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스크랩] 한국 주당들 사케에 취하다

날마다좋은날 2008. 11. 24. 17:57
[트렌드] 한국 주당들 사케에 취하다
올 상반기 752t 수입, 작년보다 46% 증가
와인 못잖은 열풍, 사케 제대로 즐기는 법
‘사케’로 불리는 일본 청주가 무서운 속도로 한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9월 17일 현재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사케는 모두 752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6%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국내에서 와인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에 비해 사케는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를 비롯해 사케 전문점이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한때 와인 성분을 첨가한 화장품이 나왔듯 최근에는 정제된 사케를 첨가한 화장품이 나오고 있고, 와인을 추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와인 소믈리에에 해당하는 ‘사케 소믈리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한국 술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사케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어떤 술인가

쌀 누룩으로 빚은 일본 청주… 정종은 브랜드의 하나
사케용 쌀은 따로 재배… 日 주조회사만 2000곳 넘어

▲ 한·일 양국에서 최고의 사케로 불리는 고시노 간빠이 벳센.
일본에서 사케는 술을 총칭하는 포괄적인 말이다. 옛날 일본에는 술이라고는 청주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청주가 곧 사케가 되었다. 사케는 현재 일본에서 맥주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음용(飮用)되고 있으며 일본의 국주(國酒)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가장 넓게 보급된 아시아권의 술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사케는 정종(正宗)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정종은 사케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부산에 최초로 청주 공장을 세웠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주 브랜드가 정종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종이 사케와 동의어로 여겨져 온 것이다.

그렇다면 청주는 무엇일까? 보통 쌀·누룩·물을 원료로 하여 빚어서 걸러낸 맑은 술을 청주라 부른다. 청주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 존재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청주는 다르다. 술을 만들기 위한 쌀을 따로 재배해 만드는 일본식 청주는 한국식 청주처럼 밀로 만든 누룩이 아닌 쌀로 만든 누룩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일본식 청주 사케는 전분 함량이 많고 입자가 큰 품종의 쌀을 깎고 또 깎아 만든다. 가능한 한 순수한 전분질만을 남겨 술을 빚기 위해서다. 일본에서는 한국 청주와 달리 사케를 만들기 위한 쌀을 따로 재배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제조되는 사케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구쿠리히메(菊理媛)’라는 사케는 한 병당 소비자가격이 8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일본에는 현재 2000여개의 주조회사가 저마다 특색있는 사케를 만들어내고 있다. 효고현과 교토, 오사카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사케 산지 중 유명한 곳은 홋카이도와 히로시마. 그러나 단연 돋보이는 사케는 니가타산 사케이다. 한국인에게는 북송선 출발 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니가타는 일본 최대 곡창지대로 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니가타산 고급 사케를 골라 실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도 있다.

▲ 서울 강남의 한 일본식 선술집. 월요일 저녁인데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왜 인기인가

맥주보다 강하고 소주보다 부드러운 적당한 도수
깔끔한 술자리 원하는 신세대 여성 사로잡아

사케만의 매력 중 하나는 적당한 도수. 사케의 도수는 일반적으로 맥주보다 높지만 소주보다는 낮다. 사케의 도수는 자칫하면 밋밋할 수 있는 맥주보다 강하지만 뒤탈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주에 비해 부드러운 편이다. 바로 그 점이 애주가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케 소비의 주도층으로 부상한 여성들은 폭음을 자제하고 분위기와 개성을 중시하는 음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사케의 도수는 안성맞춤. 요즘 사케를 즐겨먹는다는 김진영(25·회사원·서울)씨는 “소주를 마시면 다음날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며 “사케는 소주에 비해 부담이 덜해 요즘은 소주보다는 사케를 자주 마시는 편”이라고 했다. 일반 ‘오뎅바’에서 파는 사케의 가격은 한 잔에 5000~6000원 선으로 부담이 없다. 게다가 맛이 부드럽고 깔끔해서 신세대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사케가 하나의 문화 아이템이 된 것도 늘어나고 있는 사케의 인기에 한몫 한다. 문화 아이템으로의 변신은 사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케 매니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은 사케를 술뿐 아니라 문화 상품으로 소비한다. 일본 전통주 수입업체 니혼슈 코리아의 관계자는 “보통 정종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제사 술이어서 예전에는 사케가 젊은층의 외면을 받았었다”며 “술 먹는 분위기와 깔끔한 맛을 원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일류(日流)가 유행하면서 사케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사케의 종류

쌀 품질과 깎아낸(정미) 정도에 따라 등급 결정
50% 이상 깎은 ‘다이긴조’ 최고, 다음은 40% 깎은 긴조

좋은 술은 좋은 원료에서 나온다. 좋은 쌀을 써야 좋은 사케가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술의 재료로 쓰이는 쌀을 얼마나 정미(쌀을 깎아내는 것)하느냐 여부도 사케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쌀의 표층부나 배아에는 회분이나 비타민류, 단백질, 지방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들은 누룩곰팡이나 효모의 증식, 발효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너무 많은 영양분은 오히려 효모나 효소의 활동을 활성화시켜 술의 맛을 저하시킨다. 결국 주조에 불필요한 성분이 적을수록 사케의 향과 맛이 좋아진다는 사실. 이게 바로 아까운 쌀을 깎고 또 깎아 사케를 만드는 이유이다.

쌀의 정미도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는 사케인  ‘다이긴조(大吟釀)’는 50% 이상 깎은 쌀로 만든 것이다. 절반 가까운 쌀을 깎아낸다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높은 품질의 사케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다이긴조 바로 아래 등급은 40% 이상 깎아낸 쌀로 만드는 ‘긴조(吟釀)’. 쌀을 절반 가까이 깎아 만든 다이긴조와 긴조에서는 특유의 과일 향과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긴조의 뒤를 잇는 것은 ‘혼조조(本釀造)’다. 혼조조는 긴조보다 쌀을 덜 깎아낸 만큼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맛 자체가 강하고 입에 닿는 느낌에 힘이 있어 애주가들에게 반주로 인기가 많다.

다이긴조, 긴조, 혼조조 모두 쌀과 누룩에 양조 알코올이 첨가되어 제조되기 때문에 양조 알코올 없이 순수쌀로 빚은 사케를 뜻하는 ‘준마이슈(純米酒)’와는 구분된다. 그렇다면 지난 7월 일본 도야코에서 열렸던 G-8 정상회담에서 각국의 정상들이 건배주로 마신 영광의 사케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양조 알코올 없이 50% 이상 깎은 쌀과 누룩으로 빚은 준마이 다이긴조였다. 준마이 다이긴조는 사케 중 최고봉으로 불린다.

제대로 마시려면

무조건 데워 마시는 것은 잘못… 고급주는 차갑게
매운 안주는 NO! 튀김·회·국물 종류와 잘 어울려

일본 술 하면 흔히 따뜻한 술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케를 데워 마시는 것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 일반주(보통주)는 데워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술을 적당한 용기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30~45초 정도 데우면 일반주 특유의 느낌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데우는 것은 금물. 사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이 날아가 버린다.

준마이급 이상의 고급주는 그 반대다. 양질의 쌀을 깎고 또 깎아 만든 고급주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향미가 따뜻하게 데우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고급주는 특유의 향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차갑게 즐겨야 제 맛이다. 따뜻하게 먹는 것은 고급주에 대한 예의가 아닌 셈이다. 사케는 포도주처럼 입안에 들어가 특유의 향취를 발산한다. 마시기 전 코로 향을 느끼고 입안 전체로 한번 굴려 목구멍으로 뒷맛을 느껴야 사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맛의 경중이 있는 사케는 어떻게 음미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등급에 맞는 온도를 만드는 것이 사케를 맛있게 먹기 위한 첫 번째 비법이라면 두 번째 비법은 바로 사케와 맞는 안주에 있다. 사케와 맞는 안주에도 나름대로 공식이 있다. 일단 사케가 일본술이다 보니 아무래도 일본 안주가 사케에는 제격이다.

향이 좋은 사케는 무침 안주나 튀김 안주에 먹는 것이 좋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사케는 회나 스시에 먹어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 안주보다는 간장에 찍어먹는 튀김이나 회가 사케에는 잘 어울린다. 매운 안주와 함께 사케를 마실 경우 혀의 감각을 무디게 해 사케 특유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묵을 이용한 국물류 안주와 해물을 이용한 철판 요리도 사케와 어울리는 안주다. 사케의 최고봉인 준마이 다이긴조의 깊고 진한 맛에 어울리는 영광의 주인공은 복어회나 성게알이 꼽힌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케 브랜드는 무엇일까? 170년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니가타의 구보타(久保田) 브랜드가 주인공이다. 구보타 브랜드 중에서도 아사히 주조(酒造)에서 만드는 구보타 만주(萬壽)는 애주가들에게 최고로 꼽힌다. 등급은 준마이 다이긴조. 한국에서도 한정 생산, 한정 판매로 인해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래도 고가의 구보타 만주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구보타 센주(千壽)를 찾는다. 구보타 센주는 국내 지명도 1위의 상품이다. 등급은 혼조조로 고급스럽고 온화한 향기를 지녀 애주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차게 먹든 따뜻하게 먹든 질리지 않는 편안한 맛을 자랑한다.

구보타 센주가 국내 지명도 1위의 상품이라면 핫카이주조(酒造)에서 만드는 사케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지명도를 자랑한다. 일본에서 인정받은 핫카이산(八海山)의 맛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그중에서도 핫카이산 혼조조는 긴조급의 정미율로 다이긴조 기법을 이용하여 만들며 긴 시간 발효를 통해 담려(淡麗)하고 부드러운 맛을 갖는다. 긴조급의 사케 못지않은 고급스러움이 매력으로 꼽힌다.

▲ 한국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니가타산 ‘구보타 센주’. / 풍부한 긴조의 향이 일품인 ‘핫카이산 준마이 긴조’. /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조젠미즈노고토시 다이긴조’.
유독 여성의 사랑을 받는 사케도 있다. 1968년 노벨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의 에치고 지방에 위치한 시라타키 주조(酒造). 그 곳에서 만든 ‘조젠미즈노고토시 다이긴조’는 깨끗한 물로 유명한 에치고 지방에서 만들어진 사케답게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은은한 과일향이 더해져 일본 여성은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효고현의 오제키주조(酒造)에서 만드는 아마구치 오제키는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보통주 중 하나. 약간 단맛이 매력으로 꼽힌다. 각종 안주와 잘 어울리며 차갑게 먹든 따뜻하게 먹든 특유의 향을 즐길 수 있다.


| 라벨에 있는 주도와 산도 |

주도는 숫자 높을수록, 산도는 낮을수록 단맛 강해

쌀을 당화(糖化)하여 만든 술이 사케. 그러다보니 사케는 단맛을 띠게 되는데 이것은 다시 단맛(아마구치·甘口)과 달지 않은 맛(가라구치·辛口)으로 나뉜다. 사케를 담고 있는 병 뒤에 달린 라벨을 보면 먹어보지 않아도 술의 맛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혹은 -부호와 함께 적혀있는 숫자가 클수록 입에 닿는 맛이 부드럽고 달다. 즉 주도가 -3인 사케보다  +1인 사케가 더 부드럽고 단맛을 갖는 것. 반대로 숫자가 작으면 술의 맛이 담담하고 쓰다. 이것이 바로 술의 비중을 보여주는 ‘주도’라는 단위다. 섭씨 4도 물의 비중을 0으로 해 어떤 술의 비중이 물보다 가벼우면 플러스(+)로, 무거우면 마이너스(-)로 표시한다.

사케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주도뿐만이 아니다. 산도라는 것도 있다. 산도는 (+)와 (-) 없이 숫자로만 표시하며 숫자가 클수록 산도가 크다. 산도를 통해 사케의 ‘드라이함’을 알 수 있다. 산도는 사케에 함유된 호박산과 사과산, 유산 등의 양을 나타내는 표시로 산도가 높으면 술맛이 드라이하고 산도가 낮으면 달다. 그러나 복잡미묘한 사케의 맛을 주도와 산도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와인은 자연이 만들고 사케는 사람이 만든다”는 말이 있듯 사케는 만드는 사람의 주조 과정을 통해 하나의 작품과도 같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도와 산도는 사케의 분위기 정도를 파악하는 데 쓰인다고 보면 된다.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소재웅 인턴기자·고려대 언론학부 3년

주간조선 /  [2027호] 2008.10.27

출처 : 메아리의 블로그
글쓴이 : 메아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