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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6일 Facebook 이야기

날마다좋은날 2011. 8. 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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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의 불교 이해-그 한계를 알아야 
      
    가끔 기독인 중에 불교를 공부하여 기독교-불교의 조화를 말씀하는 분들을 봅니다. 이런 시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분들의 불교 이해를 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내 종교는 내려 놓아야 합니다. 나의 종교적 관점을 유지한 채 다른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출발부터가 잘못됨을 알아야 합니다. 가령 불교인이 기독교를 알고자 할 때,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안 됩니다. 불교적 시각을 유지한 채 기독교를 보면 반드시 곡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불자들의 기독교 이해는 이런 불교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기에 그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교를 배제한 채 기독교를 보면, 불교와 기독교가 는 모르되, 같다라는 말은 도무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라, 기독교의 시각을 버리지 못한 채 불교를 공부하면 필히 오해를 하게 됩니다. 불교를 공부하려면 불교의 자리에서 불교를 공부해야지, 기독교를 갖고 기독교적 시각으로 불교를 알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시각으로 불교를 공부한 이상, 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쓰고 아무리 불자에 못지않은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그 불교를 결국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진화론에서 원숭이가 아무리 진화해도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원숭이와 인간이 진화 출발점부터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의 조상은 원숭이 종자였으며, 사람의 조상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원숭이는 아무리 진화해도 원숭이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도 그러합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닙니다(불이, 일원론).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신과 인간은 다른 존재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설정(이원론, 이분법)인데, 이 부분을 거론하는 불교 공부한 기독인은 제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모자란 탓이긴 하겠지만, 불교와 기독교는 하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이 부분은 도무지 언급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가? 이것은 전적으로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부분을 거론하는 순간 그 분들이 지탱해 온 기독교 교리는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결코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아닙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창조주와 피조물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바로 신이어야 하고 내가 바로 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는 기독인이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마저도 당신이 신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또 여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여러분이 그렇게 찾는 여호와 그 자체라고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피조물은 결코 창조주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중생이 바로 부처라고 말합니다. 이 엄청난 차이를 두고 어찌 기독교와 불교가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신학자들은 신의 무소부재를 말합니다. 신은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학이 기독교 초기부터 정립된 것은 아니라 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많은 교리 상의 논란이 있은 뒤에 내려진 결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해석을 해야 보다 보편적 진리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은 무소부재일지 모르나 우리는 신은 아닙니다. 내가 신성은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신이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 자체는 신이 아닌 것입니다. 신의 무소부재를 설하는 신학론의 이런 한계점을 잘 보아야 신학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또 많은 신학자들이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화론을 인정합니다. 아직도 개신교 쪽은 전반적으로 완강히 진화론을 거부하는 편이나, 가톨릭은 전 교황 바오로2세를 비롯해 천주교 전체의 분위기가 진화론을 인정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즉, 진화는 창조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이 말을 하며 그 분들은 굳이 중세의 아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의 주장에서 그 근거를 찾습니다. 즉, 이제와서 궁색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정말 우스운 것은, 21세기에 와서 그렇게 이야기할 바에야 왜 진화론이 대두될 때는 그렇게 흥분해서 반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일부 신학자들은 이라 하여, 신이 창조할 때 한꺼번에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특별히 창조했다고 주장했는데, 진화가 창조의 한 부분이라 한다면 그런 주장을 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요?  
    이렇듯 기독교리는 인류가 점점 개명함에 따라 슬며시(?) 그에 편승하여 교리를 변화에 맞춘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결코 변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기독교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공부하셨다는 적지 않은 기독인들은, 이렇듯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급이 없고 그저 당신들의 세계에서 불교를 말합니다. 기독교는 한사코 붙들고 있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한사코 언급을 회피하며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불교에서 가져와 자신의 신앙을 보완하며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불교를 이해하며 마치 불교를 말씀하면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정통 불자들보다 더 불교를 아는 것처럼 행세해서는 정말 아니 될 것입니다. 
      
    참된 진리는 내 종교마저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에 불교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보려면 불교라는 틀에 얽메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진리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 참된 진리의 세계는 부처도 불교도 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가르침마저 떠날 때, 참된 진리의 세계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밝은 가르침을 주시고서도 그 가르침마저 버려라!하는 말씀 앞에 저는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르침마저 버리기에 우리는 참으로 부처를 알고 불교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가 그렇게 할수 있을까요? 신마저 버려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신을버린다는 것은 기독교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기독 신앙에서는, 가르침마저 버리는 불교의 세계를 결코 이해할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번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우월하고 기독교가 열등하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 자리에는 너와 나의 구별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와 중생이 따로 놀고, 창조주와 피조물이 영원히 따로 존재하는 한, 그 가르침은 진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진리 자리에는 모두가 분리될수 없는 하나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창조주와 창조주 아닌 자를 따지고, 신이 저 멀리 따로 존재하는 가르침은, 감히 단언하건데, 결단코 올바른 진리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불교를 정말 이해하면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창조주와 피조물을 나누는 그런 세계에는 양심상 더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를 알고 기독교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고 말씀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저 분들이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앞서의 제 말씀을 바꿔 말하면, 라는 말이 됩니다. 흉내만 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정통 불자보다 더 불교를 잘 아는 듯이 말씀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기독교식으로 불교를 보며, 기독교에서 채울 수 없는 가르침의 갈증을 불교에서 해소하며 내 신앙의 보완 수단으로 불교를 공부하며 불교를 이해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의 불교 해석을 많은 불자들이 비판없이 받아들이기도 하십니다.  
      
     
    제가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직 호법의 차원에서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기독인들의 공부 한계를 분명히 알고 그 분들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인들의 기독교적 불교 해석을 불교의 본류로 안다거나, 나아가 그 분들을 무슨 대단한 선지식으로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밝은 안목으로 그 분들의 공부를 비춰보아, 잘한 부분은 격려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잡아드려야 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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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津野幸人)/성삼경 옮김 녹색평론사 2003

    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津野幸人)/성삼경 옮김 녹색평론사 2003

     

    자급적인 집약농업을 하는 농사꾼이 지구를 살린다

    최성일

     

    농촌과 지방도시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방의 많은 교사들이 근무지를 대도시로 옮기려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 문제에 나름대로 정통한 분에게는 학교 내적인 이유를, 지방에 거주하면서 주중 사흘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에게는 학교 외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골 학교에는 교사의 숫자가 적어 수업 이외의 잡무가 집중된다는 것이 학교 내적인 이유이고, 지방의 중소도시에조차 변변한 문화시설이 전무하다는 것이 학교 외적인 이유다.

    일본의 농학자 쓰노 유킨도의《소농(小農)-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녹색평론사)에서도 사람들이 농촌을 외면하는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쓰노는 농촌의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형식적인 경제문제에서만 찾지 말고 좀더 철저하게 파고 든다면 "반드시 산촌의 가난한 마음과 만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솔직히 말하면 긴 기간에 걸쳐 이웃집이 잘못되는 것을 기다리고 바라는 습성이, 약자를 돌보는 마음을 누르고 있다. 도시에서는 노인을 잘 돌보는, 마음이 우아하고 기특한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촌에서는 고독한 노인은 인간의 존엄을 벗어 팽개치고 행정의 시혜를 바라든가, 수치심을 견디며 이웃사람의 동정에 매달릴 뿐이다."

    농사일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쓰노이건만, 경제대국 일본의 변경지대에서는 정신의 궁핍함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탄식한다. 허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을 어찌 하랴! 또, 이러한 사정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강 건너 불 같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쓰노는《소농》을 통해 농사일과 농촌, 그리고 지구를 살리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소농의 관점에서 근대 농업에 맞서는 일이다. 여기서 소농은 "자급적 집약농업을 하는 농민"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토지에서 열심히 작물을 재배해서 얻어내는 적은 잉여생산이 자손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농사법을 자손 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다.

    쓰노는 "지금이야말로 정보화사회에서 소농의 바른 자리찾기를 모색해야 할 시기"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들이 토착 정주할 수 있게끔 하는 데 농업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산업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대형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중요시 여기는 '구조개선책'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쓰노는 낭만적인 농업 공동체 같은 것은 결코 꿈꾸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땅에 굳건한 뿌리를 두고 있다. 쓰노는 소농들이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형태로 '겸업농가'를 제안한다.

    "한 나라의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자고 결의했을 때 취해야 할 정책은 분명하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피하고, 인구를 적절하게 지방으로 분산시켜 지방,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공장, 학교, 병원의 배치를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겸업농가를 더욱 늘려야 한다. 자신이 먹을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해야 한다. 겸업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보화사회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농촌을 떠나려는 교사들을 겸업농가로 유도해 붙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필자의 순진한 발상일까? 농민조차 자식에게 농사일을 물려 주지 않겠다고 하는 농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농사일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첫째 이유는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농촌의 상대적 빈곤이다. 여기에다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농업을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마르크스는〈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의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농민들-재인용자)은 의회를 통해서건 집회를 통해서건 자기네 명의로 자기네 계급의 이익을 강력하게 추진시킬 능력이 없다. 이들은 자기네 스스로 대표자를 내세우지 못한다. 누군가가 이들의 대표자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에릭 울프의《농민》(청년사, 1978)에서 재인용)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경사회를 '아시아적 정체(停滯) 사회'로 규정하고 낮춰 보았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진보'로 간주했다. 하지만 쓰노는 "정체를 뒤집어서 말하면 안정"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는 농업을 공업의 하위에 놓는 낡은 근대화 이념에서 탈피해 "농업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생업형태라는 인식"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소농에 의한 조직구축은 근대국가의 조직과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다."

    잘 다듬어진 밭이랑, 가지런한 작물의 생육상태, 도랑치기를 깨끗이 한 수로 같은 인위적인 농업경관에서 어째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에 대한 쓰노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농업경관의 근본은 도시의 경관과 궤를 같이 하는 '인공'이며, 인공질서의 확인과 전망이 아름다움으로 의식되고, 질서의 혼란이 추함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농업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인위적인 힘은 농약과 비료의 과다한 사용이나 유전자조작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꾼의 굵은 땀방울이 농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문득 소농의 중요성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5백년 동안 나라를 지탱한 것은, 명목상이나마, 농사일을 이 세상의 으뜸되는 근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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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일

    출판평론가.

    《우리 아이들》 2004년 1-2월호 '교사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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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津野幸人)/성삼경 옮김 녹색평론사 2003 
      
    자급적인 집약농업을 하는 농사꾼이 지구를 살린다 
    최성일 
      
    농촌과 지방도시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방의 많은 교사들이 근무지를 대도시로 옮기려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 문제에 나름대로 정통한 분에게는 학교 내적인 이유를, 지방에 거주하면서 주중 사흘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에게는 학교 외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골 학교에는 교사의 숫자가 적어 수업 이외의 잡무가 집중된다는 것이 학교 내적인 이유이고, 지방의 중소도시에조차 변변한 문화시설이 전무하다는 것이 학교 외적인 이유다. 
    일본의 농학자 쓰노 유킨도의《소농(小農)-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녹색평론사)에서도 사람들이 농촌을 외면하는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쓰노는 농촌의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형식적인 경제문제에서만 찾지 말고 좀더 철저하게 파고 든다면 "반드시 산촌의 가난한 마음과 만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솔직히 말하면 긴 기간에 걸쳐 이웃집이 잘못되는 것을 기다리고 바라는 습성이, 약자를 돌보는 마음을 누르고 있다. 도시에서는 노인을 잘 돌보는, 마음이 우아하고 기특한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촌에서는 고독한 노인은 인간의 존엄을 벗어 팽개치고 행정의 시혜를 바라든가, 수치심을 견디며 이웃사람의 동정에 매달릴 뿐이다." 
    농사일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쓰노이건만, 경제대국 일본의 변경지대에서는 정신의 궁핍함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탄식한다. 허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을 어찌 하랴! 또, 이러한 사정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강 건너 불 같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쓰노는《소농》을 통해 농사일과 농촌, 그리고 지구를 살리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소농의 관점에서 근대 농업에 맞서는 일이다. 여기서 소농은 "자급적 집약농업을 하는 농민"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토지에서 열심히 작물을 재배해서 얻어내는 적은 잉여생산이 자손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농사법을 자손 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다. 
    쓰노는 "지금이야말로 정보화사회에서 소농의 바른 자리찾기를 모색해야 할 시기"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들이 토착 정주할 수 있게끔 하는 데 농업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산업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대형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중요시 여기는 '구조개선책'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쓰노는 낭만적인 농업 공동체 같은 것은 결코 꿈꾸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땅에 굳건한 뿌리를 두고 있다. 쓰노는 소농들이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형태로 '겸업농가'를 제안한다. 
    "한 나라의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자고 결의했을 때 취해야 할 정책은 분명하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피하고, 인구를 적절하게 지방으로 분산시켜 지방,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공장, 학교, 병원의 배치를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겸업농가를 더욱 늘려야 한다. 자신이 먹을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해야 한다. 겸업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보화사회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농촌을 떠나려는 교사들을 겸업농가로 유도해 붙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필자의 순진한 발상일까? 농민조차 자식에게 농사일을 물려 주지 않겠다고 하는 농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농사일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첫째 이유는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농촌의 상대적 빈곤이다. 여기에다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농업을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마르크스는〈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의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농민들-재인용자)은 의회를 통해서건 집회를 통해서건 자기네 명의로 자기네 계급의 이익을 강력하게 추진시킬 능력이 없다. 이들은 자기네 스스로 대표자를 내세우지 못한다. 누군가가 이들의 대표자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에릭 울프의《농민》(청년사, 1978)에서 재인용)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경사회를 '아시아적 정체(停滯) 사회'로 규정하고 낮춰 보았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진보'로 간주했다. 하지만 쓰노는 "정체를 뒤집어서 말하면 안정"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는 농업을 공업의 하위에 놓는 낡은 근대화 이념에서 탈피해 "농업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생업형태라는 인식"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소농에 의한 조직구축은 근대국가의 조직과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다." 
    잘 다듬어진 밭이랑, 가지런한 작물의 생육상태, 도랑치기를 깨끗이 한 수로 같은 인위적인 농업경관에서 어째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에 대한 쓰노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농업경관의 근본은 도시의 경관과 궤를 같이 하는 '인공'이며, 인공질서의 확인과 전망이 아름다움으로 의식되고, 질서의 혼란이 추함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농업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인위적인 힘은 농약과 비료의 과다한 사용이나 유전자조작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꾼의 굵은 땀방울이 농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문득 소농의 중요성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5백년 동안 나라를 지탱한 것은, 명목상이나마, 농사일을 이 세상의 으뜸되는 근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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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일 
    출판평론가. 
    《우리 아이들》 2004년 1-2월호 '교사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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