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이야기

손암(巽菴)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

날마다좋은날 2020. 12. 28. 09:00

 

200여 년 전에 흑산도에서 귀양 살며 마을 주변의 바다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를 연구했던 생물학자가 손암 정약전이었습니다. 이른바 『현산어보(玆山魚譜)』라는 세상에 귀한 책의 저자가 다산보다 네 살 손위의 동포 형님이던 손암이었습니다. 그들 형제는 1801년 신유옥사에 걸려들어 애초에는 손암은 전라도의 신지도로, 다산은 경상도의 장기(포항시)로 유배를 떠났으나, 뒤에 ‘황사영백서’사건이 터지자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재차 국문을 받고,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형은 흑산도에서 아우는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손암과 다산은 형제이자 지기였습니다. 동급의 인격을 지닌 학자로, 같은 수준의 개혁의지,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학문적 동지로서 서로를 의지하며 힘들고 고단한 유배살이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해박한 경학(經學)에 관한 지식을 지녔던 두 학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편지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세상과 삶에 대한 토론을 거듭하면서 살았습니다. 유배 16년째인 1816년 6월 흑산도에서 풀리지 못한 손암은 5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형님의 부음을 들을 다산은 혈육을 잃고 지기를 떠나보낸 아픔에 통곡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지기가 없는 세상을 살면 무엇하냐면서, 묻고 답하며 토론할 상대가 없는데, 많은 저서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는 심정까지 토로할 정도로 애통해 했습니다.

경전에 대한 토론을 했던 손암의 편지 한 대목만 보아도, 그들 형제가 얼마나 깊고 넓은 지식으로 경(經)에 대한 토론을 했던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근래에 『논어』를 읽어보니 대부분 학문을 장려하고 힘써 행동으로 옮기는 내용이었네. 또 많은 내용은 성인의 겸손함과 자신을 낮추는 일에 대한 내용이었네. 『맹자』 7편에는 단 한 구절도 스스로 겸손해 하는 내용도 없고 대체로는 스스로 과시하고 자만해하는 말이었네. 어느 누가 이처럼 오만한 사람을 ‘성인에 버금가는 덕[亞聖之德]’이라고 말했단 말인가. 이는 반드시 맹자의 친필이 아닐 것이네. 제자들인 만장(萬章)이나 공손추(公孫丑) 무리들이 멋대로 더하고 덜어내 그들의 스승을 높이기만 힘씀으로 오히려 교만하고 인색함에 빠지고 말았다고 생각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1811년 9월 6일, 손암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애의 절도 흑산도에 갇혀 살던 역적죄인, 손암은 육지의 아우에게 높은 수준의 경학에 관한 이론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맹자』라는 책에는 지나치게 긍과(矜誇)와 자임(自任)의 내용이 많은 것을 지적하면서, 『맹자』가 전해주는 내용이 아니라 제자들이 선생만을 높이려다가 오히려 선생을 교만하고 인색한 사람으로 빠지게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맹자』에 대한 학설이 참으로 많지만 이런 점을 지적한 내용은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손암의 경학실력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동포형제라는 혈육의 정에, 학문 수준까지 동급에 이른 두 형제는 너무나 부러운 사이로 여겨집니다. 그런 대학자 형제를 그렇게 긴긴 유배살이로 인생을 마치게 했던 점은, 당시의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였음을 만천하에 보여줍니다. 20년 동안 살인죄로 징역살다 나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어떤 사건을 보면서, 그때의 수사와 재판의 잘못됨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형제를 왜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게 했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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