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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은 제도의 산물

날마다좋은날 2009. 5. 7. 11:24

낙농은 제도의 산물

 


GSnJ 이사 조석진(영남대 식품산업경영학과 교수)

 

 

 낙농진흥회가 출범한 지 3년 째 되던 2002년 7월 분유재고가 1만 9천 톤을 상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낙농진흥회는 효율적인 원유수급조절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필자는 2명의 공동연구자와 함께 연구에 참여하여 『중장기 원유수급조절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고서의 결론은 낙농선진국의 경험 및 국내 여건을 감안할 때 시장원리를 제한하는 생산할당(쿼터)제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2002년 11월 재고압박을 견디다 못한 낙농진흥회는 마침내 「잉여원유차등가격제」의 도입을 발표했고, 쿼터에 해당하는 농가별 기준원유량을 통보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서울우유를 포함한 가공조합들이 낙농진흥회를 탈퇴하였다. 그러나 1997년 낙진법 개정과정에서 계획생산에 대한 참여를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으로 처리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즉 낙농가는 생산제한을, 유업체는 특약관계를 통해 조성된 '문전옥답'의 포기를 각각 수용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1999년에 출범한 낙농진흥회는 이른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원유의 수급 및 가격안정'이라는 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1995년에 이미 WTO체제가 출범했고, 위장유제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제품의 수입자유화가 단행되었다. 그뿐 아니라 우유소비가 점차 시유 중심에서 치즈 등 고급유제품으로 이행함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유제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정된 낙진법은 이 같은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구조적인 수급불균형과 그로 인한 시장의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필자는 낙농제도의 역사는 '원유의 수급균형', '대등한 거래교섭력' 및 '농가간 가격차의 해소'라는 세 가지 목표의 실현을 위한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낙농은 제도의 산물"이란 표현을 자주 써왔다. 즉 쿼터를 근간으로 하는 낙농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는 비교적 안정된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하더라도 쿼터제가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쿼터제로 인한 자유시장원리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예외적으로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제외하면 연방우유유통명령(FMMO)을 통해 자유로운 생산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제도가 지역간 가격차를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납세자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쿼터제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필자는 2002년 이후 낙농제도개선을 위한 논의에 여러 차례 참석해 왔다. 그 때마다 생산자와 유업체간에 높은 불신의 벽이 존재함을 실감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농림부가 '낙농발전종합대책(안)'을 발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후 2007년 7월 낙농문제해결을 위해 농림부장관이 직접 회의를 주제한 적이 있었다. 첫 회의를 주제한 고 박홍수 농림부장관은 이해 당사자 간의 의견차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차관이 주제한 두 번째 회의 역시 별 성과가 없었다. 당시 두 차례 회의에 모두 참석했던 필자는 두 번째 회의에서“이해 당사자인 유업체와 낙농가 모두가 단일쿼터제의 필요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제도개선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부서인 농림부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방치해 온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직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제도개선 문제는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미 타결된 한·미 FTA을 시작으로 한·EU, 한·오세아니아, 한·캐나다 FTA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원유무역이 가능한 한·중·일 FTA까지 타결될 경우 원유수급을 둘러싼 낙농가와 유업체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이전에 제도개선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원유시장이 3분된 현 상황에서 생산자의 의견수렴이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책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생산자와 유업체도 더 이상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제도개선을 위해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또한 현재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유가체계문제도 제도개선의 틀 속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우유는 이미 국민식생활의 필수식품으로 정착한지 오래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식량안보차원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안정된 생산기반유지가 불가피하다. 그 같은 의미에서 조속한 제도개선을 통해 낙농진흥회가 낙농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