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A.토플러 박사는 그의 명저 제3의 물결에서 첫째 물결은 약 1만년 전부터 시작한 농업이며, 둘째 물결은 산업혁명, 셋째 물결은 오늘날의 정보화시대라고 설파했다.
그가 지칭한 첫째 물결인 농업의 형태는 물론 유기농업이다. 유기농업의 역사는 이처럼 지구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후 과학자들에 의해 많은 발명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농사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여기는 화학비료도 이 당시에 개발된 발명품이다.
화학비료는 1866년에 독일의 과학자 리비히(Liebig)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는 식물을 태운 재를 분석, 질소, 인산, 칼리 등 원소를 배합하여 식물에 투여한 결과 작물이 놀라운 성장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당시 화학비료는 기적의 약이라고 까지 불리워졌다. 화학비료를 땅에 주면 대략 10년에서 15년간은 성장도 빠르고 수확량도 매우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계속 주게 되면 토양이 단립성(團粒性)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통기성(通氣性), 보수성(保水性), 보온성(保溫性)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화학비료로 인해 땅속에 살고있는 미생물과 곤충, 소동물 등이 모두 죽어 버리기 때문이며, 나중에는 땅이 산성화되어 황폐해져서 생산도 떨어지고 생태계가 깨지면서 병해충만 즐겨 모이며 때로는 성충의 이상발생이 일어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한 미국의 경우 이미 1910년부터 농업의 위기를 부르짖기 시작했고, 1936년경에는 전농경지의 51%가 사막화될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농림성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위스콘신 대학의 킹(F.W.King)박사는 1911년에 저술한 책 사천년의 농부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농업을 시찰한 후 동양 3국의 농업을 매우 훌륭한 자연적 농업인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유기농업의 종주국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유기농업을 실천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초로 유기농업 학문 체계 수립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유기농업을 연구하여 실천하고 이론적으로 학문의 체계를 수립한 사람은 영국의 알버트 하워드(Albert G. Howard:1873-1947)라고 할 수 있다. 하워드 경은 영국의 식물병리 및 미생물학자로서 1900년초부터 40년간 농업시험장에서 퇴비를 중심으로한 유기농법의 연구활동을 하였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1940년 農業聖典(Agricultural Testament)을 저술하여 유기농업이론을 정립했다. 그의 이론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공업화의 발달로 인해 식량과 공업원료의 소비증대를 초래하게 됨에 따라 식량과 축산물의 현저한 생산증가가 촉진되었지만 화힉비료와 농약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지력의 손실과 다양한 병충해를 입은 서양농업은 토양 황폐화를 불러오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업에 의해 토양의 비옥도를 회복하고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
또한 자연은 해충, 병균을 방제하기 위해 독제를 살포하는 인위적 보호를 원하지 않으며 자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는 삼림의 동식물 중에서 부분적으로 병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자연을 파괴할 정도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이 자연의 법칙은 항상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 준다고 보았다.
곧 자연에는 생태학적 균형을 저절로 유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연순환의 농업만이 가장 우수하고 건전한 세계를 이루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워드 경은 영속적인 농업의 발전내지 안정은 지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지력은 토양중의 부식에 유래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자연의 생산과 부식의 작용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농업원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퇴비는 작물 생산의 증대를 보증할 뿐만 아니라 작물의 생산을 건전하게 만들고 병충해를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고 밝히고, 건전한 식량의 생산을 위해서 토양에 대한 유기물의 환원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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