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의 다짐을 잊지 마라 / 틱닛한스님
처음 관계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늘 보살필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너무도 멀어져 있다. 서로를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손을 맞잡고 걷지도 않고, 그래서 서로가 고통스럽다.
관계를 시작할 때는 서로가 천국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 깊이 사랑했고, 더없이 행복했다. 이제는 서로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서로를 버린 것 같다.
서로가 또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것도 같다. 천국이 지옥으로 변했고,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지옥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의 등을 떠밀어서 지옥으로 몰아넣고 가둔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다. 그 지옥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관념과 그릇된 판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옥을 깨뜨려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뿐이다.
자각을 실천하는 것, 화를 자각하고 감싸 안는 것이 그 지옥의 문을 여는 길이다.
그래서 나를 구원하고 상대방을 구원하고, 평화의 땅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물론 평소에 수련을 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를 회복해서 두 사람이 모두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것은 세상에 크게 기여를 하는 셈이 된다.
그 승리의 기쁨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수련에 대한 믿음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던 지옥을 바꾸어서 정토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오늘 그 편지를 쓰기 시작할 수 있다. 단지 펜 한 자루와 종이 한 장만으로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다.
15년 전 내가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 불교학자인 한 미국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말했다. "스님, 스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를 많이 쓰셨더군요.
그리고 채소를 기르거나 하는 일에도 시간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그 시간에 시를 쓰시면 더 좋을 텐데요?" 그녀는 내가 채소를 키우는 것을 즐겨 한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극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나에게 밭에서 일을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부지런히 시를 쓰라고 권고했던 것이다.
내가 대답했다. "채소를 기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은 진실이다.
집중과 자각 속에서 살지 않으면, 삶의 모든 순간을 깊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글을 쓸 수 없다.
남에게 보여 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낼 수가 없다. 시는 우리가 타인들에게 선사하는 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애정 어린 표정, 미소, 자애가 가득한 행동 또한 자각과 집중이라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가령, 가족을 위해서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 이미 그때부터 쓰여 지고 있다.
내가 한 편의 소설이나 희곡을 완성하려면 몇 주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소설이나 희곡은 늘 나의 의식 속에 들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그 편지에 대해서 굳이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 편지는 이미 우리 의식이 깊은 곳에서 자연히 쓰여지고 있다.
아무 때나 무턱대고 자리에 앉는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차를 마시고,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채소에 물을 준다.
그러한 것들을 하는데 들인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러한 일상의 일들을 매우 정성껏 해야 한다.
요리를 하고 채소밭에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는 자신의 태도에 마음의 백 퍼센트를 던져야 한다.
항상 모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고, 성심을 다해서 해야 한다.
그러한 자세가 우리가 쓰고자 하는 문학작품이나 편지를 위해서, 혹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깨달음은 설거지를 하거나 채소를 기르는 일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깊이 자각하고 집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곧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련이다.
한 편의 예술 작품은 바로 그러한 순간순간에서 착상된다.
악보나 시를 직접 종이에 쓰기 시작 할 때는 고작 아기를 분만하기 시작한 순간일 뿐이다.
그 아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의 몸속에서 분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기가 우리의 몸 안에 있지 않았다면, 결국엔 분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타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킬 만한 글을 쓰기 위한 우리의 통찰과 애정과 능력은 수련이라는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므로 그 꽃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한다. 아기를 임신한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생각할 때마다 더없이 행복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기는 어머니에게 지극한 기쁨을 준다.
아기가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며, 그래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한다.
사랑으로 먹고 사랑으로 마신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으면 아기가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매사를 조심한다. 자기가 실수를 하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많이 마시면, 아기에게 몹시 해롭다는 것을 어머니는 항상 잊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늘 사랑의 마음으로 산다. 수련자들도 그 어머니처럼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내놓고자 한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안에 한 명의 아기를 갖고 있다. 그 아기가 바로 부처다.
우리가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아기 부처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 부처를 잘 보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늘 자각 속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부처의 에너지가 우리로 하여금 참다운 사랑의 편지를 쓰게 해주고 타인과 화해에 이르게 해준다. 참다운 사랑의 편지는 통찰과 이해와 연민으로 쓰여진 편지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의 편지가 아니다. 참다운 사랑의 편지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세상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타인에게서 변화를 일으키려면 먼저 나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편지를 쓰는 데는 우리의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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