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나는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고(네넬란드, 일본과 함께, km2당 400 명을 넘음) 인구 한 사람 당 농지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좁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농토의 인구 부양능력(Carrying capacity)이 매우 큼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금수강산이라 불릴 만큼 좋은 기후와 토양조건이 우리나라 농토의 높은 인구부양능력의 중요한 이유였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요즘 그 생각을 바꿔가고 있다. 농토와 기후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뜻이 있겠는가?
요즘 최근에 농촌진흥청이 번역해서 출간한 여러 가지 농서들을 틈틈이 읽는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에서 큰 감명을 받는다. 농사직설에 실린 몇 페이지 안 되는 흙 다루기 편의 내용은 오늘의 과학 수준에서 평해도 놀라울 정도다.
그 뒤에 쓰인 여러 농서들에 농사직설에 실린 내용이 인용되고 증보된다. 임진왜란 때의 훌륭한 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아들 가운데 한 분인 유진(柳袗 1582-1635)이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위빈명농기(渭濱明農記)를 보면 넓은 땅에서 대충 농사를 짓는 편보다는 좁은 땅에서 농사를 착실하게 잘 짓는 게 더 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땅을 어떻게 갈고 풀이나 나무, 두과식물(예컨대 녹두 같은 것)을 이용하여 퇴비를 만들거나 땅을 비옥하게 하는방법, 인분뇨와 가축의 똥과 오줌, 재 같은 것을 이용하는 방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내가 가나에서 일하던 때에 보았던 광경이 떠오른다. 화전농법을 하기 때문에 토양이 수탈되어 곡식의 수량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낮은데도 인부뇨는 바다에 버리거나 한 곳에 모아 묻어버린다. 인분뇨를 농토에 주고 재배한 농산물을 먹으면 몽유병(夢遊病)에 걸린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 나라의 농토의 인구부양능력이 매우 낮고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좋은 풍토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사를 집약적으로 잘 지어온 전통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농사를 집약적(과학적)으로 지어온 조상들이 부지런함과 합리적인 정신을 우리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의 합리적인 농사, 그것은 우리를 먹여살려왔을 뿐 아니라, 우리를 부지런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되게 하기도 한 것이라고 나는 깨닫는다.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강의 기적도, 새마을운동의 성공신화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부지런하고 합리적인 정신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우리가 이룬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그것을 재현해보려 했었고 더러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런 의도를 성공시킨 예가 아직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식물의 잎이나 꽃의 푸지고 그렇지 못함은 그 해의 풍상에 때라 다소 다를 수는 있어도 그 해의 풍우에 따라 소나무가 버드나무로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라인 강의 기적은 독일이라는 뿌리를 가진 나라가 만든 기적이고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은 한국이라는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성공을 이룬 걸 놓고 독제 어쩌고 하는 이들은 어쭙지않은 이들이다. 박정희는 이 일을 위해 불씨를 지폈고 그 때를 살던 이들 대부분은 그 불씨가 퍼지게 하기 위해 몸을 태웠다. 소수의 잘 못 생각한 이들 빼고.)
이런 맥락에서 나는 북한에 대해서도 확실한 희망을 갖는다. 우리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조상들의 정신을 함께 물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에는 최근에 겪었던 불행한 역사의 구름과 걷히지 않아 북한 동포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가 갖는 능력이 잎과 꽃에 구현되고 있지 못하지만 어떤 구름이든 그게 구름인 바에야 하늘을 계속 가릴 수야 있겠는가? 그 구름이 걷히면 분한도 조만간 우리처럼, 사실은 우리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본격적으로 변하면서 발전할 때 남한이 겪은 좋은 경험은 살리고 우리가 미쳐 못 살펴서 겪은 과오들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옛 농서에서 너무 많은 걸 배웠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울 게 더 있고, 또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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