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년’, ‘문학소녀’라는 말은 기성세대에게는 지금도 야릇한 감흥을 일으킨다. 청소년기 누구나 한번쯤은 시인이 되고 싶어했고, 멋들어진 소설 한편을 쓰고 싶어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어떨까? 한 시인 교사는 “아직도 시를 쓰는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 중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말한다. 많은 교사들은 수능 언어영역 때문에 그나마 문학이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과연 문학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할까? 문예지 <문예마당>이 광주·전남 지역 중·고생 385명과 교사 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니, 평소 문학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29%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36%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읽지 않는 이유로는 시간 부족(25%), 재미 없음(16%), 필요성 못 느낌(15%) 등을 꼽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부가 관내 중·고생들에게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을 물었더니 중학생의 84%, 고교생의 90%가 교과서에 나온 작품이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만을 읽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학교마다 핵심 동아리로 자리잡았던 문학·문예 동아리의 유명무실화 또한 청소년의 문학의 현실을 웅변해 준다. 문예 동아리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학생 수가 서너 명에 불과한 곳이 허다하다. 반면 입시와 직결된 논술공부를 하는 독서지도반은 인기다.
청소년 문예지 새바람 '이다'등 8종 쏟아져
시와 소설 읽을 짬 없고 '문학소년' '문학소녀' 낯선 말이 되었지만
한마디로 청소년들에게 문학은 더 이상 ‘삶의 한 부분’이 아니며 ‘삶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돼 버린 셈이다. 김열 시인은 “온갖 화려한 그래픽으로 꾸며진 게임과 휴대전화만 열어도 입체적인 영상이 지원되는 프로그램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활자는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문화 중 하나로 여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일까? 다행히도 아직 그렇지는 않다는 게 교사들과 작가들의 분석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부 설문조사를 보면 97%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삶에 문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문학에 대한 갈구나 욕구는 아니더라도, 그 필요성 만큼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청소년 문예지들은 청소년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일부 받기는 했지만, 전국에서 모두 8개의 청소년 문예지가 무더기로 선보였다. <문학我> <미루> <다도해 푸른작가> <통통> <푸른 나무들> <전북 청소년 문학> <상띠르> <이다> 등이 그들이다.
'또 하나의 소통공간' 새싹 영상세대의 관심과 고민 때론 진지하게 대론 통통튀게
"더 실제적인 재정 지원을" 인터넷 글쓰기 접목도 과제
이들 문예지는 공통적으로 여전히 문학은 이 시대의 유효한 문화이며, 청소년들의 진지한 삶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는 믿음 아래, 부모 세대가 꿈을 키우던 <학원>이나 <우리 시대> 같은 문예지의 맥을 잇고자 시도하고 있다. 내일의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작품과 창작 고민, 학교와 청소년기의 삶과 사랑의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말 충북에서 발간된 <이다>(충북국어교사모임)는 선생님·학부모·학생이 어우러진 다양한 글 모음은 물론이고 ‘우리 세상’이라는 꼭지를 통해 청소년들의 사랑과 세상을 보는 신선한 시각들을 담아냈다. 또한 영상 세대로 불리는 청소년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안과 방향을 고민하는 모습도 도드라진다.
충남에서 나온 <미루>(대전충남작가회의)는 청소년들의 관심사인 인터넷 글쓰기와 ‘본격 문학’의 연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여러 명이 번갈아 완성하는 릴레이 소설을 실어 인터넷 문학을 본격 문학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에서 나온 <상띠르>(심미안)도 청소년들이 문학적 주체로 자리잡기 위한 좌담과 청소년 문학에 대한 설문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청주 상당고 박기려 교사는 “요즘 애들이 문학에 관심이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받아 보니 청소년들의 통통 튀는 문학적 감수성과 깊이에 감동했다”며 “그동안 억눌렸던 청소년들의 생각과 바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강병철 대전충남작가회의 회장은 “자라나는 학생들이 이 나라의 장래를 이끌어가야 한다면 청소년 문예지들이 올곧은 의식들을 나누는 디딤돌이 되기를 빌며, 청소년들이 문학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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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청소년 문예지들.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부흥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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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예지들은 비록 출판사나 단체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참된 의미의 청소년 문예지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제작 기획단계부터 청소년들을 편집위원과 현장기자로 모집해 이들이 직접 기획을 하고 현장 취재를 나가며, 학생들의 글을 모으는 역할을 나눠서 진행한 것이다.
<이다>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던 청주 서원고 박세라(3년)양은 “점수를 따기 위해 억지로 문학에 찌들려야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고 소망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우리의 언어로 담는다고 생각하니 밤을 새도 힘들지 않았다”며 “글쓰기의 재미, 문학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끼고,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소년 문예지가 헤쳐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무엇보다 재정 문제가 걸림돌이다. <푸른 작가>의 박일환 대표는 “중·고생들이 입시 외에 다른 책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책을 펴내도 판매가 어렵다”며 “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밖에도 △교사·학생이 편집의 주축이다 보니 시간 내기가 어렵고 △입시라는 장벽에 막혀 학생들의 문학적 관심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으며 △인터넷 글쓰기 등 색다른 장르를 기존 문학에 접목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이 청소년 문예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로 꼽힌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2005.4.11.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