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이야기

변화의 끝에서 느끼는 기쁨

날마다좋은날 2009. 5. 15. 17:51

변화의 끝에서 느끼는 기쁨
  
   김기국 교수/ 경희대 프랑스어학과, 228기 조교
  
  "어떤 색으로 하시겠어요?"
  "그렇게 튀지 않는 색이면 좋겠는데요!"
  "그래도, 염색을 했다는 기분은 나야겠지요?
  "그건 당연하죠"... "네, 그걸로 해주세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할까요, 아니면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흥분과 걱정, 쑥스러움이 합쳐진 으스댐이 마음 속에 자리했던, 저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무슨 경험이냐구요? 네, 그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카락 염색을 시도한 날, 미장원에서 색을 결정하던 짧은 순간 동안 가졌던 감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제 모습을 보시면, 조금은 생소한 구석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힙합 풍의 현란한 색은 아니어도 자세히 살펴보면 확연히 눈에 띠는 예쁜 갈색의 머릿결입니다. 염색하기 전의 검정에 가까운 진한 갈색의 톤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이 부각된 만족스런 결과에 웃고 있는 저를 만나시게 될 겁니다.
   머리염색 한번이 그 무슨 대단한 사건이냐구요? 그러네요. 사실, 요즘처럼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염색은 기본이고 특이한 장신구, 대담한 의상 등을 통한 자기표현은 누구나 시도하는 일상이 되었지요. 그럼에도 제가 여기서 장황하게 머리염색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 때문이랍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 저는 평상시 상이한 두 세계를 몸으로 혹은 마음으로 체험하곤 했습니다. 하나는 젊음과 순수함,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이라는 작지 않은 그래서 약간은 무거운 구조에 빠져드는 제 자신이 겪는 변화 둔감증의 세계입니다. 물론 언급한 두 세계가 내포하는 부정과 긍정의 요소가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다들 아시니까 찬성하시죠? 이미 기성세대에 속한 채 '마음은 젊으나 몸이 따르지 않는' 상태에서 어두운 하늘에서 화려하게 폭발하는 불꽃의 찬란함을 닮은 학생들이 보여주는 자신감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었죠.
   이렇듯 막연한 동경을 마음에 담고서 무력하게 생활하던 중, 저는 카네기 조교를 하게 되었고, 잃어버렸던 열정을 다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공약으로 표현되었지요. 물론 제가 제시한 것은 염색이었구요. 학생들에게 저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월 말까지 나는 머리염색을 해보마, 너희들도 평소에는 감히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시도한 결과물을 제시해다오"라구요. 사실 염색을 통해 제 자신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유행을 추종하는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플라톤이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고 천명한 이후 이천년 이상이나 서구 사회를 지배했던 이성의 명제가 '영혼은 몸의 감옥'이라고 설파한 푸꼬에 의해 전복된 오늘날,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몸의 중요성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할까요. 좀 더 자세히 들춰보자면, 염색에는 두 가지 의미, 즉 개인적인 이유와 직업적인 이유가 있었지요.
   개인적인 이유로는 염색을 함으로써 몸에 익숙한 타성이나 고정된 습관에서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못해'라고 생각한다면 영원히 할 수 없겠지만, '한번 해볼까?"라고 스스로에게 공약한다면 언젠가 그 한계는 극복될 수 있다는 귀중한 경험입니다. 결국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을 획득함과 동시에 '안전지대'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직업적인 이유는 학생들이 알고 있는 교수라는 직업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행위를 실제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회구조에 속한 사람, 혹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든 사람인 교수의 모습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변화에 피동적이거나 심지어는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그 변화가 머리염색처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생각하겠죠. 그런 학생들에게 저의 갈색 머리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 충격이 그들에게 '교수님도 하시는데, 나는 왜 못할까?'라는 자극으로 전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저의 바람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공약을 발표하듯이 강의실에 변한 모습으로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보여준 환호는 제가 원하던 자극의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오늘 저는 이미 행한 변화의 끝, 새로운 세계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기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미래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내일인지요. 이제 저는 옆에 함께 한 학생들을 향해 다시 한번 새로운 공약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자, 우리 모두 블리치(bleach) 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