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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0일 오후 06:34

날마다좋은날 2017. 9. 10. 18:34

※존애원의 최초 설립자 성 람은 누구인가?




성 람(成 濫)은<1556(명종 11년)∼1620(광해군 12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창녕성씨 16대>, 호는 청죽(聽竹)이며.
관찰사 세평(世平)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성리학에 뜻을 두어
형, 성 호(成 浩)와 함께 남언경(南彦經)에게 수업하여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 이(李 珥)·성 혼(成 渾)을 사사 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의학에도 밝아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구언령(求言令)이 있을 때마다
임금님께 진소(陳疏)하였으며, 임진왜란 후에는
처가인 상주에 거처하면서
조 익(趙 翊)·정경세(鄭經世)·이 준(李 埈) 등과 교유하였다.

벼슬은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임명된 이래
장원,별좌,공조좌랑,무주현감을 역임한 바 있다.
천거로 좌랑, 현감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도학군자라는 평을 받았다.

1589년(선조22년)에 그는 사회의 나쁜 폐단을 적어 임금에게 올렸다.

1. 하늘을 공경하여 재앙을 없앨 것.
2. 기강을 세워서 벼슬아치들을 바로 잡을것.
3. 제물을 아껴서 나라의 근본을 굳힐 것.
4. 받는 것을 줄여서 백성의 힘을 늦추게 할 것.
5. 걱정없을 때에 방비하여 나라의 안전을 도모할 것.
6. 도의를 밝혀 절의를 기를 것.
7. 왕자를 가르쳐 끝없이 편안히 할 것.
8. 신의를 밝혀서 백성의 뜻을 안정시킬 것.

위의 8개항을 건의하여 나라 걱정도 함께 하였다.

죽기 전에 아래와 같은 유훈을 남기기도 했다.

1. 마음은 효제충신(孝梯忠信)을 주로 할 것.
2. 행실은 삼가고 묵묵하게 처세할 것.
3. 벗의 과실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 것.
4. 가정에서는 사소한 말을 마음에 두지 말 것.

"이것을 꼭 실행하고 종신토록 잊지 말게 하면 내 죽더라고
살아있는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주 내서면 능암리 운계(雲溪)서원과 경남 창녕 물계(勿溪)서원에 매년 향사를 지낸다.

그는 특히 존애원이라는 사설 의료기관을 세워 지방민을 구료하기에
온힘을 기울였다. 현재 상주시 청리면 율리 존애원이 그곳이다.

친구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사람의 병은 종류가 4백이 넘도록 많아 약은 한 두 가지도
갖추지 못하여 비명에 죽는 일이 자주 있으니
공은 도학 공부도 깊고 의술에도 통달하니
청죽(聽竹) 성 람(成 濫)의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서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을 보고도 막연히 바라 보고만 있겠는가?
여러 동지들과 약재를 사서 급히 쓰일 것에 대비 하고져 하니
병을 진찰하고 약을 쓰는 일은 공의 일이 아니오』

청죽 성 람 선생은 기꺼이 찬성하였다.
여러 친구들도 이 일에 기꺼이 힘쓰기로 약속하였다.

이의 주동한 인물은
청죽(聽竹) 성 람(成 濫), 창석(蒼石) 이 준(李 埈),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세 사람이었다.

국내에서 나는 재료는 여유있고 여가있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캐고 모았다.
쌀과 베를 내어서 약재를 수입 하였고 창고도 지었다.
환자들이 날마다 모여들어 숙박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지어 환자와 나그네가 기다릴수 있는 곳을 마련하였다.
약을 팔아서 그 원가를 보충하였다.
그리고 모든 약재들을 갖추어 언제든지 환자의 요구에 응하였다.

송나라 선비 정자(程子)의 존심애물(存心愛物)의 말을 따서
이 의료기관을 존애원이라 하였다.
이것이 군자의 갖는 마음이며 존애원 현판을 붙인 까닭이다.
존애원을 세운 취지가 대략 위와 같았다.

이리하여 존애원에서는 병을 치료하고 나그네가 머물게 하고
약재도 사고 팔기도 하였다.
이것은 관립(官立)이 아니고 사설(私設)이었다.
의료 시설이 부족하여 병든 사람이 비명에 죽어가는 일이 많았던
그 때에 이 존애원이야 말로 상주고을 백성에게 도움이 많았고
또한 다른 지방에 대해서도 큰자랑 이었다.

임진왜란 뒤의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을 같이 한 상산 선비들이 존심애물(存心愛物)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 하려는 뜻에서
1599년(선조32 己亥)탄생하였다.

존애원(存愛院)은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사설 의료국(私設醫療局)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한 마다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청죽 성 람 선생의 박애정신과 동시에 향토사랑을
실천한 것이라 하겠다


처음에는 존애당이라 했다가 존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운영은 각 문중에서 계를 모았고 계원은 창녕성(成)씨,
진양정(鄭)씨, 홍양이(李)씨, 여산송(宋)씨,
영산김(金)씨, 월성손(孫)씨, 청주한(韓)씨,
상산김(金)씨. 재령강(康) 씨, 담양우(禹)씨,
무송윤(尹)씨, 전주이(李)씨, 회산김(金)씨 등
13개 문중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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