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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의 그늘이 낳은 파산, 그리고 면책이라는 묘약

날마다좋은날 2005. 11. 30. 09:31
양극화의 그늘이 낳은 파산, 그리고 면책이라는 묘약
파산은 낙인이 아니라 채무자의 회생이 되어야

 

편집부 webmaster@agri-korea.org

 

 송병춘 (변호사)


    요즈음 정치권이나 정부 일각에서 ‘양극화’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양극화는 우연히 만들어진 기형적 흉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의 결과물이고, 우리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삼킬 수도 있는 거대한 괴물”이라면서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성장과 개발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또 개방을 하는 만큼, 양극화도 더 성장하고 심화되는 역설에 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절대빈곤층이 5백만명을 넘어섰고, 파산상태에 이른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올 1/4분기를 기준으로 상위 10% 가구의 소득액은 하위 10%의 18.2배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 몇 해 동안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의도하지야 않았겠지만,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 뿌리내린 ‘양극화’에 ‘빈곤화’를 하나 덧붙여가고 있다. 최근 나온 1분기 가계조사 결과는, 단순히 소득격차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 저소득계층의 소득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 물가상승분을 빼고 볼 때,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 하위 10% 계층의 1분기 월평균 근로소득은 2002년에 견줘 무려 21%나 줄었다. 그 위 10% 계층의 소득은 2003년 이후 6% 줄었다. 소득감소세는 중위계층으로도 번져, 근로자 가구 절반이 2003년보다 실질근로소득이 줄었다. 서민들의 빈곤화는 고용이 불안정해지거나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 소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중소기업의 고용환경이 열악해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보호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주1)

양극화의 원인과 해결책

     중소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고용 비중은 98년 75.3%에서 해마다 늘어나, 2003년에는 87.0%에 이른다. 그러나 대기업에 견준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98년 76.2%에서 지난해 64.0%로 크게 낮아졌다. 특히 제조업 부문은 대기업의 60.9%로 더 열악한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임금 수준은 되려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이나 인적·물적 구조조정의 성과는 대기업이 차지하는 반면, 각종 비용은 중소기업에 떠넘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는 부유층이 장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돈을 쓰지 않아서 경기침체 현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보호육성책이 거론되고 있고, 빈곤계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이 확대 추진되고 있기는 하다.(주2)

     양극화 현상의 근원은 사실 간단하다. 우리 경제가 대기업-대자본위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대기업-대자본위주의 경제 운용은 정부가 주도한다). 일부 대기업에 경제활동이 집중되고 독점적 지배력이 증대되다 보니, 중소기업은 피폐해지고, 자영업자들의 경제활동 영역도 자꾸만 좁아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영업자들의 몫이었던 개인서비스 및 유통업이 갈수록 대기업들에 의해 잠식되고 있고, 유휴노동력이 몰려든 일부 서비스업종에서는 과당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장우선의 정책은 금융, 재정 정책에서 모든 자원을 대기업에 집중시켰고, 통상 정책에서는 대기업의 수출증대를 위해 취약한 농업과 중소제조업 분야를 희생시키며 무분별한 시장개방을 허용하였다..(주3)  또한 대기업의 이윤 증대를 위해 노동유연성을 증대시킨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 들였다. 작금의 양극화-빈곤화 현상은 역대 개발독재의 원흉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정부의 대기업-대자본위주의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것이고, 근래에는 눈앞의 성장과 안정에만 급급하여 경제구조의 개혁 내지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한 김대중, 노무현 등 문민정부의 무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주4)

     그 해결책 역시 단순하고도 명백하다. 첫째, 국제투기자본을 규제하고,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 둘째, 자본위주의 노동정책을 중단하고 고용안정, 최저임금정책 등을 확고히 추진해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분배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파산, 면책, 개인회생제도의 의미

    고용불안과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노동자‧자영업자들은 결국 파산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신용불량자가 4백만 명에 이르며, 추심을 피하기 위해 노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자주 보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채권금융기관들은 ‘빚을 안 갚겠다는 도덕적 해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상환유예 내지 분할상환을 미끼로 채무자들을 회유하려고 한다. 소위 ‘배드뱅크’니 ‘신용회복위원회’니 하는 채권추심기관들이 신용불량자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설치고 있고, 정부는 그에 장단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엄연히 파산-면책, 개인회생절차와 같은 공적채무조정제도가 구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들의 기세에 눌려 정부와 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파산자들을 위한 법률구조기금도 확보되어 있지 않다.     

    물론 개인파산-면책은 일종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파산선고는 채권자들에게 ‘이제 더 이상 무리하게 빚을 갚으라고 채무자를 들볶지 말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던 사람이 파산을 통하여 경제적 회생을 도모할 수 있으므로, 파산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묘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파산상태란 자신의 재산보다 빚이 현저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득으로는 원금의 변제는 커녕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파산상태에 빠졌어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빚을 얻어 빚을 갚는 행태를 한동안 반복한다. 그 사이에 이자가 이자를 낳는 식으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쓴 빚은 갚아야 한다’는 채무자의 도덕적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채권자측의 기상천외한 압박과 변제강요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월급과 가재도구를 압류하고, 전화-방문 등으로 수시로 채무자를 들볶고, 주변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까지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가족-친지들을 보증인으로 묶어 놓고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무자는 이중삼중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실로 ‘마술’과 같은 해결책이 바로 파산-면책이다. 파산이란 파산을 신청한 사람이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법원이 공권적으로 선언해 주는 것이다. 만약 채무자에게 약간의 재산이라도 있다면, 채무자는 재산을 모두 털어 내놓아야 하고, 채권자들은 여기서 자기 몫을 찾아갈 수 있다. 소위 ‘빚잔치'라는 것이다. 파산 그 자체는 경제적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면책이란, 빚잔치를 하고 남은 채무를 공권적으로 소멸시켜 주는 절차이므로 경제적 회생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파산자는 비록 알거지 상태가 되었지만, 더 이상 채권자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한편 파산과 유사하지만, 채무자가 매달 자기 수입에서 생계비를 제외하고 일정한 몫을 떼어 일정기간 동안(5년 정도) 빚을 성실히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면책시켜 주는 개인회생제도가 있다. 즉 파산하지 않고도 과중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인데, 농민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유용한 제도이다. 무담보채무의 경우 5억원, 담보부채무의 경우 10억원 이하의 채무를 가진 개인채무자가 신청할 수 있다.(주5)

     개인회생의 장점은 비록 파산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빚잔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즉, 기왕에 거주하던 집이나, 사업체, 점포(농민의 경우에는 농토와 농업시설․농기계 등)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채무 일부를 변제한다는 조건 하에) 나머지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무원이나, 회사 임원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근무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든지 하는 신분상 불이익을 입지 않는다. 물론 자영업자라 하더라도 사업전망이 어두워 사업을 폐지하고 싶다면 파산-면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또한 파산을 하더라도 신분상 불이익을 받는 것은 공무원이나 회사 임원 등 일부 신용을 중시하는 직종에서나 해당되므로 일반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직장인으로서, 빚만 많고 재산은 월세보증금 정도 밖에 없다면, 주저없이 파산-면책을 선택할 일이다.

파산은 낙인이 아니라 채무자의 회생(回生)을 의미해야

     머지 않았던 옛날에, 빚을 못갚는 채무자는 채권자의 노예가 되었다. 빚을 갚지 못하는 대신 채권자의 머슴살이를 하거나, 자기 자식을 머슴으로 들여 보내야 했던 것이다.(주6) 그 후, 근대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채무자를 노예로 삼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채무자들이 도망하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되자,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을 감옥에 처넣었다. 빚을 못갚는 자는 더이상 노예로 되지는 않았지만, 죄수로서 징역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형기조차 없이 빚을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는 경우도 있었다).  죄목은 ‘사기’였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자가 채권자에게 자신의 변제능력을 속이고 돈을 빌렸으니 사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무엇으로 판단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재산이 거의 없었다거나 수입이 변변치 못했다든가 하는 점으로 판단하겠지만, 그 기준은 상당히 애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사기죄가 채무자를 옥죄는 수단으로서 그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가 문명화될 수록, 국가는 사회적 약자인 채무자의 인권과 복지, 그리고 사회적 통합을 고려하게 되고, 그럴수록 사채놀이를 도와주기 위해 사법기관의 공권력이 남용되는 사례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본래 파산은 신분상의 낙인(烙印)이었고, 채무자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남은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갖기 위한 제도로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제 문명화된 대한민국에서 파산은 낙인이 아니라 채무자의 회생(回生)을 의미해야 한다. 파산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그 적대감은 어느 개인을 향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해 발산되게 마련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는 사인이 아니라 금융기관들이고, 공적자금까지 투입하여 이들을 비호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중채무자들은 대부분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형편만 되면 갚고 싶다고 게면쩍게 웃을 뿐이다. 로또처럼 인생역전의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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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1) :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고용노동자의 53%에 이르고, 작년에만 정규직이 35만1천명이 줄고, 비정규직이 78만8천명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와 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보호법안은 오히려 비정규직 사용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차별을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주2) :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자의 절반가량, 건강보험 가입자의 22.8%가 보험료를 체납하는 등 빈곤 확산으로 사회보험은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건강보험료 장기체납 저소득층에 대해 미납액을 탕감해주고 국민연금 납부를 독려하는 것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대책의 전부다.
그러다 보니 사회보험이 아니라 ‘누더기 보험’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주3) : 농촌과 농업의 피폐로 말미암아 이제 농촌은 더 이상 잠재노동력을 흡수하고, 피폐해진 도시노동자들의 삶을 보듬어줄 수 없게 되었다.

 (주4) : 특히 김대중 정부는 경기활성화를 명분으로 부동산투기를 조장하였고, 내수진작이라는 명분으로 카드사-고리대금업자들을 앞세워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였다.

 (주5) : 미국에서는 1986년 정기소득이 있는 소농‧가족농을 구제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파산법 안에 제12장을 신설하였는데, 그 특징은, 채무 한도가 일반정기소득자(제13장)의 경우 75만달러인데 반해, 가족농의 경우 150만달러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일반 자영업자에 비해 농민의 영업설비 규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6) : 로마에서는 무산자를 재산이라고는 자식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 proletarius'라고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