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유기농업

농업연구모임 첫 번째 발표를 보고

날마다좋은날 2005. 11. 29. 08:44
농업연구모임 첫 번째 발표를 보고
비나리  2004-02-18 21:46:07, 조회 : 90, 추천 : 12

농업연구모임 첫 번째 발표를 보고

가끔 희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곧잘 희망은 절망으로 뒤바뀌어 되돌아오고도 한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보지만, 그렇다고 진짜 희망을 만나는게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농업연구모임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권순호씨는 아직까지 희망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무겁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얘기를 하지만, 답답한 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발표는 발기모임보다 사람이 적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그리고 정성들여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나쁜 점은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난 머리수 많은 걸 믿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이제는 농이 희망이다라는 저작을 가지고 있는 정경식 선생은 더 이상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좋을만큼 유기농업으로는 잘 알려져 있는 농민이다. 농민은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 한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면서 첫 운을 떼었다. 도대체 도시에서 버적거리고 책이나 보거나 글이나 쓰는 넘들이 무슨 농업 얘기를 하겠다는 건가...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공들여서 왜 다양성과 자발성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생각들이 땅 속에서 피어올라야 하는지, 두 시간 동안 그야말로 공들여서 한 호흡 한 호흡 떼어놓으신다. 문득 20년을 땅에서 한 길로 살아온 사람의 긴 호흡과 고집스러운 정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농업을 살리기 위한 요소들은 이미 대충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함유는 약하지만, 우리 농업 살리기에서 시작한 작은 씨앗이 학교 급식조례운동을 만나면서 일단 길은 잡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오래된 농업에서의 소위 농업귀족들과 유기농에 대한 사회적 편견.. 이런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농업은 인권의 문제라는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가슴 한구석이 몽울처럼 접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차별이라는 얘기와 인권 얘기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은 농업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지만, 몇 달 동안 모임을 만들고 방향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깊어간다.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말이다.

여섯 번의 발제를 유기농업과 순환에 관한 경험으로 채웠다. 배운 것이 많을까? 알 수 있는 얘기들이고, 또 알고 있는 얘기들이다. 그렇지만 삶과 겪어낸다는 것은 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정경식 선생이 첫 발제였던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고생했던 사람들의 한 단면을 만나면서, 과연 무엇이 순환적이고, 왜 공동체인가에 대해서 조금은 다시 생각해본다.

늘 공동체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정경식 선생이 공동체는 이제 자신과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는 한 마디를 하고 긴 숨을 내어뱉는다. 그럴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한다... 상처... 내게도 상처가 있고,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귀농의 20%만이 3년을 넘어서 살아있을 수 있는 현재의 상황...

다음 번 모임 때에는 농림부나 농협의 환경친화농업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을 불러서 도대체 이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긴 방향이 무엇인지 속사정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농업기반공사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도 추천을 받아서 모임에 같이 참여하기로 하였다.

농업연구모임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한 가지 문제를 놓고 고민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경험, 그리고 다음 번에는 정책에 대해서 고민할 생각이다. 기술, 소비, 금융, 농업 공동체, 이렇게 하면 약속한 여섯 번이 찬다. 그 동안에 모임은 조금은 더 살이 붙어있고, 조금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권순호씨가 준비할 이천의 땅에서는 유기놈 훈련 프로그램 형식으로 실제 농사를 지어볼 생각이다. 얼치기가 귀한 땅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실패가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이미 제시된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전체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구상은 어느 정도 된 셈이다. 그렇지만 머리로 생각한 것이 늘상 현실에서 옳지는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생각을 전개해본다.

기본적인 방향은 소농형 유기농업으로 현재의 농업체계를 전환시키는 것이고, 직불제와 생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수단으로, 40만에서 60만 정도의 유기농 농가를 지원하는 틀을 구상하는 중이다. 전체적으로는 20% 정도의 농업을 유기농으로 전환시키는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는 중이다.

첫 구상을 길게 끌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발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면서 4월에는 홍성과 같이 모델로 제시되는 곳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해볼까 한다... 도니가 없어서 약간은 고민스럽지만, 도니가 없다고 뭘 못해본 적은 별로 없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답을 찾는 속에서 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두 달 정도 뜸을 더 들이고, 조금은 더 많이 농업연구모임에 사람들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경식 선생님은 소 한 마리를 축제를 위해서 맡겨달라고 하신다... 즐거운 발상이다. 송아지 한 마리가 30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소에서 나오는 유분과 노동은 전통적 유기농의 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소가 다 자라면 유기농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 한 번을 벌이면 좋겠다고 하신다. 즐거운 상상이다.

제일 시급한 일은 정부의 대형 기업농 정책으로 달려나가는 예봉을 꺽는 일이다. 이 일이 일단 전개되면 소농이니 유기농이니, 혹은 귀농이니 농촌공동체니 전부 물건너가는 일이다.

그래서 또 계속 속으로 내용을 곰씹으면서 한 발씩 나가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한편으로는 긴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연구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모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급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을 해야 한다.

손가락을 꼽아서 천기를 짚어보니, 6월 전에는 유기농업과 관련된 정책과 방향을 담은 책자 형태의 발간물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전농을 비롯한 농업지도자들이, 전농의 3대 강령에 들어있는 환경친화농업에 대해서 생각을 제고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 농민과 정부의 생각이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농업 문제에 대해서 부채의식 같은 걸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부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도 우리나라의 농촌이 공동체로, 그리고 축제의 장으로 살아나는 걸 보고 싶다. 그리고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 것인지, 돈독 오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인드라망이나 생협에서 몇 년씩 작은 꿈 하나 부여잡고 젊음을 바치셨던 분들을 생각하면, 농업연구모임이 너무 늦기 전에 시작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하나와, 사람들의 소박한 믿음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