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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불3대(富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

날마다좋은날 2009. 6. 7. 19:51

부불3대(富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       
이란 말이 있듯이, 부와 권력은 고금을 통해서  
오래도록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아주 가끔 내가 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목표에 미달 되었을 때, 또는 남과 비교하여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내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詩)를 떠 올린다. 

글귀 하나하나 상세히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 좋으면 되었지 정자(亭子)까지 좋을 수야 있나?" 

하며 위안을 삼는 글이다. 

독소(獨笑, 홀로 웃다 ) --- 정약용(丁若鏞) 

有粟無人食 --- 유율무인식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창愚 --- 달관필창우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창(春-日+臼+心)
才者無所施 --- 재자무소시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家室少完福 --- 가실소완복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릉지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 옹색자매탕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郎必癡 --- 부혜랑필치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月滿頻値雲 --- 월만빈치운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 물물진여차세상 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 독소무인지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하는가?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특권계층의 사회적 책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집안이 경주 최 부자다. 
경주 최 부자 집안에 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인상적인 그 집안의 가훈(家訓)이었다.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이 그것이다

'육훈(六訓)'은 

-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마라,      
- 과객(過客)은 후히 대접하라,                            
- 며느리들은 사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육연'은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자처초연:自處超然),   
-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대인애연:對人靄然),              
-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유사감연:有事敢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다. 

" 경주 최 부잣집"하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대로 경주 교동에 소재해 있는 "교촌댁"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 부잣집의 집안 내력을 사전에 인지하게 되면,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위치한 "충의당(忠義堂)"을 먼저 찾아가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경주 최 부자는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 말이다.
엄청난 재산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경주 최 부자의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마지막 최부자  최준의 11대조인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다.
경주 최씨 사성공파의 한 갈래인 가암파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왜적과 싸우고, 
나중에 무과에 급제한 뒤 정유재란 때 다시 참전했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전선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순국하니,
그의 나이 예순 아홉이었다. 
평소의 생활도 청렴하였던 최진립은  
이렇듯 일생을 장렬하게 마쳤다.

월요일아침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글
새겨 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맞이하소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귀족의 역사가 긴 유럽 사회에서 유래되었으며 오늘날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귀족 가문의 가훈(家訓)인 셈이지요.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터에 압장서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귀족 사회의 전통적 모럴(morale)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영국의 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가운데 무려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시 위험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 부자들의 자선 기부문화도 이런 전통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귀족사회를 지키려는 일종의 자구책일 수도 있지만 도덕적 의무를 다하려는 지도층의 솔선수범 자세는 국민정신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1950년 6ㆍ25전쟁 때 우리사회에는‘빽’이라는 말이 꽤나 유행했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가난한 집 아들들이 총탄을 맞으면‘빽!’하고 쓰러진다는 서글픈 얘기가 서민들 사이에 크게 회자됐던 적이 있었습니다다.

그 때 있는 집 자식들은 군대를 면하고 없는 집 자식들은 전선에 나가 총알받이가 된다고 해서 유행됐던 말이었습니다. '빽’이란 다름아닌 '백 그라운드’(Back Ground), 즉 ‘배경’을 가리키는 말로 뒤에서 돌보아 주는 배경이 없어 전쟁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사회지도층이 먼저 나서서 국민앞에 서는 전통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가리키는‘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바로 지도층들의 사회적 책임과 국가에 대한 봉사를 영예로 여기는 불문율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상 서구의 여러 나라가 문화의 꽃을 피우고 우뚝 선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사회지도층의 국가에 대한 헌신이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 대한민국의 지식인 지도자 기득권의 특권주의는 오래 전부터 뿌리를 박아 순박한 국민의 혈을 앗아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리 잡지 못 할 것이다,  그 시작의 선봉은  우리 세계일보 상주 조사위원의 몫이라 생각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