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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남아 있는 세계지도

날마다좋은날 2011. 7. 29. 08:04

프랑스에 남아 있는 세계지도
김문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 간 조선왕실의 의궤 297책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7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관한 특별전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는 오랜 협상 끝에 돌아온 의궤를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전시회다. 그런데 병인양요 때 약탈된 외규장각 자료는 297책의 의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외규장각 의궤 297책, 145년 만에 귀환했지만

당시 로즈 제독이 작성한 약탈품 목록을 보면 ‘한국, 중국, 일본이 그려진 지도’가 1점 포함되어 있다. 중국학자들은 이 지도를 <왕반제지여지도조선모회증보본(王泮題誌輿地圖朝鮮摹繪增補本)>이라 하는데, ‘왕반(王泮)이 지문(誌文)을 쓴 여지도(輿地圖)를 조선에서 베끼고 증보(增補)한 본’이란 뜻이다. 중국학자는 왕반이 지문을 쓴 시기가 1594년이라는 점을 근거로 이 지도가 16세기에 제작된 중국의 지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17세기 전반에 조선인이 작성한 세계지도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한국, 중국, 일본이 그려진 지도’에 해당한다.

조선본 <여지도>가 제작된 연유는 왕반의 지문과 조선인의 발문에 잘 나타난다.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는 천자와 제후라는 관계가 있으므로, 조선 사람이 명나라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하더라도 지도를 통해 그 전모를 편하게 볼 수 있어야 했다. 이에 따라 조선에는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란 세계지도가 있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명나라에서 8폭의 <여지도>를 구했는데, 이는 백군가(白君可)란 사람이 목판으로 인쇄하고, 마테오리치의 <산해여지전도>를 간행한 경력이 있는 왕반이 지문을 쓴 것이다. 조선본 <여지도>는 백군가의 <여지도>를 바탕으로 하면서 『대명관제(大明官制)』와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의 기록을 검토하여 수정한 중국의 지도와 지명을 기입했다. 여기에 조선의 상세한 지도를 덧붙이고, 일본, 유구(琉球, 오늘날의 오끼나와), 여진 지역에 있던 나라들을 그려 넣었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세계지리를 이해할 때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세계지도와 지리지에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덧붙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는 조선 최초의 세계지도인데, 원나라 말기에 작성된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의 지리 정보를 추가한 것이다. 조선본 <여지도>도 이와 동일한 방식을 따라 제작되었고, ‘예술성과 과학성이 결합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7세기 조선인의 세계인식 그린 <여지도>는 아직

<여지도>를 보면 조선과 일본, 유구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조선과 교류한 나라들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역을 보면, 경도(京都, 서울)를 중국의 13개 성도(省都)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과거의 수도였던 경주, 평양, 개성을 그 다음의 위상에 해당하는 도시로 표시했다. 한반도 북방에는 흰 색의 백두산(白頭山)을 크게 그리고 그 아래에 장백산(長白山)을 따로 그려, 백두산과 장백산을 별개의 산으로 보았다. 두만강 입구에는 녹둔도(鹿屯島)와 적도(赤島), 동해에는 울릉도와 우산도(于山島, 독도)를 그리는 등 삼면의 바다에 수많은 섬을 표시하여 왜란과 호란을 통해 해방(海防)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우산도가 울릉도의 왼쪽에 있는 것이나 대마도가 현재의 규슈 지역에 표시된 것은 실제와 차이가 난다.

조선인이 제작한 세계지도는 국가가 어려울 때 외국 군대에 약탈되어 해외로 유출되었다. 15세기에 작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이끌었던 카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일본으로 가져갔고, 17세기에 작성된 <여지도>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지휘한 로즈 제독이 프랑스로 가져갔다. 

조선본 <여지도>는 180×190cm의 비단에 그려진 천연색 세계지도로, 17세기 전반 조선인들의 지리인식이 잘 나타나는 국보급 문화재다. 이 지도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도-도면부에 소장되어 있고, 자료 번호는 Res Ge A 1120이다. <여지도>의 소재는 파리의 이진명 교수가 확인했고, <여지도>의 내용은 한영우 교수가 검토한 바 있다. 

외교부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여지도>를 돌려받는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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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문식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조선후기경학사상연구』, 일조각, 1996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2000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조선후기 지식인의 세계인식』, 새문사, 2009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