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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7일 오전 09:57

날마다좋은날 2016. 6. 7. 09:57

혜안스님의 관세음보살 기도이야깁니다.

내용이 매우 길므로 시간내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 감동 그자체입니다. 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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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보문암은 누가 창건 하였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 근처 화전민들 간에는 그때 주지스님 철감(哲鑑)대사의 노스님 때 창건되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못하다.

암자라고는 하나 여섯 평 안팎 되는 법당과 열 평 미만 되는 요사(寮舍)를 가진 규모가 작은 절이었다. 굴피나무 껍질로 덮인 법당과 요사지붕에는 군데군데 이끼를 덮고 있어 오랜 풍상을 겪어 왔다는 경력을 말하고 있다. 건물의 짜임새도 소박한 통나무 구조로서 대패질을 받은 흔적은 없다. 단청을 하고 풍경을 달아둔 그러한 집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위치와 배치는 창설자의 깊은 배려와 면밀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해발 1천 미터 이상으로 보이는 천병산 주령(主嶺)이 힘차게 뻗어 내려와서 높이 삼십 미터 이상의 석벽으로 그친 바로 그 밑에 이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암자의 좌우에는 석벽에서 두 갈래로 갈리어 내려온 청룡등 백호등이 구릉을 이루어 암자를 감싸고 있다. 천병산 주봉에서 좌우 두 쪽으로 갈라진 활개는 청룡등 맞은편에서 월봉이 되고 백호등 건너편에서 서산이 되고 그 사이에는 각각 계곡을 이루고 있다. 울창한 수림 속에서 계곡을 헤치고 쏟아져 나온 시냇물은 청룡, 백호 두 등성이 그친 곳에서 합수(合水)가 되어 수림에 덮인 계곡을 동남으로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암자 전면에는 광활한 평지가 전개되어 두 계곡물이 합수되는 끝까지 연속되어 있다. 석벽 틈에서 솟아나는 물은 나무 흠으로 인수(引水)되어 돌로 판석정(石井)에 구슬 같이 떨어지고 있다. 이 암자를 출입하는 사람들이 이 우물을 영천약수(靈泉藥水)라 하여 일종 선약(仙藥)으로 알고 있다.



보문암에서 인가가 있는 부락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제일 가까운 칠성부락도 3키로 떨어진 수림속에 있으나 육칠호 되는 화전민 집단지다. 계곡을 따라서 동쪽으로 5키로 이상 내려가면 좌편 언저리에 무학 부락이 있다. 천병산 서원을 짓고 정주하게 된 뒤에 이 부락 사람들의 상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고진사는 소년 당상(堂上)으로 근 이십년간 벼슬살이를 하다가 40이 넘은 뒤에 철감대사의 덕풍(德風)을 따라서 벼슬을 하직하고 이곳으로 옮기어 왔다. 고진사가 이곳으로 온 뒤 본래 20호도 못 되던 이 화전부락에 무학동이라는 이름까지 붙게 되고 인가도 늘어나서 지금 규모로 발달 하였다. 고진사는 철감대사의 유일무이한 도우요 지기였다.

철감대사는 오늘도 새벽일과를 마치고 아침식사가 끝난 뒤에 보문암을 나섰다. 육십 고개를 훨씬 넘었다.



무학부락 앞을 지날 무렵까지는 노상(路上)에 내왕하는 행인이 있었다. 철감대사를 대하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친 부친이나 조부와 같이 극진히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길이 수림속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인적은 끊어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멀리 왼편 칠성부락에서는 모닥불의 불빛이 보이기도 한다. 철감대사는 평상시 보다 늦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다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직도 보문암까지는 3키로 정도의 길이다.



바로 그때였다. 왼편 계곡의 시냇물 소리에 섞여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철감대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우렸다. 분명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다. 철감대사는 그 울음소리를 따라서 시냇물 쪽으로 내려갔다. 강보에 싸인 어린애가 반석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울면서 버둥거리고 있다. 철감대사는 아이 부모가 혹시 근처에서 대소변 중이 아닌가 하고 한동안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인기척은 없다. 소리를 높이어 불러 보았다. 역시 대답이 없다. 철감대사는 아이를 장삼소매로 감싸 안았다. 필요 없는 추측이나 사량촌탁(思量忖度)을 하지 않고 보문암으로 돌아왔다.



철감대사를 영접하던 왕노인은 어린 아이를 받으면서 놀랐다. 아니 손님이란 이 어린애가-뉘 집 아이인데...

손님 아이면 무슨 관계요. 이 아이의 부모는 관세음보살님이야!

대사의 유쾌한 말씨였다. 그러나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이 어린 아이를 보았을 때에 철감대사도 놀랐다. 어린 아이는 생후 칠팔 개월 된 당달봉사였다.

업보는 어찌할 수 없는 일!

철감대사는 어린애 얼굴을 드려다 본 뒤에 엄숙히 이 한마디 말만 하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나 장차 만백성을 구제할 큰 그릇이라고 보았다. 두 노인은 밤을 새우면서 어린아이를 돌보았다.



다음날부터 왕노인은 산에 가서 밤과 감을 따고 마뿌리를 캐서 죽을 끓이고 철감대사는 하산하는 길이면 어린애를 안고 가게 되었다. 철감대사에게 눈이 어두운 어린애 상좌가 생기었다는 말은 잠시 동안에 부근 부락과 화전민간에 전파 되었다. 대사가 이이를 안고 부락에 가면 부인들은 서로 다투어 이이를 받아 안고 젖을 먹이는 이도 있고 나이 많은 부인들은 죽을 끓여서 먹이는 이도 있었다. 주간에는 아이가 누구의 집으로 옮기어 갔는지 행방이 분명치 않았다. 사람들은 철감대사의 상좌라는 말만 들어도 귀엽게 여기는 외에 일종의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 도 있었다. 철감대사는 그러하므로 안심하고 자기의 행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날 일이 끝난 뒤에 먼저 받아간 부인 집을 찾으면 아이는 배부르게 먹고 잠자는 때가 많았다. 기저귀는 말끔히 세탁 되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입히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철감대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씨를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하고 더욱 자기의 정진과 행동에 힘을 다하였다.



어느 날 부락에서 보문암에 돌아오니 고진사가 앞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뵙지 못해서... 상좌를 맞으셨다고요?

철감대사를 맞으면서 고진사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요놈이 내발을 묶어 놓은 거지요. 그러나 진사의 발이야 풀려 있었을 텐데...

업장에 얽힌 발 무슨 자유가 있겠읍니까. 그러나 오늘은 제폐(諸廢)하고 참배하러 왔습니다.



지금까지 철감대사와 고진사는 닷새를 넘는 일이 없이 서로 찾고 서로 내왕 하였다. 요즈음은 육칠월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한 끝에 어린아이를 상좌로 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아이 죽감으로 벌꿀과 곶감을 가지고 왔다. 철감대사는 밤이 깊도록 인연법을 말하고 고진사와 상의하여 어린아이의 이름을 혜안(慧眼)이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8년 후 일이었다. 혜안이의 나이도 벌써 여덟 살이 되었다. 지금은 날마다 스님의 지팡이를 잡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혜안이는 스님을 따라서 법당에 예불을 마치고 철감대사에게 비통한 호소를 하였다. 소좌(小佐)는 스님의 은혜만 입고 이대로 살아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네 이름은 혜안이다. 혜안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다. 네가 내 말대로만 한다면 십년 뒤에는 만백성을 살릴 수 있는 큰 의왕(醫王)이 될 것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옵니까? 오늘 안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석양에 철감대사는 비룡천 냇가에서 미리 준비하였던 삼베 자루에 모래를 담아 메고 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래의 용처(用處)를 묻고 그 운반을 도와주었다.



그때마다 대사는 선단(仙丹)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 뿐이고 더 설명을 하는 일이 없었다. 듣는 사람은 모두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철감대사의 하는 일이니 무슨 이치가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보문암에 들어온 철감대사는 혜안이와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예불한 후 모래자루 옆으로 혜안이를 불러 앉히고 엄숙히 타일렀다. 너는 지금부터 앞으로 십년동안 이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정력을 다하여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나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처럼 십년동안 계속하면 이모래 한 알 한 알이 선단(仙丹)으로 변할 것이다.

네 손으로 선단을 만드는 거야! 그러나 내 말을 추호라도 의심하면 허사가 될 것이다. 혜안아, 능히 내 말대로 이 정진을 계속하겠느냐?

하겠습니다. 정진을 계속하겠습니다. 꼭 선단을 만들겠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혜안이의 얼굴에는 기쁨과 희망이 넘치었다. 그날부터 혜안이는 모래 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정력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불렀다.

관세음보살-



혜안이는 밤이나 낮이나 틈만 있으면 이 정진을 쉴 새 없이 계속하였다. 밤중에도 고요한 산사에 혜안이의 정진 소리는 멀리 허공을 헤치고 울려갔다. 때로는 모래 자루에 이마를 대고 잠이 드는 일도 있었다. 그런 때면 철감대사가 조용히 앉아서 자리에 눕히고, 대자대비의 가호를 내리시어 마장이 없도록 하소서!

라고 관세음보살께 기원하였다.



혜안이가 정진을 계속한 뒤로부터 철감대사는 격일로-하루씩 건너 산을 내려가게 되었다. 산에 있는 날이면 혜안이에게 불법을 가르치고 부처님과 보살님의 행적을 일러 주고 성불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철감대사는 산을 내려가는 날이면 혜안이도 그 뒤를 따라서 스님의 행도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때로는 스님을 따라서 고진사 댁을 찾는 일도 자주 있었다.



혜안이가 날마다 도품(道品)이 커가는구려! 복된 사람이야. 우리 혜안이가 우리 철감대사의 상좌가 되었다는 것은-형산백옥(荊山白玉)도 거장을 만나야 광채가 나는 법이거든.



고진사의 말에는 정력이 넘쳤다.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서 불문에 들어온 것은 확실히 복이지요. 그것도 혜안이의 복이지요. 철감대사의 말은 소탈하고 담담하였다. 그러나 혜안이의 슬기롭고 힘찬 발육과 굳은 신심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더욱이 자기의 뒤를 이어받을 그릇을 얻은 것이 기쁘기도 하였다.



혜안이는 성장함에 따라서 과연 혜지가 날마다 증진되고 품위가 날마다 높아가는 것만 같았다. 철감대사를 따라서 법당에 출입하고 산을 내려다니면서부터 그가 십오륙세의 소년기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발을 움직이는 면에서 실수한 적이 없었다. 밝은 육안을 가진 사람 이상으로 손발의 동작이 정확하고 법도(法度)가 있었다. 혜안이는 먼 거리에 있는 것도 렌즈를 통하여 투시하는 것 같고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짐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을 자랑삼아 말하는 일은 물론 없고 그러한 기색을 보이는 일도 없었다. 오직 철감대사와 고진사만은 혜안이의 그러한 성장과정을 잘 보고 알고 있었다. 왕노인 같은 이는 소년 혜안이를 지금은 작은 스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왕대밭에는 왕대가 나는 법!

하고 철감대사와 혜안이를 비교하여 보면서 마음속으로 한탄하게 되었다. 혜안이가 정진을 시작한지도 벌써 9년이 되었다. 그동안 모래자루를 스물 일곱 번 새것으로 갈아 바꾸었고 모래알은 모두 모가 달고 연마가 되어 금강석 같이 영롱(玲瓏)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선단이 되지는 못 하였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모래가 선단이 될 리는 없지! 허황한 말이 아닐까? 라고 의혹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진사는 철감대사의 하는 일이니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왕노인은 선단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혜안이야 물론 자기의 정성이 아직 모자라는 것을 한탄할 뿐이고 의혹을 가져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 그의 신심은 더욱 견고하여만 갔다. 그의 정진 소리는 더욱 청랑(淸朗)하게 울려 갔었다. 철감대사는 팔십세의 고령이다. 삼 년 전부터 부락을 순회하는 행도도 중지하고 지금은 주야 혜안이와 관음정진을 하면서 혜안이의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니 화전민들이나 부락 사람들은 대사의 법문을 듣기 위하여 보

문암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러나 법당은 비좁고 날마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응대하기에는 철감대사의 기력도 걱정이 된다하여 고진사는 부락단위로 모임을 세반으로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씩 세 차례만 모이기로 하였으나 인원수는 점점 늘어서 법당은 더욱 비좁게 되었다. 고진사도 어찌할 수가 없어 부락 대표들을 청하여 상의 하였다.



법당 앞에 설법전(說法殿)을 한 채 지어야 되겠는데-.우리들 힘으로 지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목수는 목수일을 맡고 토수는 토수일을 맡고...각자의 재주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바치고 그렇지 못한 분은 자기의 힘에 따라서 노력이나 물자를 바치어 철감대사의 태산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 부처님 앞에서 복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고진사의 제의에 찬성하고 곧 실천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고진사는 그날로 쌀 일곱 섬과 소금 닷 말을 보문암으로 옮겨오고 목수들은 건축재목을 베고 재단하고 깎고 하는 한편 수많은 부락민들은 쌀, 보리, 콩, 옥수수 등 곡식을 가지고 와서 재목, 돌, 흙, 운반에 힘과 정성을 다하였다. 그 위에 이번 설법전은 풍경도 달고 기와도 덮자는 주장이 많아 기와공인이 와서 기와를 굽기도 하였다. 고진사는 총 감독이 되어 날마다 공사장에서 건물의 방위를 정하고 기초를 마련하고 정초(定礎)를 살피고 있었다.



칠월 초에 시작한 설법전 건축공사는 고진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으로 순조롭게 진행 되어 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시월 보름날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 날은 혜안이가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관음정진을 시작한 날로부터 만 구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 준공식에는 큰 재(齋)를 올리기로 하였다. 떡을 빚고 산과일을 따오고 산나물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올린 다음 모인 사람들이 평등하게 공양하였다.



철감대사는 설법전에 새로 마련된 법상에 앉아서 감개(憾慨)깊은 눈으로 회중을 보았다. 그리고 조역은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이 설법전이 여러분의 정성과 힘으로 이루어졌고 내가 제일 먼저 이 법상에 오르게 된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나 이것도 여러분의 복전을 개발하는 일이라면 경사스러운 일이올시다.



그러나

나의 이 세상 인연도 종말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오직 하나 혜안이의 공부 성취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다소 섭섭한 일이나 정명(定命)과 인연법(因緣法)은 어찌 할 수 없는 일-. 혜안이의 앞날은 여러 선남선녀에게 부탁합니다. 종자를 뿌리고 김을 매는 사람은 거둘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심은 선근에는 반드시 거둘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나서 진사어른을 가까이 불렀다.



돌연 진사어른을 청한 것은 부탁할 말씀이 있고 시각은 촉박하여서-.

실은 오늘 중으로 나의 세상 인연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왕노인은 오늘부터 총지거사(摠持居士)로서 지나도록 하시오.



철감대사의 말이 계속 되는 동안 먼저 동요되는 사람은 왕노인이었다. 그는 얼굴빛을 변하면서 철감대사의 말을 중단시키려는 기색이었다. 고진사는 눈짓으로 왕노인을 제지하였다. 혜안이는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스님의 말씀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혜안이는 내가 간 뒤에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스승으로 도움을 받도록 하여라. 두 분께 후사를 부탁합니다.



대사는 말을 마치고 합장하여 묵념한 후에 염주를 들고 조용히 자리에 눕는다. 왕노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감대사를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고진사는 손을 제지하였다. 혜안이는 단정히 꿇어앉아서 스님의 거룩한 임종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다. 향로의 연기만 허공으로 길게 선을 그으면서 올라간다. 창밖에서는 가을바람에 낙엽 굴러가는 소리와 설법전의 풍경소리가 들린다.



그 후 두 시각도 못 되어 철감대사는 숨을 거두었다. 혜안이는 비로서 그러나 처음으로 체험하는 이 거룩한 임종-천병산 산정에 걸쳤던 구름이 바람을 타고 사라져 가듯 이 평화스럽게 잠들어 가는 철감대사의 임종에 감동되어 부지중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었다.



철감대사이 입적 임종은 그날 중으로 무학동을 위시하여 인근 부락에 전파되었다. 대사를 존경하던 선남선녀들은 보문암으로 몰려들었다. 통곡하는 사람, 대지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사람, 생전에 한 번 더 뵙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한탄하는 사람 보문암 경내는 일대 혼란이었다. 삼일 후에 철감대사의 다비법식(茶毘法式)-영결식이 있었다. 이날 모인 조객은 천명이상이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천지개벽 이래 천병산 중에 이러한 사람 모임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다비에 모인 사람들은 단순한 조 객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한 사람 한사람이 모두 철감대사의 높은 덕과 거룩한 인격과 은혜를 추모하면서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불법을 믿고 도웁고 보문암을 돌보아 주겠다고 서로 맹세하였다.



고진사는 그 뒤로부터 자기의 생활 발판을 보문암으로 옮기고 혜안이와 기거를 같이하면서 보문암을 돌보게 되고, 왕노인은 고진사의 지시를 따라서 보문암의 전곡을 맡아 경리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또한 고진사는 부락 대표들과 상의하여 철감대사의 기념사업으로 법당을 개축하기로 하고 권선장(勸善帳)을 만들어 널리 동참을 권선하기로 하였다. 부근부락 사람들은 물론, 멀리 이 소문을 들은 고을 사람들까지 다투어 전곡을 헌납하고, 고을 태수도 전곡을 싣고와서 고진사를 위문할 목수와 토수도 보내왔다.



법당개축공사는 순조롭게 진척되어 그 이듬해 오월 상양(上樑)에 이어 기와를 덮고 칠월에는 외부 공사를 끝냈다. 남은 것은 내부수장과 단청공사 뿐이다.



혜안이는 법당 개축 상황을 들으면서 스님의 생전에 쌓은 공덕이 사후에도 이처럼 거룩하게 비치는 것인가 하고 깊이 감격하면서 자기 정진에 더욱 힘을 기우렸다. 그동안에 모래자루를 다시 세번 갈았으니 삼십 개를 채운 셈이다. 그는 지금 의젓한 소년으로서 성장함에 따라 더욱 청초하고 늠름한 기품이 넘치었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동진보살을 만난 것처럼 자연 머리를 숙이게 된다. 무슨 음식이나 과일을 가져다주는 것을 불전에 올리는 것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작은 스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해 구월부터 시작한 단청공사도 시월 초에 끝났다. 법당 준공식은 철감대사의 소상(小喪) 전날인 시월 십팔일에 시행하기로 하고 고진사 이하 부락 대표들은 그 준비에 분망하였다. 지금은 총지거사인 왕노인도 쉴 새 없이 재식(齋式)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들이었다.



시월 십사일, 그 날은 유달리 청랑한 날이었다. 밤이면 간혹 엷은 서리도 내리어 산사의 아침저녁은 냉기가 돌았으나 주간은 맑은 하늘에 태양 빛이 따스하였다. 보문암에는 부락대표들 남녀 십여 명이 밤을 새우면서 음식 차반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내일이 혜안이가 관음정진을 시작한 후 만 십 년이 되는 날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고진사와 왕노인까지도 재식 준비에 쫓기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오직 혜안이 만은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모래알은 아직 선단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안되면 앞으로 또 십년 더 계속할 뿐!

이라고 내심 작정 하였다.



시월 십오일. 이날 새벽에 혜안이는 향로를 들고 법당으로 갔다. 혜안이 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방향감각이 확실하였다. 보통 사람이 해 뜨는 것이나 달 지는 것을 보고 동서를 구분할 때에 혜안이는 손끝은 청진기 이상으로 예민하였다. 풀이나 나무를 만져보고도 그 생태를 짐작하였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일을 발표한 적은 없다. 다만 멀리서 짐승이나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 맹수나 맹금에게 쫓긴다든가, 새끼를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일은 있었다. 그는 몇 걸음 앞에 층계가 있고 개울창은 어디 있고 법당문 고리는 어느 정도의 높이에 있다는 것을 보는 사람 이상으로 잘 알 고 있었다. 그는 과거 십 삼년 동안 법당을 출입하고 보문암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실수한 일이 없었다.



그는 예불을 마치고 꿇어 엎디어 부족한 정성을 참회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십년간 다시 정진을 계속하여 스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작은 스님! 작은 스님! 큰 일 났어요!

어느 부락 대표의 말소리였다. 고진사 어른이 그만...

혜안이는 고진사의 심상에 급변이 생긴 것을 짐작하고, 알았습니다. 갑시다. 대답 하면서 허둥지둥 법당을 나왔다. 고진사는 원래 비대한 분으로 작금 과로한 끝에 중풍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고진사 옆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일을 어찌할 것이냐? 고 걱정과 탄식을 하면서 수선스러웠다. 혜안이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고진사 옆으로 다가 앉으면서 손을 잡고 맥을 보았다. 몸은 불덩이 같이 닳았고 숨소리는 촉박하였다. 고진사는 혀가 굳어져서 말을 하지 못한다. 높은 신열을 감촉하면서 혜안이의 머릿속에는 자루 안에 있는 모래가 떠올랐다. 혜안이는 고진사의 옷을 벗기게 하고 모래자루를 뜯도록 하였다. 혜안이는 모래를 쥐어내어 자리에 흩고 그 위에 고진사를 눕힌 다음 전신을 만지면서 더듬어갔다. 그의 손끝에는 혈액이 통하는 상태와 혈액이 순환하다가 막힌 곳이 일일이 감촉 되었다. 혜안이는 일심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막힌 곳을 주무르고 마찰하였다. 그리하여 막힌 혈액이 통하였다. 먼저 목과 가슴을, 다음은 팔과 다리를 마찰하였다.



휘유!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고진사는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고진사가 졸도하던 그때보다도 더욱 놀랐다. 기적! 이라고 모두 소리를 질렀다. 십분도 채 되지 못하여 고진사는 몸을 일으키어 주위를 살피었다. 먼동이 트고 동창이 밝아온다. 고진사의 눈에는 환희와 감격의 눈물이 고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놀라움과 기쁨을 참지 못하여 우는 사람도 있었다. 철감대사가 이 고경덕에게 제일 먼저 소중한 영약 선단을 먹일 줄이야! 혜안이의 십년공부가 없었던들 이 몸은 그대로 추한 종말을 보았을 것인데-혜안사미는 바로 현세의 관음보살님이오!



고진사는 옷을 입고 합장하여 혜안이에게 세 번 절하였다. 모든 사람들도 합장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혜안이는 고진사가 자기에게 예배를 하였으리라고 생각지는 아니하였다. 진사어른, 어떠하십니까?



다 나았소! 우리 작은 스님 법력으로... 여러분! 소중한 이 선단을 한 알이라도 허실함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들은 지금에야 철감대사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니 오늘이 바로 작은 스님이 공부를 시작한 후 십 년이 되는 날이구려! 우리 작은 스님도 공부를 성취하고 도를 이루었습니다. 큰 스님을 받들던 그 마음으로 작은 스님을 섬기어 갑시다!



고진사의 가족들이 급보를 듣고 그 중에서도 젊은 아들들이 보문암으로 달려왔을 때에 고진사는 여러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한 번 놀랐다. 허보를 전했던 것일까? 귀신에게 홀린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이 고생을 하였구나, 하마터면 내 생전에 대면도 못하였을 것을!

좌우간 안심들 하고 기다려라. 조반 후에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로 하자-너희들도 이 기적을 알아두어야 하겠다.

뒤를 이어 가족 중의 여자들과 소문을 들은 부락 사람들이 계속 도착하였다.



고진사는 모여든 사람들을 설법전으로 집합시키고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듣는 사람들 중에는 감탄하는 사람도 있고, 반신반의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설명하는 사람과 고진사가 아니었다면 모두 허황한 말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혜안이의 기적 같은 의술의 소문은 단시일에 번져서 고을에까지 들리었다. 처음에는 중풍환자만을 고치던 혜안이는 위장환자도 고치게 되었고, 폐병 환자도 고치게 되었다. 뒤에는 나병환자 이질환자 할 것 없이 무슨 환자건 고치게 되었다.



각처에서 모여드는 환자수가 처음에는 다섯 명 일곱 명으로 불어올라 가다가 이듬해 삼월에는 삼십 여명이 되고, 여름에는 오륙십 명이 되어 지금은 설법전을 환자 진료소로 사용하게 되었다. 수종하는 사람도 지금은 고진사와 왕노인 외에 고진사의 아들 형제 내외까지 합세하여도 바쁘게 되었다. 환자들의 도착 순서로 순위를 정하고 모래를 깔아 눕히고 한번 사용한 모래를 열탕으로 소독하여 말리고...이러한 일을 하는 수종군들의 일은 쉴 사이 없이 바쁘게 되었다. 고진사의 아들 삼형제 중에서 장남만 집에 남고 다른 두 형제 내외는 모두 보문암으로 와서 혜안이를 돕기로 하였다.



그해 팔월의 일이었다. 서울 대궐 안에는 공주가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된 이래 삼년이 되는 지금까지 전국 이름 있는 의원이 모여들어 백방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어 수심이 늘어만 갔다. 그 동안 막대한 국재(國財)를 소비하였고, 국왕도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 오면서 지금은 지치게 되었다.



이 이상 국비와 정력을 소비할 수는 없다. 외래의원은 전부 돌려보내어라!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관계 대신들과 아홉 명의 어사를 인솔하고 책임 지역을 정하여 그날로 떠나게 하였다.



어사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으나 자신을 갖고 나서는 의원을 만나지 못하였다. 어사들은 모두 초조하게 헤매면서 시일만 허송하였다. 어사들 중에는 애절하게 고대하고 있는 왕후를 대할 면목이 없다 하여 자결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천병산 보문암이 있는 지역을 담당한 어사는 육십이 넘은 노령에 한 달 이상 돌아다녔으나 그도 지칠 대로 지쳐 거의 단념하고 천병산을 관할하는 고을에 들리어 태수를 찾아갔는데, 태수가 천병산의 혜안이의 이야기를 하는데...



잠깐 천병산이라면 그 근처에 고경덕 진사가 계시는 곳이 아니오?

어사가 태수의 말을 가로 막고 물었다.

말씀하신 그대로올시다. 고진사는 최근에 불도에 빠져 계시는 모양이올시다.

여기서 그 방향과 노정은 어떠한가요?

서북으로 백 오십 리 가량 됩니다.

그러면 내일은 천병산으로 떠나겠소. 고진사와 옛날 구회(舊懷)를 풀겸, 좋은 친구야! 훌륭한 분이지...



다음날 일찍 어사는 안내하는 관원 두 명과 함께 말을 채찍질 하였으나 무학동서 삼십리 거리 되는 지점에서 밤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 보문암에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되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사는 일루(一縷)의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았으나 하도 허황한 말이어서 믿어지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은 구월 구일의 중양절(重陽節)이었다. 어사는 길을 재촉하여 무학동에 도착하였다. 아직 점심때는 일렀으나 고진사 댁은 무엇인가 쓸쓸한 분위기였다.

진사 어른은 보문암 절에 가서 계십니다.

늙은 하인이 나와서 응대하였다.

언제부터 그 곳에 계시는지?

재작년 시월부터올시다.

그러면 보문암으로!



어사는 관원들에게 지시하였다. 보문암으로 통하는 노상에는 사람이 연락부절이다. 어사는 전에 무슨 큰 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의하여 보니 절로 들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병든 사람들로서 침울한 표정이나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병자가 없고 모두 명랑하고 기쁨이 넘치는 기색이었다. 어사는 하도 기이하여 행인에게 물었다.

절에서 무슨 제라도 올리는 거요?

천만에! 재가 무슨 재요

그럼 무슨 사람 출입이 이처럼!

아직 모르세요? 혜안 작은 스님이 관세음보살의 신력을 입고 일만 병자를 나아주는 것을 보세요!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병자지요? 나오는 사람은 모두 성한 사람, 나도 칠년고질 폐병을 눈 깜짝할 동안에 이처럼 고치고 오는 걸요! 관세음보살!



어사는 그러나 허황하게만 들리었다. 보문암에 도착하니 과연 수많은 환자가 모여 앉아서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진사는 병자명부를 들고 한 사람씩 불러내면 청년이 데리고 가서 쏟아놓은 모래 위에 눕히고 청수한 소년 사미중이 관세음보살을 염창하면서 맥을 더듬어 몇 번 주무르면 환자는 전쾌되어 나온다. 어사는 환자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자기 눈을 의심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눈을 비비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 무렵 고진사는 그날 치료자 명부를 셈하고 나서 천정을 향하여 말한다. 오늘은 일백열한 명! 끝이다. 수고들 하였다. 고진사는 혜안이를 요사로 보내고 뒷처리를 지시한 다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명당 영감! 어사는 앞으로 나오면서 불렀다. 고진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어사를 바라보았다. 어사는 자기의 성명과 내력 그리고 어사의 사명을 밝히었다. 고진사는 비로서 어사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들은 함께 요사로 가서 구정을 풀고 어사의 임무를 다시 들었다. 왕후에 걱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고진사도 같이 걱정하였다. 고진사는 보문암의 내력과 철감대사, 그리고 혜안이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혜안이를 서울로 데려가야 되겠습니다. 어사가 제안하였다. 국명(國命)이 지엄하시다 할지라도 그 본인의 의사를 들어야 될 줄로 압니다.

당연한 말씀-그러면 혜안이를-아니 그 작은 스님을 청해주시오. 혜안이가 들어왔다. 혜안이는 전후 사정말을 듣고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국명은 지엄하시나 날마다 찾아오는 수많은 환자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가 없읍니다. 그것은 부처님과 스님께서 허용하시지 않은 일이올시다. 무엄(無嚴)한 말씀이나 한 사람을 고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어사는 물론 고진사도 말문이 막힌다. 위엄이 있고 사리(事理)에 합당한 말이다.



우리는 작은 스님이 서울 다녀올 동안 찾아오는 병자들을 수용하여 응급 치료를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진사는 난처하여 이러한 절충안을 말하였다. 어렵지 않습니다. 어사는 즉답(卽答)하였다. 삼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사(病舍)와 다섯 명의 의원을 준비하여 그동안 치료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혜안이도 가는 수밖에 없겠네. 국명을 어길 수 없으니, 고진사도 간곡히 권하였다. 혜안이도 부득이 응낙하고 가기로 하였다. 어사는 태수에게 관원을 보내어 의원을 구하고 병사를 지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고진사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였다.



준비에 삼일이 걸리었다. 혜안이는 남여(藍輿)를 타고 어사는 말을 타고 떠났다. 혜안이는 모래주머니를 잊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그의 유일한 약품이요 의료기구였다. 서울로 가는 연도(沿道)에는 역졸이 앞을 달리고 방백(方佰) 수령(守令)들은 지경까지 나와서 혜안의 일행을 맞아들이었다. 공주의 병을 고치려 가는 혜안이의 소문은 날개가 돋쳐 방방곡곡에 퍼져갔다. 연동 주민들은 도를 통하여 신통변화를 부린다는 젊은 도승을 보려고 떼를 지어 혜안이가 통과하는 길가로 모여들었다. 남여에 앉은 혜안을 본 국민들은 모두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었다.



길을 재촉하였으니 천병산을 떠난 후 며칠 만에 혜안이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혜안이를 객관에 쉬게 하고 어사는 내궁으로 달려갔다. 왕후는 보낸 어사 한 사람 한사람이 허행으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들을 때마다 실망만 더욱 심하여 이제는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때에 또 한사람의 어사가 돌아와서 알현을 청한다고 여관이 주달(奏達)하여도 왕후는 손을 저어 거절하였다. 왕후는 다시 한 번 실망의 충격을 받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공주마마의 병환을 고칠 도승을 모시어 왔다고 주달하시오! 왕후는 의외에 놀라서 다시 말하였다. 도승이 왔다고?

왕후의 얼굴에 혈색이 돌면서 눈에는 광채가 돋는다. 속히 들라고 전하여라. 어사로부터 혜안이의 내력을 대강 들은 왕후는 일각이 초조하여 즉시 불러오라고 일렀다.



왕실, 위신도 생각해야 될 일이니 내일 밝은 날로 미루도록 하셔야 되겠습니다. 어사의 간곡한 말에 왕후도 겨우 납득이 되었다. 다음날 어사는 재상과 함께 국왕에게 알현하고 왕명을 어기면서 그 동안 의원을 구하게 된 죄를 청하고 철감대사의 높은 덕화와 혜안이의 굳은 신심, 관세음보살의 가피 등을 상세하게 품달하였다. 국왕도 크게 감동하여 곧 혜안이를 대궐 안으로 불러들이었다. 국왕은 혜안이의 청수(淸秀)한 자세와 높은 기품에 감탄하였다. 국왕은 혜안이를 내궁으로 인도하도록 분부 하였다.



한편 일각이 삼추(三秋)같이 초조한 왕후는 아침부터 의상을 정제하고 왕후정전에 나와서 국왕정전의 소식을 탐문하고 있었다. 미구에 혜안이가 어사의 인도로 내궁에 든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왕후는 혜안이를 보는 순간 무슨 위력에 눌리어 합장하고 예배하였다.



혜안이는 곧 공주의 병실로 안내 되었다. 잠시 병자의 맥을 짚어 본 뒤에 혜안이는 엄숙히 지시하였다. 병실에는 왕후마마와 여관(女官)한분 그리고 시의(侍醫)한분만 남으시고 모두 물러가도록 하십시오.



외인은 전부 물러갔다. 혜안이는 자리에 모래를 깔게하고 내의(內衣)만 입은 공주를 그 위에 눕히도록 하였다. 혜안이는 합장하고 관세음보살 명호를 일곱 번 부른 후에 공주의 맥을 더듬어 가면서 가볍게 주물렀다.

관세음보살!

소리와 함께 공주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그 사이가 참으로 잠깐 동안이었다.

치료는 끝났습니다. 공주마마가 일어나시면 모래를 허실 없이 쓸어서 담아 보내 주십시오.



혜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공주는 힘찬 기지개를 키면서 일어난다. 왕후와 여관은 이 신기한 기적에 놀라고 기뻐서 (어머나!)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공주를 붙잡을 여가도 없이 혜안이의 앞에 꿇어 엎드려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는 공주를 붙들고 기쁨의 울음을 터뜨렸다. 입회하였던 시의도 자기의 눈을 의심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눈을 비비어 본다.

이런 허황한 일도 있는가?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삼년간 자기들이 죽을힘을 다하여도 못한 일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한낱 사미중이 이루어 놓다니!



잠깐 스님! 공주는 문을 향하여 나가는 혜안이를 불렀다. 소녀의 예배나 받고 가시도록! 공주는 혜안이의-자기 생명의 은인인 혜안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황공한 말씀을! 그는 아무 표정 없는 그러나 위엄이 늠름한 얼굴로 한번 돌아본 뒤에 그대로 천천히 나가 버린다.



대궐 안에는 일대 선풍이 일어났다. 공주마마가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이 오셨다!



이런 말이 이 입에서 저 귀로 삽시간에 바람을 타고 번져 갔다. 내궁은 재상이하 문무백관 궁내관속들의 하례객(賀禮客)으로 붐볐다. 국왕도 친히 내궁에 들러 공주를 대면하였다. 마치 죽음에서 소생한 딸을 대하는 감회였다. 국왕의 눈에도 기쁜 눈물이 맺히었다.



이 기적은 대궐 안에서 장안 거리로 번져갔다. 대궐 안에는 허공에서 백상(白象)을 타고 관세음보살이 내려와서 공주마마를 한번 만져주니 공주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는 그러한 소문이 번져 가기도 하였다. 세상에는 혜안이를 한번 보기만 해도 원이 없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혜안이는 객관에서 돌아갈 준비를 갖추고 같이 왔던 어사를 청하였다. 그러할 수가 있는가? 아직 상감마마의 분부도 없는데-하루 이틀 더 머무르게나!



어사는 당황하여 만류시키고 대궐로 들어가서 국왕에게 혜안이의 뜻을 전 하였다. 국왕은 재상이하 각 대신을 불러서 혜안이에 대한 사례방법을 의논하고 천병산에 갔던 어사의 공을 크게 표창하였다.



그날 밤에 공주는 왕후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심중을 말하고 애원 하였다. 그 도중은 소녀의 목숨을 건져 주신 은인이요. 이 세상에서 소녀의 몸을 어루만진 첫 남자올시다. 하늘이 정해 주신 배필인가 합니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허락하신다면 그 도승에게 평생을 의탁하고 싶습니다.



왕후는 공주의 이 애절한 소원을 듣고 놀라서 곧 국왕을 맞아 공주의 뜻을 말하였다. 국왕도 처음에는 놀라고 의외라고 생각하였으나 공주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고 그 다음날 혜안이를 궁중에 있을지라도 부처님과 스님의 옛 도량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하루 속히 돌아가도록 하여주십시오.



장한 일이로다. 그러면 그대의 소원을 말하여 보라. 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고 이루어 주리라.

다른 소원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오직 하나-하루 속히 옛 도장으로 보내 주시면 합니다.



국왕은 모든 물욕에서 해탈된 혜안이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그 정신에 더욱 감동되어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혜안이를 객관으로 보낸 뒤에 재상을 불러 매년 오백석의 향수미를 보문암에 올리도록 명령하고 각자공서(刻字工晝) 갖추라고 지시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공주는 큰 충격을 받고 비탄에 빠져 있었다. 공주의 심정을 달랠 길이 없어 수심에 잠기었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 공주와 왕후는 친히 침선(針線)을 들고 혜안이의 의복과 장삼을 지었다. 그리고 궁내관에게 당부하여 혜안이가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내궁에 들리도록 하였다.



혜안이가 떠나는 날 국왕은 친히 <여의패-어패>를 혜안이에게 전하면서 이 어패는 이 나라 안에서 어느 때 어느 곳이건 나의 관원에게 보이면 그대의 요구는 무엇이건 이루어지리라고 설명하였다. 국왕을 시립하였던 재상은 향수미 오백 석에 관한 말을 전하였다.



혜안이는 사양하였다. 그러나 내가 철감대사에 드리는 것이라면 되지 않나!

하는 국왕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궁내관의 인도로 내궁에 들어간 혜안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 내궁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직감하였다. 왕후의 한숨 소리와 공주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혜안이는 엄숙한 그러나 인자한 말소리로 입을 열었다.



삼계(三界)는 고해올시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시면 사람의 한 생애는 거품과 같습니다. 부귀도 영화도 뜬 구름과 같이 허무한 것, 원한도 애정도 찰라간에 변환하는 것, 모두 탐진치 삼독에 얽힌 인생고의 가닥이올시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마음을 조촐히 하면 괴로움은 낙으로 변하고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어 질 것이올시다. 사람은 인연으로 모이고 인연으로 흩어집니다. 마음을 닦아 가면 뒷날 반갑게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올시다. 고정하시고 정성껏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창 하십시오. 외로울 때에는 관세음 보살님께 의지하십시오.



혜안이의 말소리는 구만장공(九萬長空)에서 울려오는 학의 소리와 같이 공주의 귓전을 울리었다. 공주는 울음을 그치고 황홀한 눈으로 혜안이를 우러러 보았다. 범할 수 없는 그 거룩한 얼굴! 공주는 지금까지 천박하였던 자기의 생각을 뉘우쳤다. 왕후도 마음속으로 무엇을 깨달은 것 같았다. 혜안이를 향하여 한번 절하고 지어 두었던 의복을 바치었다. 혜안이는 사양치 않고 그것을 받았다.



혜안이는 작별인사를 마치고 대궐을 떠났다. 문무백관과 남녀궁내관속들은 정문 앞에서 혜안이를 배웅하였다. 왕후와 공주는 내궁정전 난간에 몸을 기대고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안이가 서울을 떠나기 앞서 연도 각 지방 수령들에게 역마가 달리고 칙서(勅書)가 내리어졌다. 혜안이의 영접과 배웅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는 분부였다. 지방 수령들은 혜안이에게 <여의패>라는 어패가 내리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걱정하고 초조하였다. 소홀히 하다가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지 또 무슨 청탁을 내놓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은 비행이라도 들추게 된다면 봉고파직을 당할지 목이 잘리게 될는지 보장할 수 없다하여 전전 긍긍하는 수령도 있었다. 무슨 수단을 쓰던 간에 무사히 지경만 넘기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상대편은 일국의 부마자리도 박차고 여의패를 받은 사람이다. 왕후의 합장배례를 받은 도승이다. 지방 수령들은 제각기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혜안이의 행차는 그의 굳은 사퇴에도 불구하고 장엄하였다. 새로 꾸민 남여는 오색 구슬과 조화로 장식 되고 전후좌우로 호위하는 십이인의 호위병은 한 사람의 무관에게 인솔되어 외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새 안장으로 꾸며진 마상에 앉아서 새 전립(戰笠)과 전포(戰袍)에 새 기치와 창검을 들고 있다. 그 뒤에 두필의 짐바리가 따르게 되었다.



혜안이가 서울 떠나던 날 서울 거리의 연도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상을 타고 허공에서 내려와 공주의 병을 고쳐준 도승을 보기 위한 것이다. 서로 앞을 다투어 혜안이의 행렬에 접근하려고 하므로 호위병들은 이들을 물리치고 길을 트기에 진땀을 빼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향로에 향을 피우고 합장 배례하는 사람도 있었다.



혜안이가 육일간의 행정(行程)을 마치고 천병산에서 일백칠십리 되는 지점에 이렀을 때의 일이다. 해는 서쪽으로 기우러져가고 배웅 나왔던 관 속들과 영접 나온 관속들이 서로 교대하는 것은 이곳이 두 인접 고을의 지경인 것 같다. 배웅 나왔던 관속들이 호위무관의 수결을 받고 돌아간 직후에 돌연 행렬 앞에서 여인의 울음 섞인 하소연 소리가 들린다.



앞 못 보는 불쌍한 여인이올시다. 명철하신 사또께서 내 딸을 찾아주오. 내 딸을 찾아 주오! 앞 못 보는 여인이올시다.



인솔무관과 군졸들 그리고 남여군들까지 소리소리 꾸짖는다. 썩 물러서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아니 어느 행차라고 요망스럽게 길을 막는 거야! 앞 못 보는 여인잔관속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여인이 혜안이의 면전에 인도 되었다. 그 여인은 당달봉사였다. 무슨 사연인지 말씀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 드리겠읍니 다. 혜안이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소리로 물었다.



여인은 혜안이에게 아뢰었다.

나는 죄 많은 여인이올시다. 사십에 남편을 읽고 눈이 어두운 뒤에 어린 딸을 지팡이 삼아 유리걸식하다가 오늘 이 근처에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딸자식을 뺏겼습니다. 이제는 지팡이 없는 이 어미가 어떻게 살아 가겠읍니까?



연세가 얼마시며 딸은 몇 살인데요?

천한 나이 벌써 마흔네 살, 딸자식은 열여섯 살이올시다.

딸을 빼앗은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잘 알 수 없으나 사람들 말을 들으면 이 고을 관속들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고을로 끌고 갔을 것이올시다. 눈 못 보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와 내 딸을 찾아 주십시오. 그 은혜는 결초보답 하겠습니다.



이때에 영접 나온 관속들은 당황한 태도였다.

좌우간 고을로 갑시다. 이 부인을 고을로 모시도록 하시오.

혜안이는 인솔무관에게 지시하였다.



인솔 무관은 봉사여인을 짐마차에 앉히고 고을로 향했다. 고을 수령은 멀리 나와서 혜안이를 영접한 뒤 숨 돌릴 새도 없이 관아로 달려가서 육방관속을 불렀다.



어느 놈이 그 여인의 딸을 겁탈하였느냐? 먼저 영접 나갔던 관속들을 모조리 결박 지어 차라리 형틀에 올려 매여라! 바른대로 불지 않으면 물고를 내리라!



수령의 명령은 추상같았다.

수령은 혜안이의 명령이 있기 전에 그 딸을 찾아서 받치고 사과하는 편이 득책(得策)이라고 생각하였다. 관속들은 돌개바람에 나뭇잎같이 떨었다. 이대로 가면 몇 사람이 결단 날지 예측키 어렵다고 모두 걱정 하였다. 그 때 한 군노가 어려운 판국임을 깨닫고 앞으로 나와서 자백하였다.



소인이 그저 죽을죄로...그 처녀는 곧 데려오겠습니다. 응, 저놈을 결박 지어 하옥하여라. 손님을 배송한 후에 처참하리라. 두 사람의 관속이 달려가서 그 처녀를 데려왔다. 수령은 처녀를 객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 여인에게 인도하고 혜안이의 앞에 꿇어 엎드려 자기의 불찰을 사죄하고 범인은 곧 처리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실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찾았고 그 범인은 죄를 자백하였다하니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 나에게 대한 대접이올시다. 오늘밤 안 데려오너라. 죄수는 결박 지어 끌려왔다. 너를 당장 참수랄 일이나 인자하신 대사님의 분부로 석방하는 것이다.

개과천선 하렸다!



죄수는 감격한 눈물을 흘리면서 몇 번이고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날 밤 딸까지 찾은 여인은 혜안이의 방문 밖에 꿇어 엎드려 합장하고 울면서 혜안이의 은덕을 치하하였다. 이 여인도 혜안이가 젊은 스님이라는 것과 역시 자기와 같은 당달봉사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지난 일을 회상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혜안이는 방문을 열고 여인을 방안으로 인도하여 위로 하였다. 여인은 더욱 흐느껴 울기만 한다.



은혜와 원한은 그 차이가 백지 한 장 두께도 못됩니다. 부처님의 법에서 보면 은혜와 원한은 모두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망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퍼하는 것도 마찬가지올시다. 이 망념을 없이 하려면 정성을 다하여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창하면 됩니다.



나는 죄가 많은 여자올시다. 얼마든지 고생하고 울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선과 악, 죄의 과보도 똑같은 이치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악에서 한 생각을 돌이키면 곧 선이 되고 지옥에서 한 생각을 돌이키면 그 곳이 그대로 극락이 됩니다.



여인은 스님에게...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셨으며 성씨는 누구신지요. 양친모두 계시고...

예, 나는 천병산 보문암에서 왔사옵니다. 혜안이는 기탄없이, 그리고 어색치 않게 대답한다.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읍니다. 철감대사가 아버지시고 어머니십

니다. 스님께서 강보에 싸인 나를 키우시고...그러니 속성(俗姓)도 없지요

속성을 알길이 없지요. 스님께서도 말씀한 일이 없으니...

그러면 혹시나!

여인은 말을 잊지 못하고 전신을 떨면서 무슨 공포감에 사로잡히어 숨만 헐떡거리고 있다.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혜안이는 여인에 대한 깊은 동정과 함께 이상한 예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소탈하고 담담하게 그 다음 말을 이었다. 나의 속성은 알 것도 없지요. 부처님의 제자요 철감대사의 상좌면 충분합니다. 우리 스님은 인자하신 분이었지요. 우리 스님께서는 나를 어느 개천가 반석 위에서 주어다 키우셨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지금 스님 나이가 얼마신데-.

열아홉이올시다. 그렇다면 역시-아, 이것이 무슨 일인가! 이 죄 많은 어미라도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어미라면?



여인이 혜안이의 목을 덥석 끌어안고 가슴을 들먹거리면서 울기 시작한다. 차마 내 자식아! 하는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혜안이는 벌써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여인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지난 일을 뉘우치고 슬퍼하실 것은 없읍니다. 떳떳하게 자식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모두가 인연소치 피할 수 없는 업보소관이 올시다. 혜안이는 그날 밤에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였다. 눈을 뜬 어머니는 다시 혜안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십구 년 전의 어린 모습을 되찾아 보면서 끝없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딸을 불러서 혜안이에게 대면시키었다. 네 동생 정화다. 동복(同腹)누이동생이다. 오늘은 어머니를 만나고 누이동생도 얻게 되는 길일(吉日)인가 봅니다. 혜안이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 사람들의 만 가지 병을 고쳐주고 어미의 눈까지 뜨게 하면서 어찌 네 눈을 뜨게 못하느냐?

오늘로서 남은 죄상이 사라졌으니 소자도 내일은 눈을 뜨게 될 것이올시다.



그들 세 사람은 밤이 깊도록 관세음보살을 염창 하였다. 자정이 넘을 무렵 혜안이는 두 손을 합장하고 일곱 번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리고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볍게 문질렀다. 혜안이의 두 눈에서 검은 안개가 걷히면서 혜안이의 두 눈에는 하현(下弦)달빛이 비쳐 들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오. 소자도 눈을 떴습니다.



그들 세 사람은 객관 난간에서 하얀 달빛을 바라보면서 관세음보살의 무량 무진한 공덕을 찬양하였다. 어머니는 두 남매에게 다음과 같은 지난날의 참회 담을 들려주었다.



혜안이의 아버지는 천병산 서남편칠십여리 지점에 있는 어느 지방 부농(富農)남씨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하다가 스물세 살 때 어머니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도 과거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원래 몸이 허약하여 항상 그것을 한탄하였다. 그 후 사년이 되던 해에 혜안이를 유복자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유복이를 낳은 다음 고이 기르면서 일생을 지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심한 시어머니의 구박에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저년이 내 자식을 잡아먹었다. 고생트집을 잡아오면서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갔다. 어머니는 몇 번

인가 죽기를 결심한 일도 있었다. 그 무렵 이웃 문씨라는 청년의 꼬임을 받았다. 어머니는 이 청년과 야반에 집을 떠났다. 그들은 정처 없이 동북쪽을 향하여 전전 배회하다가 어느 집 협실에서 혜안이를 해산하였다. 그 때에 어머니는 스물다섯, 문씨는 스물일곱이었다. 아이는 남자였으나 당달봉사였다.



문씨는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생활고에 부닥쳐서 갈팡질팡 몸부림 쳤다. 몸을 의지할 움막 한간 없고 끼니를 이어 갈 먹을 것도 없다. 그 위에 병신 어린애까지 걸머지고 앞에 놓여 있는 태산을 넘어갈 자신은 전연 없었다. 문씨의 짜증은 날로 심하여 갈 뿐이었다.



그들은 화전민 생활을 하기로하고 천병산을 향하여 갔다. 종일 걸어온 끝에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배는 고파서 촌보도 더 옮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시냇가에 있는 반석 위에 망연히 앉아서 내려 덮는 어둠속으로 말려들었다.



어머니의 말소리는 잠시 중단되었다. 모든 것을 자식들 앞에서 고백하고 지난 일을 참회하겠다던 결심도 지금 보살 같이 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룩한 혜안이의 면전에서 차마 그 다음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청정하고 티끌이 없는 혜안이와 추잡한 자기의 과거를 비교하면 연꽃과 진흙 바닥이 서로 맞보는 것 같았다. 자식이라고 정면으로 대하기가 참피스럽고 염치가 없었다.



혜안이는 어머니의 그러한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의 심중을 거침없이 모두 고백하여 버리는 것이 그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것이 어머니의 죄의식을 소멸시키고 어머니를 고통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 다음날 계속하여 주십시오. 마음에 맺힌 일이면 무엇이건 들려 주십시오. 그리하여 지난 일을 전부 물에 흘려보내고 다시 우리들과 새로운 길을 떠나기로 하십시다.



어머니는 혜안이의 말에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끼었다. 무엇을 숨기랴 하는 심정이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서 이 밤을 지내야 할까? 갈 곳도 없이 날은 어둡고-



문씨 청년은 깊은 실망 속에 떨어져서 자살이라도 하자고 외쳤다. 어머니는 공포에 떨면서 문씨를 달래었다. 살아 갈 수 있는 데까지 살아가 보자고 애원하였다. 두내외간에는 싸움이 벌어졌다.



격분한 끝에 아내와 어린애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할 기세였다. 어머니는 질겁하고 어린애를 버리고 가겠으니 자살만은 말자고 애원하였다. 그러면 당장 일어서라고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십분 이상 끌려가다가 홀연 버리고 온 어린애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죽기를 각오하고 반발하였다. 아귀 같은 놈이라고 악을 썼다.

이 죄를 무엇으로 받을꼬?



그들은 화전민 생활을 목적하고 천병산을 찾아 왔으나 어린애를 잃은 뒤에는 천병산이 원망스럽고 무섭기만 하였다. 그들은 북으로 다시, 백리 이상 도망치듯 멀리 옮기어 가서 어느 부농의 고용인이 되었다. 문씨는 머슴 사리, 어머니는 식모살이로 생계를 이어 갔었다. 이때에 정화가 태어났다.



문씨내외는 근실한 고용사리로 부자유 없이 살아갈 수가 있었다. 오륙년 뒤에는 품삯을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뒤에는 농토도 작만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지워버릴 수 없는 한 가지 고민은 천병산에 버리고 온 어린애 일이다. 어린애의 영상은 그들의 기쁨을 앗아가고 생활을 어둡게 하였다. 그들은 그 날을 어린애의 제사날로 정하고 무당을 청하여 굿을 하였다.



오 년 전에 괴질이 그 지방을 휩쓸었다. 문씨가 괴질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임종 시에 반석 위에 버려둔 어린애를 데려오라고 소리소리 고함을 쳤다. 그는 어린애를 버리고 온 죄를 받는 것이라고 슬피 울기도 하였다.



문씨가 죽은 뒤에 어머니는 정화는 유일한 생활의 기둥으로 삼고 애써 살아왔다. 모든 일을 다 하여 정화를 곱게 키우기로 하였다. 버린 어린애의 넋을 위로하고 그에게 다 못한 애정까지를 정화에게 쏟아 주기로 하였다. 지난 일을 잊고 정화만을 위하여 살아가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외로움도 고달픔도 잊어버리고 애써 일을 하였다. 어머니는 역시 현명한 부인이었다.



그러나 삼 년 전부터 두 눈이 어둡기 시작하였다. 얼마 뒤에 필경 실명하고 말았다. 당연한 죄보! 라고 어머니는 생각하였다. 농토를 팔고 집을 팔아서 살아오다가 반년 전부터 드디어 정화를 앞세우고 유리걸식하게 되었다. 혜안이가 통과하던 길목에서 영접 나온 관속 중에서 젊은 군노가 정화의 미색에 혼탁하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정화를 빼앗아 돌린 것이 그 끝이었다.

천벌을 받고 진작 죽었어야 될 어미였다!



어머니는 침통하게 말하였다. 참회의 눈물이 두 뺨을 적시고 있다. 정화도 울고 혜안이도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면서 간혹 두 눈에 손수건을 대는 적이 있었다. 마음을 비워버리면 죄가 의지할 곳이 없어집니다. 죄가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앞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채워두시면 안정을 얻게 될 것이올시다.



혜안이의 말을 듣는 동안에 어머니의 눈에도 무슨 광채가 빛나고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친다. 어머니는 혜안이의 발밑에 엎드려 예배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용히 혜안이의 손을 잡고 그 얼굴을 우러러 보았다.



자기 아들의 얼굴은 거룩하고 성스럽기만 하였다. 조각달은 세 사람의 얼굴을 비쳐주고 있었다. 어젯밤 객관에서 일어난 기적은 관아를 위시하여 이 고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먼저 놀란 사람은 수령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관원들을 거느리고 객관으로 문안을 갔었다. 혜안이는 이제 그 걸식여인 모녀와 함께 단정히 앉아서 관음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당달봉사라고 들었던 혜안이가 총기 넘치는 두 눈으로 수령을 정시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것은 또 어찌된 일일까. 그 걸식봉사 여인도 반짝이는 두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령은 처음에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혜안이가 무슨 요술을 베풀어 자기를 현혹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감히 그 연유를 묻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이 걸인 모녀를 자기 방에 들게 한 이유도 알수 없어 궁금하였다. 혹시 어제 일어난 처녀겁탈 사건에 관련하여 자기의 비행을 수소문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는 것만 같았다. 어패 여의패를 휘두르는 날이면 제 몸의 뼈도 거두지 못할 일이었다. 혜안이는 수령의 그러한 심정을 간파하였다.



사또께서는 놀라실 것이 없읍니다. 이 분은 나의 어머니시고 이 아이는 나의 동생이올시다. 사또의 관내에 와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이곳이 제이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 위에 이곳에 와서 우리들의 업장이 소멸되어 못 보던 눈도 뜨게 되었으니 인연이 두텁게 되었습니다. 수령은 혜안이의 말하는 뜻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걸인 모녀와 혜안이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알았다. 그리고 혜안이라는 사미중이 하룻밤 사이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신통변화를 일으키는 인물인가 하면 두려운 생각도 든다. 공주마마의 어려운 병을 순식간에 고쳤다는 것도 허황된 일이 아니고 이 신통변화의 재주로 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혜안의 얼굴을 보았다. 맑고 기품 있고 인자하고 그러나 범하기 어려운 위엄이 넘치는 그 얼굴! 그 순간 수령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는 그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겨우 하직 인사를 하고 도망쳐 관아로 돌아갔다.



관아로 돌아온 수령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까지 이년반 동안 이 고을에 와서 긁어모은 부정한 재물이 먼저 그의 머리를 내려 누른다. 지금 억울하게 옥중에 묶여 있는 수백 명의 죄수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자기의 죄를 요술쟁이 사미중에게 호소하는 소리가 귓전을 치는 것 같았다. 만약 그 사미중이 이런 일을 알게 된다면 자기의 생애는 끝장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좌우간 모면할 길을 찾을 일이다-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령은 관원을 불러서 그 걸인여인 모녀가 입을 의상과 장신구 일습(一襲 )을 상상품(上上品)으로 만들도록 하고 금은보배와 값진 선물을 준비 하도록 분부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인근 절에서 학식이 있는 노소승려들을 청하여 혜안이를 위로하고 접대하게 하였다.



수령은 의상과 패물을 갖추어 혜안이의 모친을 찾았다. 수령은 쓸 수 있는 모든 미언영사(美言令辭)를 다하여 혜안이의 모친에게 아첨하였다. 의복과 패물을 바쳤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오늘의 기쁨을 축하 하겠다고 그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였다. 어머니는 수령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그 부자연스런 태도를 꾸짖듯이 엄숙하게 말하였다.



나는 한낱 유리걸식하는 걸인, 이 고을에 와서 자식을 만난 것만도 감축한 일이올시다. 자식의 반연으로 이러한 객관에서 후대를 받고 있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올시다. 그 외에 이러한 물건을 받는 일은 예도(禮度)에 벗어나는 일이올시다. 자식이라고 하나 우리 스님의 허락이 없이는 받을 수 없습니다.



수령은 무안하였다. 혜안이에게 그 사유를 말하고 대부인과 아가씨의 의상을 갈아 입으셔야할 일이니 그처럼 분부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배석하고 있던 승려들도 당연한 일이라고 혜안이에게 권고하였다. 그러나 혜안이는 부드럽게 수령을 타일렀다.



보시도 무주상 보시가 아니면 공이 없습니다. 만약 불순한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보시라면 짐독 이상으로 독기만 전하게 됩니다. 사또께서는 이러한 보시에 앞서 먼저 마음의 독기를 없애도록 하십시오.



수령은 가슴이 덜컥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의 창자 속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이 도승 앞에서 어설픈 수작은 도리어 재앙만 무겁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독기를 어떻게 없앨 수가 있을지 인자하신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혜안이를 마지막 영접하여 드리는 수령은 천병산 보문암을 관할하는 태수였다. 그는 평소 불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아하고 신봉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고진사같은 청염한 사람이 보문암 화주격으로 있었기에 법당을 짓는 권선에 시주도 하였으나 불법은 허황한 도라고 생각하였다. 그 뒤에 혜안이가 병자들을 고치고 있다하여도 또 어사가 와서 혜안 이를 서울로 데려간 뒤에도 그는 역시 허황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혜안이의 귀로에 앞서 역마가 달려오고 칙지가 내리고 혜안이에게 <여의패>라는 어패가 내렸다는 말을 듣게 되자 전과 같이 깔보고 허황하다는 소리만하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필시 곡절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토록 강직하고 총명하다는 이름이 있는 고진사가 귀의 한 것도 그러할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하던 차에 매년 오백 석 향수 미를 보문암에 헌납하는 집정관으로 자기를 임명한다는 교지가 내리고 공주마마의 원당을 보문암에 조영하라는 칙지가 감사를 거쳐서 도착하였다



혜안이의 어머니는 이날 연화자모의 계명을 받고 감노료를 주관하면서 세 사람의 여인과 정화를 거느리고 원당 혜관전의 수호 책임을 맡게 되었다. 원당 낙성불사에 참석 하였던 칙사는 낙성불사의 전말과 아울러 혜안이의 기거동작과 보문암의 현황을 자세히 품달 하였다. 국왕과 왕후는 만족한 기색으로 시종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편 공주는 관세음보살로 화생된 혜안이를 추억 속에 되새기면서 흠모하는 마음을 멀리 보문암으로 날리고 있었다.



공주의 원당이 낙성된 이듬해 가을에는 고진사와 왕노인을 위한 청풍장과 묘향각 이 법당 동남편 방위에 조영 되었다. 이 두 전각에서 고진사와 왕 노인은 증여거사와 총지거사로서 여러 남자들과 관음정진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청풍장과 묘향각이 낙성된 직후에 서울서 칙사가 도착하여 시월 십오일에 공주마마가 보문암에 행차한다는 칙서를 전달하였다. 보문암에서는 그 영접준비에 분망하였다. 그러나 혜안이는 공주가 찾아오는 목적과 그 의중을 짐작하고 고진사를 청하였다.



공주마마의 영접은 간소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영접은 도리어 그 분의 마음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공주도 우리 보문암 대중의 한 사람이 되어 우리들과 함께 수도하게 될 것이올시다. 청향각을 공주마마의 거처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주의 행차는 간소 하였다. 국태민안 성수무강의 원력을 세우고 국왕과 왕후의 윤허를 얻은 공주는 서울서부터 번폐스러운 일체의 의장을 물리치고 늙은 여관 한 사람과 호위군관 다섯 명 세필의 짐받이만을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도중에서도 관폐나 민폐가 없도록 부왕에게 특히 주달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재상 이하 문무백관과 궁내 관속들은 물론 연도 수령들과 백성들도 공주의 덕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지방 감사를 위시하여 인근 수령들은 공주를 위하여 지방선물을 바리바리 싣고 보문암으로 몰려들었다. 공주는 도착 즉시 법당과 원당에 참배하고 먼저 혜안이에게 다음에는 어머니에게 예배하였다. 그리고 고진사와 왕노인을 접견하였다. 공주의 눈에는 환희와 감격의 눈물이 맺히었다.



공주의 접견을 받은 감사와 수령들은 각기 싣고 온 선물 목록을 여관을 통하여 바치었다. 공주는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일체 선물을 물리쳤다. 나는 오늘부터 한낱 수도하는 행자올시다. 벌써 공주는 아니올시다. 일생동안 국태민안과 양주폐하의 성수무강을 빌면서 수도하려고 왔습니다.



이러한 선물보다도 백성을 아끼고 잘 살게 하여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감사와 수령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히었다. 공주가 도착한지 칠일 후에 혜안이는 공주와 여관 그리고 많은 선남선녀를 위하여 계를 설하고 공주에게는 청정행, 여관에게는 선덕화의 계명을 각각 수여하였다.



이날부터 보문암은 보문사로 승격하여 부르게 되었다. 고진사와 왕노인은 날마다 늘어가는 남녀 수도자들을 위하여 정사의 증축 계획을 세웠다. 산문과 기타 건조물도 배치계획에 따라서 활발히 진척되고 있다. 고진사는 도장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배치상황을 살필 때마다 이절 창건자의 원대한 포부를 더욱 감탄하였다.



한편 진작부터 각 부락별로 조직 되어온 보문회도 지금은 사십구개소로 늘어났다. 이 보문회는 관세음보살과 보문사의 공덕을 찬양하고 회원들이 보살행을 실천하면서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 취지로 되어 있다. 보문사 부근 부락에는 보문회가 없는 곳이 없고 먼 곳에도 보문사에서 치료를 받아온 사람이 있는 곳에는 대개 보문회가 조직 되어 가고 있다. 보문회 대표들은 매월 관음제일(二十四日)이면 보문사 관음법회에 참석하여 설법 을 듣기로 되어 있다.



혜안이는 매월 삼회 철감대사의 전례를 따라서 보문회가 있는 부락을 순차로 순회하게 되었다. 부락을 순회하는 날이면 병자의 치료도 그 부락에서 하게 되었다. 고진사는 혜안이의 부락 순회를 자비행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혜안이를 혜감대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주가 보문사에 온지 삼개월 뒤에 정화는 젊은 군노와 결혼하고 무학부락으로 옮기어 갔다. 정화는 어머니를 따라서 머리를 깎고 수도하기를 원하였으나 혜안이는 정화의 세속인연이 아직 남아 있다 하여 타일러서 결혼 시킨 것이었다.



그 동안 공주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었다. 처음에는 혜안이를 바라볼 수 있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무한한 환희를 느끼었다. 어머니와 모든 사람들의 바쁜 일을 도와주고 혜안이의 의복과 법복을 재단하고 마르면서 생애의 보람을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공허한 것 같았다. 염주를 돌리면서 관음정진을 하여도 관세음보살과 자기 사이에는 혜안이의 영상이 가로 막히어 직접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공주는 연꽃 같이 티끌 없는 혜안이-아니 혜감대사의 영상을 가슴에 안아 본다. 그러나 자기가 끼얹는 흙탕물은 꽃잎에 붙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범치 못할 성스러운 혜안대사의 거룩한 영상은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공주는 남의 눈을 피하여 밤중이면 원당에 들어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구원을 애원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자기 팔에 불이 타 \는 심지를 얹어 놓고 염비 참회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가슴에서 타는 불을 끌 수는 없었다. 공주는 삭발하고 득도하기를 원하였다. 자기의 애절한 심정을 달래보자는 것이었다.



혜안이는 공주의 그러한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애욕과 싸우는 공주가 민망하고 불쌍하였다. 그는 철감대사의 책장에서 법화경과 장지 그리고 필연을 꺼내어 공주에게 주었다. 혜안이는 미소를 머금고 말하였다.



이 경 중에서 먼저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일심정성으로 백여덟 번 읽으시면 가슴에 일어나는 풍랑이 진정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경 한질 이십팔 품을 전부 써 보십시오. 쓰시면서 이곳에 오실 때의 처음 발원이었던 국태민안 성수무강을 관세음보살께 축원하십시오. 그리고 한 품씩 써서 끝날 때마다 관세음보살께 바치고 하루씩 기도를 하십시오. 이 처럼 하여 전부 회향하게 되면 마음의 불길이 침정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풍랑이 자고 물 이 맑은 호수에 일월성광이 비치듯이 공주마마의 마음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공주마마의 청정행은 그때에 이루어질 것이올시다.



혜안이의 말소리는 담담하나 위력이 있었다. 공주는 가슴에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쇄락하였다. 공주는 다시 혜안이를 우러러 보았다. 역시 범할 수 없는 연꽃 같은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리는 일층 가까워 져서 새로운 친근감이 생긴다.



공주는 법화경 보문품을 읽기 시작하였다. 일독 이독 삼독 칠독 오십독 육십독 백독 백오독 백육독-백팔독...



과연 공주의 가슴에서 애욕의 풍랑이 진정 되었다. 공주는 새장에서 해방된 백조가 탁 트인 대공에서 새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지금 공주는 혜안이를 애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자비행도의 반려로 볼 수가 있다. 자기의 모든 정력과 정성을 혜안이의 자비행도에 바치기로 결심하니 그저 기쁘고 마음이 평화스럽기만 할뿐 이었다.



공주는 법화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혜안이의-그의 영상이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아니하였다. 한 장 두 장 그리하여 한품 두품 써가는 동안에 마음의 진애는 한 꺼풀씩 벗기어지고 관세음보살이 희미하게 심두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공주는 기쁘고 감사하였다.



공주마마의 이 선근공덕은 멀지 않아 전국토와 모든 백성에게 미칠 것입니다. 혜안이도 기뻐하고 공주를 격려하였다. 천병산의 대기는 맑기만 하다. 수림을 스쳐오는 그윽한 향기는 대지에 퍼진다. 보문사의 관음법계는 날로 융성하여 가고 있다. 혜안이와 공주 두 사람의 안전에 전개 되는 세계는 더욱 넓어져 가고 있다. 불국정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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