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직설이란 책은 그 부피는 크지 않지만 그 책에 실린 과학은 대단한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토양 분야의 과학은 참으로 놀랍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께서 명하여 편찬하게 한 농업기술 지침서다. 세종은 지방장관들에게 농사에 경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 농업기술지침서를 만들라고 지시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농사직설에 실린 농업기술은 어떤 문헌에 실려 있던 것을 옮겨 적으면서 지은 이의 지식을 조금 보태면서 쓴 책과는 다른 성질을 갖느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이 편찬되던 때의 농업기술을 알아볼 수 있는 채책이라고 할수 있다.
농사직설은 모두 14 편으로 되어 있다. 첫 편은 종사를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보관할지를 다뤘고, 둘째 편은 땅 갈이 방법에 대해 논했다. 그 뒤에는 매 편마다 여러 가지 작물들을 가꾸는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다.
둘째 편 땅 갈이 편에는 땅의 종류와 시기에 따라 어떻게 갈아야 할지를 설명하면서 척박한 땅을 어떻게 비옥한 땅이 되게 할지, 땅의 좋고 나쁨은 어떻게 판별하는지 같은 것을 다뤘는데 매우 과학적이어서 놀랍기 그지없다.
땅 갈기: 가을에 땅을 갈 때는 깊이 갈고 봄에 땅을 갈 때에는 얕게 갈아야 한다.가을에 땅을 갈 때에는 작물의 그루터기나 땅에 남아 있는 거친 유기물을 땅 속 깊이 묻히도록 깊이 갈라고 했고, 봄에 땅을 가는 이유는 종자나 묘가 심길 땅을 부드럽게 하는 데에 있음으로 깊이 갈아 일도 더디게 하고 소도 피곤하게 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매우 적절한 기술이다.
거친 땅을 일궈 밭으로 만들 때는 풀이 왕성하게 자랐을 때 땅을 깊이 갈고 그 이듬해 봄에는 얕게 갈라. 척박한 땅을 개간할 때 무성하게 자란 풀이 땅 속 깊이 묻혀 썩게 함으로써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그 이듬해 봄에는 흙을 부드럽게 할 정도로만 갈라는 것이다. 매우 적절한 지침이다.
기름지지 못한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녹두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갈아 엎어라. 참으로 놀랍다. 이때에 벌써 두과식물을 이용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니 참 놀랍다. 이 기술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추천되고 있는 기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과식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적지 않은 학자들조차 두과식물을 재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땅이 비옥해지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데 농사직설이 편찬되던 때(1429년)에 벌써 두과식물이 적절히 자란 다음 두과식물 전체를 땅에 묻어주어야 토양이 비옥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던 우리 선조 농업인들은 참으로 대단한 과학실천가들이었던 것이다.
두과식물을 이용하여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는 원리는 이렇다. 즉 두가식물의 뿌리에는 식물이 그대로 이용할 수 없는 공기 중의 질소(N2: 분자상태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의 질소(이 경우 NH3: 암모니아태질소)로 변환 시키는 독특한 세균이 있다. 그런데 이 세균은 두과식물이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만든 탄수화물을 얻어먹으며 살며 두과식물에게 신세진 것을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암모니라태질소로 갚는다. 그래서 두과식물과 그 뿌리에 사는 세균 사이의 관계를 더불어 사는 관계(공생관계: 共生關係)라고 한다.
오늘날 식자(識者)들 가운데에 적지 않은 이들(특히 윤작을 통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토양비옥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두과식물의 뿌리에 질소고정세균이 살고 있고 그 세균은 공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변화시켜주기 때문에 두과식물을 재배하기만 해도 토양이 비옥해지는 줄 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두과식물과 공생하는 세균(근류균: 根瘤菌)은 균이 함께 살고 있는 식물에게 질소를 주지 이웃 식물에게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근류근이 만들어 준 질소를 받은 두과식물은 그 질소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그 질소의 대부분은 가을에 종자로 들어간다. 따라서 두과식물을 재배했더라도 두과작물의 열매를 수확하면 그 땅으로 돌아갈 질소는 미미하다. 세종대왕 때 농사를 짓던 경험 많은 농업의 달인들은 그때 벌서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녹두를 이용하여 땅을 비옥하게 하려면 녹두를 심어 열매를 수확하지 말고 자랄 만큼 자란 녹두 전채를 갈아엎으라고 한 것일 게다. 대단하지 않은가? 농사직설의 과학.
땅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 방법: 땅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려면 땅을 한 자쯤 판 다음 그 흙을 맛보라. 달면 상등(上等) 땅이고 짜면 하등(下等) 땅이고 달지도 짜지도 않으면 중등(中等) 땅이다. 이것은 요샛말로 하자면 일종의 토양검정이다. 그때 쓰인 방법은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개념이 놀랍다. 흙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좋은 땅을 골라 농사를 지으려 했던 그 때의 우리 농업인들 대단하지 않았는가? 그런 기술을 모은 이 책, 대단 한 것 아닌가? 그런 일 하라고 지시하신 세종대왕, 대단하신 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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