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정치가는 농사꾼에게 배워야’

날마다좋은날 2011. 7. 17. 00:28

‘정치가는 농사꾼에게 배워야’
금 장 태(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공자가 태산을 지나다가 무덤가에서 서럽게 통곡하고 있는 어느 아낙네를 만나 그 사연을 물었던 일이 있다. 그 아낙네는 깊은 산 속에 살다가 시아버지가 범에게 물려죽었고, 다음에 남편이 또 범에게 물려죽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범에게 물려죽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그런데도 왜 이 산을 떠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 아낙네의 대답은 간단했다. 산 속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 공자는 새삼스럽게 깨닫고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苛政猛於虎)라고 탄식하였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네 삶

그런데 오늘날에는 과연 깊은 산 속에 숨어 산다고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아가며 그 물을 벗어나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라는 큰 물 속에 살아가며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정치가들이야 정치에 희망을 품고 신명이 나서 활기차게 그 물 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 가운데는 정치현실에 절망하여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물과 물고기의 비유를 계속하면, 바다에 사는 물고기야 이상난동으로 바닷물의 수온이 올라가 살기가 괴로우면 다른 해역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한때 우리 국민들도 해외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생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호수에 사는 물고기는 그 물이 오염되어 혼탁하고 썩어 들어가도 숨이 붙어있는 한 그 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견디다 못하면 떼죽음을 당해 물에 떠오르기도 한다. 현재 북녘의 우리 동포들은 대부분 심하게 혼탁한 물속에 갇혀 허덕이고 살아가는 호수의 물고기 처지인 것 같아 안타깝다.

옛 사람들도 정치에 관심이 매우 깊어 끊임없이 묻고 대답을 찾았다. 공자도 평생 정치를 해볼 기회를 엿보면서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녔으며, 제후들이나 제자들로부터 정치에 대해 무수히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정치’를 묻는 동일한 질문을 받고도 공자의 대답은 그 사람의 체질에 맞추어 약을 처방하듯이 묻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대답을 달리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은 “정치란 바로잡음이다(政者, 正也)”라는 말이다. 한문 글자로는 정치의 ‘정’(政)자 속에는 바로잡음의 ‘정’(正)자가 들어 있으며, 두 글자가 발음도 같으니, 단순한 글자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자풀이에는 정곡을 찔러 본질적 의미를 각성시켜주는 날카로운 통찰이 드러난다.

정치지도자가 자신을 바로잡으면 모든 행정이 바로잡아질 수 있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원론적 선언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절실한 문제의 근원을 짚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지도자로서 독선과 자만과 사욕에 빠지지 않은 인물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역사를 돌아보고 현실을 둘러봐도 결코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 같다. 지도자가 포용력과 겸허함과 공정함으로 자신을 바로잡았다면 그 시대의 정치가 결코 그처럼 혼탁하고 분열되어 어지럽지는 않았을 것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바로잡음’이 정치의 근본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치를 ‘바로잡음’이라는 한마디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동양고전에서 정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비유로 언급한 경우가 많다. 이 비유들을 보면 정치의 방법과 원칙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궁리하고 잊지 말고 보살피기를 쉬지 않는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 삶는 것과 같다”(治大國, 若烹小鮮)고 하였다. 작은 생선을 끓일 때에는 생선의 형태가 부서지지 않도록 자주 뒤적이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자주 법을 바꾸고 정치적 조작을 하려들면 나라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정치에서 큰 방향을 확고하게 세우지 못한채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려고 온갖 문제로 끝없이 뒤집고 조작하려들면 그 정치가 바로 잡힐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노자는 정치의 기본원칙을 제시해준 것이다. 이에 비해 춘추시대 정(鄭)나라 대부인 자산(子産)은 정치인의 자세를 비유로 설명하여, “정치란 농사짓는 것과 같다(政如農功)”고 말한 일이 있다. 농사꾼은 밤낮으로 자기 논밭에서 농사짓는 일을 생각한다. 언제 어느 땅에 무슨 씨를 뿌려야 할지 어떤 좋은 품질로 얼마나 많이 수확하게 될지 골똘히 궁리하여 계획하고, 그 계획을 처음 씨 뿌릴 때부터 수확이 끝날 때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자기 논둑과 밭둑 안의 곡식과 채소 한포기 한포기를 골고루 보살피면서 김매고 물대고 거름주기를 쉬지 않는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제각기 거창한 포부와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고 목이 쉬도록 외친다.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 나면 과연 그 공약의 씨앗을 뿌리기나 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물며 그 논밭에서 물대고 김매는 고된 노동의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 가서 이권을 챙기느라 바쁘니, 그 논밭에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지 돌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나서 과연 임기를 마치는 가을에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의 결실을 제대로 추수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정치인들이 소박하고 정직한 농사꾼의 삶에서 분명 배워야 할 점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