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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과 커뮤니티는 쿠바의 원동력

날마다좋은날 2009. 5. 22. 13:34

유기농업과 커뮤니티는 쿠바의 원동력

상향식 참여운동으로 식량자급 달성·지역변혁 모임 활성화

쿠바는 유기농업으로 식량자급에 성공했다.

안철환〈전국 귀농운동본부도시농업위원회 위원·안산 바람들이농장 대표〉

전적으로 체제 유지를 소련에 의지했던 쿠바는 갑작스럽게 소련이 붕괴하자 덩달아 체제 위기에 맞닥뜨려야 했다. 더구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은 기존의 봉쇄정책의 강도를 더욱 더 높여 쿠바의 숨통을 죄어들어갔다. 그런데 쿠바의 대응은 예상 외로 너무 당당했다. 예컨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한 평생 무료 의료 복지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과감히 국방비 예산을 줄이고 의료복지 예산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를 피해 달아나는 보트피플도 전혀 막지 않았다. 의약품과 최소한의 식량 원조조차 막고 있는 미국의 비인간적인 봉쇄에도 쿠바는 관타나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를 그대로 놔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초유의 허리케인까지 불어와 남은 목숨마저 끊어버릴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이라면 분명 비상계엄령을 내리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쿠바는 오히려 권력을 분산시키고 시민운동과 커뮤니티 조직들을 육성하는 데 주력했다. 위기를 하향식 권위체제 강화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향식 참여운동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것이 관행농업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유기농업으로 식량을 자급하고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던 쿠바의 해법이며 원동력이었다.

쿠바의 시민운동은 권력의 분산화 과정에서 크게 성장했다. 쿠바의 시민운동 단체들은 초기에 정부의 지원에 크게 힘입어 ‘비정부기구(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가 아니라 ‘비영리단체·NPO(Non Profit Organiation)’라고 불렸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NPO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1989년부터 1993년에 걸쳐 급속히 증가해 1995년에는 2200개에 이르렀는데, 스포츠 392개, 과학기술 158개, 우호연대 143개, 문화 46개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풀뿌리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커뮤니티의 역할 또한 두드러졌다. 위기 후에도 최고 선진의료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커뮤니티에 있었다. 가족주치의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는 쿠바는 의사가 환자의 병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의 근본인 생활의 문제를 꼼꼼히 살핀다.지역 차원에서 지역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지역문제를 지역사람들의 참여로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커뮤니티식 해결책은 마을 만들기에서도 주효한 방법이 되고 있다. 마을의 주택을 생태적인 방법으로 개선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는 에어컨 같은 전기 제품은 쓰지 않고, 콘크리트 건물을 초가지붕의 전통주택으로 바꾼다든가 하는 작업을 ‘지역 변혁을 위한 토론모임’ 같은 커뮤니티 조직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실험은 유기농업으로 식량자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결과에 불과하다. 근본에는 권력의 분산과 NPO를 비롯한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있었다. 분산된 권력이 시장주의에 자유롭지 못하고, 자발적 시민운동과 커뮤니티, 즉 공동체운동에 의해 떠받쳐지지 않으면 하나의 억압이 여러 억압으로 나눠진 것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