리없이 다가가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인증기관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BC주의 COABC처럼 캐나다에는 전국에 4개의 인증기관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이란 국가기관이 인증업무를 담당하지만 캐나다는 일본유기농업인증협회(JAS)와 마찬가지로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정부기관이 담당하는 인증업무와 민간단체의 그것은 장단점이 있어 어떤게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COABC의 커스틴 케인 수석 감독관의 말) 민간인증업체가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철저히 배제된다. 유기농인증기관의 운영비를 보조해줄 뿐이다. 연방정부나 주 정부, 시정부가 유기농업 규모를 계획하지도 않고 농민들에게 지원하는 것도 전무하다.
유기농업이 환경을 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농업인데 국가나 자치단체가 농민들을 지원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로첼 아이젠(Rochell Eisen)씨는 질문 내용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냐. 유기농업은 시장논리에 따를 뿐이다. 유기농산물의 가치가 떨어질 때 언제든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판단하도록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증여부만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대답했다.
결국 인증기관도 소비자들을 위해 존재 할 뿐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일본의 유기농업 구조와 크게 다른게 아니였다.
협소한 공간에서 어렵게 소득을 창출해야하는 우리나라 농업여건과 캐나다와 일본의 농업구조는 크게 다르지만 유기농업이야말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말은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BC주의 콜롬비아대학은 유기농업은 시간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UBC)의 학생수는 5만명이지만 이곳의 졸업률은 약 50% 정도이고 나머지는 중도 탈락한다.
학생들은 그만큼 고된 학교생활을 하게 되지만 덕분에 이 학교의 실력은 세계 50위안에 링크돼 있다.
이 대학의 광활한 캠퍼스 서쪽 끝에 산림으로 둘러쌓인 ‘UBC 농장’이 있다. 북미지역에서 캐나다의 유기농업은 1등으로 꼽히고, 브리티시대학 유기농연구소는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강진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이 해 준 담당교수인 아트봄케 교수는 자리에 앉으라는 인사도 없이 곧바로 밭으로 걸어나갔다. 마크란 조교가 아트봄케 교수의 뒤를 따랐다.
유기농관련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캐나다에서는 유기농의 대부로 통하는 세계적인 유기농 권위자다.
60에이커에 이르는 농장은 하얀 눈이 덮혀 있었다. 이 곳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는 유기농산물은 250여 가지 정도. 농대생들의 기본적인 실습과 함께 연간 2천500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 주민들이 유기농 채소의 경작을 돕고 있다.
한 지점에서 조교가 눈을 걷어내자 눈이 부시도록 푸른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조교가 보여 주려한 것은 새싹이 아니라 새싹아래 땅을 덮고 있는 종이로된 부직포였다.
봄케 교수는 “부직포를 이용해 영양분 공급을 조절하고 제초효과도 보고 있다”며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 유기농산물이 어느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는지를 실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농장 곳곳에는 실험용 소규모 포장이 즐비했다. 봄케교수와 마크 조교는 여기서 나온 연구결과를 수시로 연구저널이나 유기농잡지등에 기고해 농민들이 실제 농사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농민들이 신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데 인색하지 않을까. 봄케교수는 “한국의 농민들이나 캐나다 농민이나 전통농법을 지키려는 고집이 쎄다”고 웃었다.
봄케교수는 그러나 “그런 농민들을 설득하고 때론 유도해서 장기적으로 유기농업을 과학화하는게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UBC 농장에서 나온 유기농산물은 매년 5월 하순부터 10월까지 주말이면 농장에 마련된 좌판에서 직접 판매된다. 농장 한 켠에 판매대가 마련돼 있는데 시설이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벵쿠버 주민들이 유기농산물을 구입하고, 유기농산물 재배 농민들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교환하는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장이 열리면 보통 200여명의 주민들이 UBC 서쪽 숲속에 숨어있는 장을 찾고 있다.
유기농업 방법이 학문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학생들에게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공부까지 병행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세계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자랑하면서 일반농산물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캐나다이지만 한쪽에서는 이처럼 치밀하게 유기농업을 준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봄케교수는 “땅을 지키고 가꾸어서 미래의 후손들도 건강하게 살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오랜 세월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10년 이상 한길을 간 사람 정도가 유기농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10년 경력의 배태랑이고, 경남 함양의 양기조씨도 10년 한길을 걸어왔다.
일본의 도치키현의 가누마시 센도마을의 다시마씨는 22년 째 유기농업을 하고 있고 . 시모쯔카현 리부촌의 나카야씨 역시 18년 구력을 자랑한다.
캐나다 캐로우나시의 스티븐씨는 18년 동안 유기농의 외길을 걸어왔고, 베론시 Pilgrim 농장의 로버트 힐터씨도 10년동안 한 우물을 파왔다.
2. 유통망을 확보하라
유기농산물의 비중은 현 단계에서 세계적으로 1~2% 정도. 국가적인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품의 유통을 대부분 농민들이 직접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5년 이상된 단골손님을 적지 않게 확보하고 있고, 함양의 양기조씨도 서울 백화점에서 마당발로 통하고 있다. 일본의 다시마씨는 찾아오는 단골손님 중심으로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고, 나카야씨는 대도시 소비층을 직접 발로 뛰며 잡고 있다.
캐나다의 스티븐씨는 와인공장을 차려놓고 주변 호수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포도와 와인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3. 신뢰를 형성해라
오랜세월이 필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유통망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연관있는 말이다. 칠량의 김길남씨는 유통업자에게 사기를 당한적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믿고 쌀을 보내주었다.
일본의 다시마씨는 “내 농산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물건을 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고정고객과 유대관계가 깊다. 나카야씨는 단골들을 불러 밭일을 시킬 정도로 소비자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캐나다의 스티븐씨가 생산하는 유기농 포도주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이 되어 버렸다. 오늘의 신뢰가 있기 까지 그동안 스티븐씨가 겪어온 어려움을 말로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4. 가족이 함께 준비해라
유기농은 오랜 시간과 끈기가 필요한 농업이다. 중간에 좌절할 때가 많다. 그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부부가 함께 유기농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성공확률이 높았다.
칠량의 김길남씨 부부는 처음부터 부부가 함께 유기농업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유기농업을 집어치우고 싶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부간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다.
일본의 나카야씨 역시 처음 유기농업을 한 동기가 부인이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권유에서부터 출발했다.
중간에 수차례 좌절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부부가 함께 극복했다. 유기농업은 자리를 잡기까지 경제적 실패가 많을수 있기 때문에 가족들의 사랑이 큰 힘이 되는 경우다.
5. 한가지 품목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유기농업은 여러가지를 재배해서 위험부담을 분산시키는게 지혜로 보였다. 유기농쌀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나라 농민들과는 달리 일본이나 캐나다는 여러 가지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시마상이 재배하고 있는 유기농산물은 일곱가지에 달하고, 나카야씨는 20여가지의 밭작물을 재배하면서 한가지가 실패하면 다른 작물에서 이를 벌충하는 과정을 확보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포도나 사과등을 직접 판매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쥬스공장이나 와인공장을 운영하면서 위험부담을 줄이고 있었다. 앞으로 유기농업은 쌀을 재배하면서 가축을 키우고, 가축에서 나온 축분을 가지고 퇴비를 만들면서 과수원을 함께 운영하는 순환식 영농이 되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6. 환경을 살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철학이 필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의 유기농산물 재배 농민들은 큰 부자가 아니였다. 수확량은 적게 내면서 오히려 고생은 더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환경을 살리면서, 남들보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주희춘 기자 ju@gj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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