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열쇠, 아리랑(我理朗) -일지 이승헌
나는 지난 주 미국 세도나의 보름 축제때 한국의 아리랑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께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압니까? 제일 잘 알면서도 제일 모르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이름을 안다고 자기를 아는 것일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아리랑은 그것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평상시에 잘 아는 자기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자기입니다. 두 가지의 자기가 서로 교체되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지식적인 '나'가 있고 근원적인 '나'가 있습니다. 지식적인 '나'는 수없이 변할 수 있습니다.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릅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나'는 평상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숨어 있는, 근원적인 나를 말합니다. 아리랑은 한자로 我理郞 입니다. `아`는 나 아 자이고 `리`는 깨달을 리, 이치 리, 랑은 즐거울 랑 자입니다. '아리랑'에서 '아'는 내가 아니고 자기 내면 속에 숨어있는 '나'를 말합니다. 그것을 '참나'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인종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나'는 국가를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참 나를 깨달은 사람은 모두가 형제이며 하나인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나'를 알 때 큰 포용력과 자비로움, 사랑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리'는 무엇일까요? '리'는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아리'는 '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랑'은 기쁨입니다. 아리랑은 '참 나를 깨달은 기쁨이여'입니다. 그러면 '아라리요'는 무슨 뜻일까요? '아라리요'는 '나를 깨닫는 기쁨을 모두 다 같이 누립시다. 모두 다 나를 깨달으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요'는 우리말에서 '앉으세요', '누으세요'처럼 권유할 때 쓰는 말입니다. '아라리요'는 '깨달으세요'라는 말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깨달음의 고개를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의 뜻은 '참 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 즉 참나가 아닌 세상적이고 이기적이고 편협한 '나'를 쫓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여기에서 십은 '합일'과 '완성'과 '통합'을 뜻합니다. 우리말에서 '십'은 욕설입니다. '십'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일'과 '통합'을 의미합니다. '십리를 가는 것'은 참나와 거짓의 나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자아완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말은 '참 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완성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리랑에는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이 뜻을 우리도 알지 못하고 아리랑을 부릅니다. '아리랑'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부르는 거의 유일한 노래입니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공동 입장할 때도 행진곡으로 아리랑이 연주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아'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 '아'를 어떻게 실현한 것인가입니다. '아'를 잊어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미워합니다.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를 잊어버려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를 잊어버리면 아주 이기적이 됩니다. '아'를 잊어버림으로써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가 싸웁니다. '아'를 잊어버리면 서로의 교류가 끝납니다. '아'가 살아날 때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아'가 있지만 '아'가 존재하는 것과 나타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존재는 하지만 나타나지 않고 실현되지 않는 '아'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아'를 실현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를 깨달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남아있는 아주 신성한 일입니다. '아'를 실현하자. '아'를 회복하자. 그리고 그 '아'를 알리자.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리랑의 뜻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아'를 알리는 방법은 노래와 춤으로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수련을 하는 이유도 '아'를 찾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 수련을 할 때 '아'를 찾는 데 목표를 두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를 찾고 '아'를 회복함으로써 나 자신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인류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입니다. '아'가 활동하지 않고 갇혀 있는 사람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아'를 만났고 찾았습니다. '아'를 찾고 실현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은 '아'를 깨닫고 실현하는 입니다. 모든 것은 '아'와 통합니다. 따라서 해 보기 바랍니다. '아' '아' '아 그렇군요!' 이 뜻입니다. 진리는 아주 쉬운 것입니다. 복잡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아'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아'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홍익인간이고 뉴휴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