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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업선진화, 왜 문제인가?

날마다좋은날 2009. 6. 22. 08:12

농어업선진화, 왜 문제인가?

 


GSnJ 연구위원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우리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화시키는 훌륭한 목적으로 설립된 농어업선진화위원회가 출범 2개월 만에 역풍을 맞아 흔들리고 있다. 쌀 조기 관세화를 위한 공청회는 농업인단체의 반대로 무산되고, 보조금 개편작업도 제동이 걸렸다. 위원회의 성격과 권한, 유사한 다른 위원회와의 역할분담 등 형식적인 문제도 있겠으나, 선진화위원회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농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사안들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사전에 정해진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불만이 증폭된 것이다.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는 농식품부의 최근 농정개혁 방향이 매우 편향적이고 무원칙하다는 우려가 높다. 한국농업정책학회는 최근 정책세미나를 통해 현 정부의 농정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농어촌선진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핵심 방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농화와 산업자본의 유입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러나 벤처농업과 기업농을 농정의 주대상으로 도시자본과 산업자본을 끌어들여 농업을 선진화한다는 생각은 그것이 설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더라도 농업과 농촌의 기반을 위협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쌀의 관세화 유예와 ‘그린박스’로 분류된 농업보조금을 허용한 것은 농업이 생산하는 다원적 기능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농업이 다원적 기능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보호와 특별한 대우를 받을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 내에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농가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농이나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대규모 농어업회사에 보조를 주어 육성하는 농업정책은 농업의 본질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농업과 서로 상생하지 못했다. 대규모 농장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소농 경영체도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해야 하는 화폐경제에 편입되면서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생산성이 낮은 소규모 가족농들은 농업자본가에게 땅을 팔고 농업노동자로 전락했다. 농업임금은 생계비를 충당하지 못했고, 굶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시작됐다. 농업은 효율성을 근거로 재편됐고 경영수익이 최고의 가치가 됐다. 시장경제는 농장의 규모화를 촉진하고, 대규모 농장과 자기 땅에서 쫓겨난 농업인들이 차례로 열대우림을 황폐화시키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시켰다. 생산비를 낮추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공장식 축산은 광우병이라는 전대미문의 질병을 가져왔다.

 

농업의 기억 속에 자본은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지 못하다. 과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오늘날의 유통자본도 모두 농업의 바탕 위에서 성장했으나 농업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농업의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농업이 비농업자본의 유입을 경계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국가가 농업을 보호하는 근거가 된다. 농촌을 유지하고 농가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이런 농업의 역할을 보호하는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수익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농과 양립하기 어렵다. 대규모 농업회사에 투자한 도시자본이 다원적 기능을 중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농정은 산업정책으로서의 농업정책보다 농촌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농업정책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선도 기업농이 아니라 무한경쟁에 노출된 취약한 가족농을 주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 농업과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의 바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