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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스피치-이코노미스트]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감 스피치

날마다좋은날 2009. 4. 15. 07:23

[김미경의 아트스피치-이코노미스트]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감 스피치

공직자의 스피치는 실수가 없어야 한다. 순간의 말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은 강단에서 공격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스피치 와중에도 행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청중이 꼭 한두 명씩 있게 마련이다.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이 순간 실수하는 일이 적지 않다.
 
곤혹스러운 위기의 순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다음 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일쑤다. 실언하거나 잘못된 사실을 말한 공직자의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탁월하다. 그는 하루에도 수많은 시민을 만나지만 말로 구설에 오른 적이 거의 없다. 오 시장은 ‘잘하는 것’보다 때로는 ‘실수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오 시장이 말실수가 적은 것은 오 시장이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당황한 강연자는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
 
당황하면 실수한다
 
그는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질문이 쏟아질 때 침착히 대처한다. 그리고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오 시장이 한 대학 강연에서 서울시의 ‘120다산콜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한 청중이 “내가 몇 번 전화해봤는데 걸 때마다 연결이 안 되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눈이 오 시장에게 쏠리는 찰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휴대전화 갖고 계시죠? 이 자리에서 바로 걸어보세요.”
 
결국 상황은 오세훈 시장의 ‘한판승’으로 끝났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 자체가 청중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시장은 위기 상황에서 결코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도 마음에 벽을 치게 만드는 스피치는 실패라는 것이다.
 
그는 시정에 강하게 반발하는 민원인들과도 ‘토요 데이트’를 통해 직접 만난다. 피켓과 확성기를 들고 시청 앞을 점거하는 이들을 시장실로 불러 직접 ‘맞짱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막무가내로 나오던 이들도 막상 토론자리에 앉으면 얘기를 못한다. 이는 그가 논리에 강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하겠지만 워낙 시정 전반을 실무자처럼 세세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한 숫자와 구체적인 ‘팩트’로 시민을 설득한다. 특히 오 시장은 6자리, 7자리 통계를 끝자리까지 정확하게 얘기하는 통에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숫자의 달인’으로 통한다.“제가 원래 숫자를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학창시절에도 수학시험 보는 게 악몽이었는데 시장 되고 나서 달라진 겁니다. 이건 제가 머리가 좋은 게 아니고 철저한 관심이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파고들다 보면 저절로 외워집니다.”
 
오 시장은 “자꾸 시민과 대화를 시도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내공이 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많이 헤맸죠. 그런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니까 여유가 생기면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분이 안 계시면 섭섭할 지경입니다. 청중은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 깊이를 보거든요. 오히려 그런 분들이 계시면 토론이 살아나고 70점, 80점 맞을 것을 100점, 120점 맞으니까 제 입장에서는 고맙지요.”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는다는 오세훈 시장이지만 최근 한 강연에서 철렁했던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건국 60주년 명사 강연에 섰을 때였다. 한 시민이 “서울시의 악취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질문이기도 했지만 서울시가 딱히 악취문제에 대한 명확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오 시장은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 시장은 “악취 문제를 어떻게 시정으로서 풀어갈지 고민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그 질문이 반갑기도 했다”고 말했다. 약 5분간 그간의 경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세히 설명하자 청중의 눈빛이 바뀌었다. 작은 일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시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이 실수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하는 것이 철저한 청중 분석이다. “차에서 내려서 스피치 장소로 가는 1~2분 동안 청중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걸 들으면서 똑같은 콘텐트라도 어떤 어휘를 쓸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더 길게 할 것인가, 뺄 것인가를 즉석에서 결정하는 것이죠.” 
 

 

 
요즘 서울시는 ‘여성이 행복한 서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여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중 주요한 행사였던 ‘여행 경진대회’에서 오 시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대다수의 청중이 여성임을 감안해 감성적이고 따뜻한 단어들을 주로 사용했다. 순식간에 그의 스피치에 빠져드는 여성들을 보며 필자도 오 시장의 남다른 언어감각에 놀란 적이 있다.
 
청중 분석이 실수 줄인다
 
최근 오 시장이 어느 청중 앞에 서든지 반드시 빼먹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워낙 경제가 어렵다 보니 요즘에는 시민들에게 서울시를 많이 활용하시라고 얘기합니다. 시민들을 돕기 위해 서울시가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준비를 해놓았으니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시라는 내용이죠. 그게 전제되어야 서울시가 추구하는 장기적인 계획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시민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 어떤 자리에 서든지 간에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스피치에서 중요한 것이 기술보다 콘텐트라면, 그 콘텐트는 말하는 ‘내’가 아닌 듣는 ‘누군가’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말의 톤에 강약을 준다면 청중을 ‘설득’에서 ‘열광’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시민들에게 친숙함을 주려면 눈빛 하나로 청중을 쓰다듬는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좋다. 따뜻하고 애정 어린 표정은 감동 스피치와 어우러져 한층 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스피치 비법

- 청중을 꼼꼼히 분석해 미리 적절한 단어와 내용을 준비하라
- 스피치 도입부에서 가벼운 질문으로 긴장을 풀라
- 아무리 논리가 맞다 할지라도 마음의 벽을 만들면 안 된다
- 정확한 숫자와 팩트로 청중을 설득하라
 

선을 돌릴 때는 몸도 함께 돌리면서 청중을 바라보라

 

김미경 원장의 원포인트 레슨

- 클라이맥스에서 말의 톤을 높여 청중을 몰입시켜라
-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표정으로 청중에게 어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