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의 태동과 발전사
손 상 목
단국대 유기농업연구소
제 1 장
유기농업의 발전과정
챨스 다원 (Charles Darwin)은 「부엽토와 지렁이」라는 책에서 자연에서 지렁이가 담당하는 역할에 관해 기술1)하면서 만일 지렁이가 없다면 식물은 죽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유기농법의 이론적 근거를 최초로 제공한 사람은 Darwin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영국 로잠스테드농업시험장(Rothamsted Experimental Station) 場長이었던 E. J. Russel경은 토양중의 지렁이의 수와 유기물 시용량과의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2)가 있다고 발표하였다.
독일에서는 19세기에 자연식과 자연위생을 추구하는 운동이 독일에서 일어났는데, 이는 당시의 공업화/ 도시화의 경향에 의문을 가진 사상에서 출발하였고, 보다 자연적이고 건전한 식생활을 추진 장려하려는 것이었다.
19세기 이후 미국에서는 농업의 공업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이에 의문을 나타내는 다양한 출판물이 간행되었으며, 이것이 유기농업의 탄생을 촉진시켰다. 프랭클린 킹의 저서 「불멸의 농민 - 중국, 한국, 일본에서 4천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경영된 농업」은 어떻게 극동아시아 농민이 같은 땅(圃場)에서 지난 4000년 동안 토양비옥도를 피폐시키지 않고 농업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제기하였다. 이 책은 농업생태계가 그 구성요소 각각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여 성립하므로, 구성요소 각각의 양을 하나하나로 보면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지난 1970년대 초까지 지난 반만년 동안 우리 선조가 실천해왔던 유축순환농업인 전통적 농업생산 양식3)을 유기농업의 이상적 모델로 삼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많은 유기농업의 선구자들이 크게 활약하면서, 유기농법 발전의 기반을 훌륭히 구축되었다.
영국인 Albert Howard(1873~1947)경은 1940년 저술한 농업성전(農業聖典; An Agricultural Testament)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농작물 보호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식품을 먹는 인간에게는 해를 준다는 점에서는 비과학적이고 불완전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유기농업 연구로 왕실로부터 「경」의 작위를 하사 받았다.
한편 독일과 스위스의 생명동태농법(Biodynamic Agriculture)은 루돌프 쉬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가 주창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즉 루돌프 쉬타이너가 스위스 Breslau근교 Kobewitz농장에서 생명동태농업에 관한 8개의 “농업과정(Landwirtschaftlischen Kurses)” 강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쉬타이너 박사는 유기농장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인식하고 동태적 힘은 생명동태제재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고 보았다. 마리아 튠(Maria Thun, 1922~현재)은 생명동태농법에 사용되는 각종 제제(preparation)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공헌하였다. 생명동태연구회(Research Group for Biodynamic Farming)는 유기농제품에 Demeter마크를 사용하고 생명동태농법 농산물은 1954년 결성된 Demeter Association에 의해 품질인증되고 있다. Demeter4)는 독일어권 뿐만 아니라 전 유럽과 북미대륙에 전파되었으며, 가장 오래되고 초기 생명동태농업 사상에 투철한 원리주의적5)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의 유기농업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은 ‘국빈론(國貧論)’의 저자로 유명한 한스 뮬러(Hans Müller, 1891~1988)박사로 1950년대에 유기농업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유기농업 보급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약한 학자였다. 뮬러 박사와 그의 부인 마리아 뮬러(Maria Müller, 1894~1969)는 1920년대 초에 스위스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1930년대에 생명동태농법의 영향을 일부 받아, 1950년대에 유기농법을 창안하였다.
유기농법의 이론적 기초는 뮬러 박사가 1951년 만난 독일인 한스피터 뤼쉬(Hans-Peter Rusch, 1906~1977)박사가 제공하였다. 뤼쉬 박사는 1968년 저술한 토양비옥도(Fertility of the Soil)라는 저서에서 토양미생물의 역할을 토양비옥도의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뤼쉬 박사는 Bio-test라는 토양검사를 통해 유기농가의 영농실태를 파악하거나 감독하는 방법을 제안하였으며, 그 결과는 유기농가의 영농방법 개선을 위한 자료로 수집되어 활용하고 있다. 뮬러 박사와 뤼쉬 박사가 이끈 유기농업에서는 두과작물과 녹비작물, 토양미생물에 대해 강조하였다. 현대 유기농업의 이론적 정립은 이들에 의해서 그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들의 이론은 초기에는 루돌프 쉬타이너 박사의 추종자들에 의해 많은 저항에 부딪쳤으나 점차 과학적인 유기농업은 독일어권에서 실천되기 시작하였고 독일어권 유기농업규정의 기초가 되었으며 마침내 현재 국제유기농업규정 제정의 기초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 유기농법의 이론은 Raoul Lemaire(1884~1972)여사에 의해 제공되어졌으며, 스위스 유기농법은 Maria Mueller-Bigler(1894~1969)에 의해 크게 발전되었다.
이후 유기농법은 1960년대 서구의 대학생들이 펴온 Ecology운동과 함께 일반인의 주목을 크게 받게 되었으며, 독일에서는 자연과 환경보호를 위한 시민자치운동으로 유기농업 운동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유기농업은 거대하게 산업화된 당시의 농업시스템에 맞서 가족단위의 소규모 농장에서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하여 기존의 관행농업 및 식품산업을 개혁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오늘날 유기농업은 전세계 유기농업인단체, 유기농 유통회사, 유기농 가공회사, 유기농 연구기관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6)(IFOAM, Int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e; http://www.ifoam.org)과 전세계 각국의 교수, 연구원, 학자, 공무원 등이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 세계유기농업학회7)(ISOFAR, International Society of Organic Agriculture Research; http://www.isofar.org)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IFOAM과 ISOFAR은 세계유기농업을 대표하는 단체이다.
ISOFAR은 전세계 유기농 학계를 대표하는 학술단체이며, 대륙별로는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유기농업연구기구8)(ARNOA, Asian Research Network of Organic Agriculture; http://www.rioa.org), 유럽대륙에서는 유럽유기농유통정보망(EISFOM, European Information System for Organic Markets; http://www.eisfom.org) 등이 활동하고 있다.
제 2 장
독일어권 유기농업의 태동과 과학적 정립
세계유기농업은 그 태동 이래 아직도 독일,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어권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유기농업학회(http://www.isofar.org)본부가 독일 Bonn대학교에 위치하고 있고,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http://www.ifoam.org)도 독일 Bonn에 본부가 있다.
오늘날 전세계 유기농업이 초창기의 유기농업 운동차원에서 벗어나 과학화적 기술정립을 갖추게 된 것은 독일어권 유기농업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어권에서의 유기농업은 생명동태농법(Bio-dynamic agriculture)에 뿌리를 두고 발전하였으나 이후 현재의 유기농업(Organic agriculture)으로 정착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1. 생명동태농법(Bio-dynamic agriculture)
생명동태농법은 루돌프 쉬타이너 박사가 주창함으로서 시작되었으며, Breslau근교 Kobewitz(코베위츠)농장에서 생명동태농업에 관한 8개의 강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Steiner는 유기농장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인식하고 동태적 힘은 생명동태제재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고 보고 있다. 마리아 튠 여사는 생명동태농법에서 사용하는 각종 제제(Bio-dynamic preparation)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많이 한 과학자이다. 생명동태농법연구회(Research Group for Bio-dynamic Farming)는 유기농제품에 Demeter마크를 사용하고 생명동태농법에 의한 농산물은 1954년 결성된 데메터협회(Demeter Association)에 의해 인증되고 있다.
그림 15-1. 루돌프 스타이너박사와 마리아 듄여사
2. 유기농법(Organic agriculture)
유기농법은 한스 뮬러 박사와 그의 부인 마리아 뮬러에 의해 시작되었다. 뮬러 박사는 1920년대초부터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1930년대에 생명동태농법의 영향을 일부 받아, 1950년대에 유기농법을 창안하였다. 유기농법의 이론적 기초는 한스 뮬러 박사가 1951년 만난 독일인 한스피터 뤼쉬 박사가 제공하였다. 뤼쉬 박사는 1968년 저술한 토양비옥도(Soil fertility)라는 저서에서 토양미생물의 역할을 토양비옥도의 관점에서 설명하였으며, 과학적 유기농업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로서 유기농업은 과학적 기초를 이룩하였다.
초기의 생명동태 유기농업은 뤼쉬 박사의 이론적 정립을 통해 비로서 현재와 같은 과학적 유기농업으로 정착9)되었으며, 스위스유기농업연구소(FiBL10))와 독일 각 대학 유기농업학과(Bonn대학교 유기농업연구소, Kassel 대학교 유기농업학과 등)의 설립 등으로 세계유기농업규격을 선도하게 되었다. 독일어권의 유기농업은 이러한 이론적 바탕위에 독일 유기농업규정을 제정하였고, 후에 유럽 유기농업규정(EU Regulation), IFOAM 기본규약(Basic Standards)의 기초로 활용되었고 다시 Codex유기식품기준 제정시에 그 주요내용이 거의 반영되었다.
그림 15-2. 현대 유기농업의 이론적 정립자인 한스 뮬러박사와 한스피터 뤼쉬박사
3. 제1단계 성장기 (1968~1988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면서 나타난 관행농법과 오염의 부정적 환경효과가 드러나면서, 농업생산자조직인 ANOG(유기농업협회)과「Bioland」가 1961년과 1971년에 각각 설립되었다.
1975년 독일유기농업재단11)인 “Stiftung für Ökologie & Landbau (SÖL)”이 출범되면서 유기농법의 기술경험과 정보의 교환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유기농업재단(SÖL)은 스위스유기농업연구소(FiBL)과 함께 전세계 유기농업단체을 아우르는 국제조직인 IFOAM(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12), Int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e Movements)의 결성을 지원하고 태동시켰다.
이 시기에는 농업전문가들에게 유기농법이 성공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후에 많은 유기농업조직이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제2단계 성장기 (1988년~현재)
독일유기농업연합회(ArbeitsGemeinschaft Oekologischer Landbau, AGÖL)는 독일내의 6개 유기농업생산자단체(Demeter, Bioland, ANOG, Biokreis, Naturland, Ecovin)의 상부기관으로서 독일유기농업재단(SÖL)의 발의에 따라 1988년에 조직되었다. 1984년 확정된 독일유기농업의 기본규약(Rahmenrichtlinien)은 6개 각 개별 유기농업생산자단체의 기본규격의 골격이 되었다.
1989년부터 유기농업이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는데, 이는 EU 농업조방화계획(Extensification programme)과 EU회의 규정(2078/92)에 의한 정부지원금 때문이었다. 유기농업은 1990년 독일통일이후, 유기농법이 용인되지 않아 일부농장에서 미미하게 유기농법이 실천되었던 구동독지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독일사회연구협회(Society of Sociological Research)가 실시한 Forsa의 유기식품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이 유기식품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로 ①유기식품의 우수성에 대한 신뢰성의 결여, ②유기식품 구매편의성의 부족, ③유기가공품의 부족, ④고가 등을 들었으나, 설문조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①환경보전에의 기여, ②뛰어난 맛, ③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장차 유기식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하고 있다.
독일유기식품시장에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유기가공식품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으며, 고가였던 유기식품 가격도 다소 하락되었고, 2000년부터 소비자에게 유기식품임을 보증하여 신뢰를 줄 수 있는 유럽의 “유기식품 품질인증 표시마크”가 하나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카셀(Kassel)대학교와 본(Bonn)대학교 등에 유기농업학과가 설치되어 운영하고 있고, 여타의 각 농과대학에서도 일반관행농업 교과목뿐만 아니라 유기농업 관련 과목도 설강함으로서 차세대에게 유기농업도 이해하는 균형감각을 갖출 수 있도록 교과목을 편성하고 있다.
또한 국가연구기관으로 유기농업연구소가 독일연방농업연구쎈터(FAL) 산하에 설립되어 기술개발에 많은 연구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각 군단위의 농업기술쎈터에 유기농업 전담 영농기술지도사가 배치되어 과학적인 유기농 기술보급에 노력하는 등 독일은 유기농의 연구개발, 대학교육, 기술보급 등에 있어 세계유기농업을 주도하는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제 3 장
미국 유기농업
미국의 유기농업은 로데일(J. I. Rodale, 1869~1971)에 의해서 널리 전파되고 발전되었다. 로데일은 하위드의 농업성전의 영향을 받아 펜실베니아州 엠마우스(Emmaus)에 60에이커 농장을 구입하고 스스로 유기농법 영농을 실천하였다. 또한 이를 널리 보급할 목적으로 월간잡지 Organic Gardening을 창간하고, “유기농법” 등 60여권의 저술을 남기고, 자매지인 소비자 잡지인 Prevention을 발간하였다. 유기원예는 현재 Organic Gardening and Farming으로 개칭되어 발행되고 있으며, Rodale Institute는 꾸준한 유기농업의 연구, 출판 및 홍보 활동을 통해 미국 유기농업 운동의 총본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농업은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농기계의 사용, 화학비료․합성농약의 투입 등 새로운 농업기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이 신기술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수한 유기물에 의하여 생명력을 영위해 나가는 농지생태계에 대해 고유의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공업의 논리에 바탕을 둔 획일적인 대응을 강행하는 새로운 농업기술은 결국 토양침식, 염류집적, 지하수의 고갈과 오염 등 농지의 생산성 유지에 중대한 저해요인을 차례차례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1981년 미국 농무성이 발표한 “선택의 시기”라는 보고에 의하면, 화학물질 및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는 현대농법을 구사하므로서 일단은 농업 생산성이 현저히 향상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토양중에 있는 양분 및 지하수 등의 기본적 농업자원이 소모하여 고갈상태가 되어가고 있어 현재 생산성과 수익성의 구조적 저하에 신음하는 농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51)
미국 농업사정이 한층 더 악화되어 가운데 맞이한 1980년대에 농민을 비롯한 농업관계자들 사이에 유기농법, 즉 농토 및 농업용수를 비롯한 기본적 농업자원의 장기적인 지속성과 인축의 건강유지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농업생산의 경제성도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농법기술을 확립하여 보급하여 줄 것을 연방정부 등에 요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이 표면화하게 된 이유로서는, ①40년 가까이 화학비료, 합성농약 등 화학물질과 대형 농기계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대농법을 강행하여 계속하였기 때문에 토양침식, 염류집적 및 관개용 지하수의 고갈 등이 현저히 진행하여 농지의 생산성 유지가 더욱 곤란해졌다는 것이며, ②이같은 화학물질 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석유파동 이후 화석에너지의 가격앙등 및 이에 따른 생산자재비의 가격상승으로 농업경영의 수익성이 현저히 압박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전반기에는 이와 같은 어려운 정세에 추가하여 지가급락에 따른 농장평가액의 대폭하락이라는 이상사태도 생겼다. 이같은 현상은 유기농업 보급의 필요성을 한층 높인 결과로 작용하였다.
미국 유기농업은 1982년 유기농업 관련 법률이 제안13)되면서 큰 전기를 맞았다. 당시 미국은 카터 대통령 당시 USDA내에 설치된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14) 연구를 위한 창구가 레이건 정권이 등장하면서 폐지되었고, USDA가 1980년에 발표한 “미국 유기농업 실태보고와 권고”가 농업계에는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미국 국민 전체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하였던 상황이었다.
이후 1983년과 1985년에도 유기농업을 보급하고 연구하자는 법안을 상정하여 「농업생산성법15)」이 제정이 되면서 미국내 유기농업 관련 연구와 농업정책에 큰 영향16)을 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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