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또한 멀지 않다고 하더니,
이제 겨울의 자리에 봄이 움트려고 한다
지난밤에도 바람기 없이 비가 내렸다
겨우내 까칠까칠 메마른 바람만 불다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면
내 속들도 촉촉히 젖어드는 것 같다
중략........
오늘 아침 어제까지 받은 편지들을
부엌에 들어가 죄다 태웠다
입춘도 지났으니 편지를 담아 두었던
광주리도 텅 비워 두고 싶어서였다
굴뚝에서 편지 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면서
저것은 "말의 연기"로구나
아궁이에서는 또 말의 재가 사그러들고 있었다
사람의 말이란 결국 이런 연기와 재로
사라지는가, 싶으니....
말 한 마디,글 한 줄 쓰는 일이
새삼스레 허무한 짖거리로 느껴졌다
p17~23
새봄이 온다고 해서
기대나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위대신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과
메마른 했살과 부드러운 바람과
메마른 대지에 연한 빛깔과
촉촉한 물기가 밸 것이므로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겨울의 움추렸던 칩거에서 벗어나
훨훨 떨치고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기대를 갖고 싶은 것이다
중략........
꽃은 무슨 이유로 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생명의 신비 앞에 부질없는 생각일랑 접어둘 일이다
수억만 년을 두고 철따라 어김없이 피고지는
꽃을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가 사는 인생도 이런 꽃의 생태와
다를 게 무엇인가 싶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비슷비슷한 반복이요 되풀이다
굳이 종교적인 이유를 붙이자면
그 반복과 되풀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