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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선수

날마다좋은날 2009. 4. 4. 07:49

역도산 선수
2009/02/06 오 전 6:39 | 스포츠 뒷이야기

나는 그보다 아카사카 술집이라고 하니

역도산 선수가 먼저 떠 올려졌다

리키도상 …김신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일본의 영웅

일본 전통 씨름인 스모선수로 스카우트 되었다가 프로 레스링에 데뷰하여 일본 유도

최강자 출신 기무라를 물리친 후 1958년 미국 원정 경기 중 LA에서 기계체조의
기술을 레스링에 접목시켜 상대 선수를 평행봉처럼 가지고 놀던  인간기계라는

세계 참피언 루테스를 꺽고  참피언 밸트를 거머쥘 때 일본열도는 열광하였다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링 위에서  날카로운 손으로 거구의 미국 선수를
쓰러트릴 때 마다 패전국이라는 자조속에 허물어진  일본인들의 희망은 살아났다

많은 재산을 모아 모국 스포츠 발전에 투자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얼마 되지 않아
야쿠자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난 사람





위키 백과에서 역도산을 찾아 보면

역도산(力道山, りきどうざん 리키도잔[*], 1924 11 14 ~ 1963 12 15)은 일본
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이다.

1924 함경남도에서 태어났다. 나가사키 현 오무라 시의 부농에게 양자로 들어가
모모타 미쓰히로
(
百田光浩, ももた みつひろ)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스모 선수가 되면서 역도산(리키도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0년 스모를 중단하고, 1951년부터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다.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자이언트 바바 등의 여러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1963 12 8, 폭력단 스미요시일가(住吉一家)와의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칼로
배를 찔렸다
. 이 상처가 화농성 복막염의 원인이 되어 12 15 사망하였다


 

 

지금의 격투기와 같이 쇼 적인 구석이 적었던  당시 프로 레스링에서 리키도
상의 플레이 특징은
전혀
반칙을 않 한다는 정의 사도 모습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그의 경기 태도에
혼이 빠져 지금의 욘사마는 저리가라였다

리끼도상.. 반자이… 요꾸데끼

 

 그가 사각의 링에서 승리 할때 마다 TV 제조회사 소니나 내쇼날의 매출은  
엄청난 특수 효과를 보며 상승하였다
 


그는 일본 경제에도 큰 역활을 하였지만
...

 

그는 최 정상에 오르자 뜨겁게 달아오른 일본 열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난 조센징이요….

   

 

역도산 선수가 조센징으로 알려지자 일반 일본국민은 물론 우파들의 실망 또한

부풀었던 희망만큼이나 컸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 당한 거와 비교 한다면 심한가…그 보다 더한 실망과 쓰라림이..

있었을거다..역도산이 우리 일본 사람이 아니라니...

 

 

야쿠샤라면 옛날 에도막부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낭인 출신들이 모여 집단
깡패조직을
만든 것이라 알게 된다

영주들이 지배 하여 다스리던 전국이 도쿠가와에게 통일되고 전쟁이 없어지자..
무사들은  설자리를 잃어 버린다  

떠돌이 무사…주군으로 배척 당한 무사 ..막부에서 파문 당한 주군..

무사 출신이지만 다시는 仕官(사관)을 할 수 없게 폐출 된 낭인이 남의 집 사병(용심봉)으로

들어 가려면 주가를 올리는 뭔가 보여 주어야 하였다

 

칼차고 다니는 녀석들은 많은데 싸울 곳이 없는 녀석들은 싸움을 걸러 떠돌아 다녔다

자신을 알리려고...대표적인 일본의 자랑 사무라이  미야모도 무사시 역시 
그 범주이다...

 

일본인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 조직 깡패는 일본이 자랑하는  무사정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주신구라(忠臣藏) 47 義士의 殉節(순절) ‘충신장’도

같은 줄기이다 

          

 

 막부에서 퇴출 당하여 죽게 된  주군의 복수를 하려는 직업 잃고 떠도는 낭인들의 
충절어린 가슴아픈
이야기도 물고 늘어지면  일본인을 비하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우리는 복수라는 모습을 사회에 보여준다..

"보여주는 거야”

야 임마..역도산 정도나 죽이면 이 바닥에서 출세할까.. 넌 않되 ...

그 말은 하늘이 두쪽이 나면 모를까…와 동급의 말이다

어떻게 하늘 같은 역발산 기개세 깰 수 있을까…

어깨 형님들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을 뜻 없이 내뱉으자

 

되 먹지 못한 전통을 물려 받은 일본 야쿠샤 스미요시 일파의 빌려 준 돈 수금

심부름이나 하던 하급  쫄따구 야쿠샤 무라타 카츠시라…는 그 말을 명심하였다

보여 주자.. 하늘을 두 쪽 내는 것을… 

1963 12 8 10 40,

아카사카 산노시타의 나이트클럽 뉴 라틴쿼터에서  죽을 각오를하고 단지
어깨를 부딛쳤다는 이유로
역도산을 칼로 찔렀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역도산은 

세계 최고의 무술 참피언의 자존심을 발동하였다

“나 역도산이 이정도로 무신 병원 .. 된장이나 바르면 되지…

야 술 한 병 더 가지고 와…”

그 소리를 듣자

무라타 카츠시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걸음아 나살려를 하고 도망 갔으나

역도산의 죽음은  배를 찌른 칼보다 그놈의 자존심이 목숨을 앗아 간 거다

주변에서 하도 권하니까 근처 병원에 가기는 갔는데 그곳은  산노산부인과였다

역도산이 산부인과엘….으하하하

복막을 뚫고 깊숙이 들어간 칼끝이 염증을 만들자  목이 타  병실 꽃병에 있는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자 결국 뱃속 모두 염증이 번지어

사흘 후 복막염이 원인이 되어   40살의 나이…영원한 암흑 속으로 떠났다.

패전국 국민 일본인들에게 암흑의 시절 광명을 준  역도산…

2천년 전 아테네인 들에게 죽임을 당한 소크라테스와 같은 운명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에게 광명 주고도 암흑 속으로…

말을 잘하며  - 아테네 시민들이여…

몸 싸움으로 보여주며 아- 일본 열도의 사람들이여..

특히 역도산은 결혼 한지 6개월 뿐이 않된  경찰서장의 딸이자 스튜어디스 출신의

22살의  게이꼬에게도 엄청난 부와 자유를 주었다

 

게이꼬는 6개월 만에 다시 날개 옷을 찾아 입었는데…아~ 우리 어머니는…..

 

그런 깊은 생각에 잠기는데

아카사카에 도착하여 여배우가 경영한다는 술집으로 가는 도중  역도산 선수의
혼령이 깃들여진
싸늘한 느낌이 내 몸을 감싸는 같았다

 

- 역도산 선수…

자존심을 좀 죽였으면 ,,,,

 

“야 너 어디 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여배우가 경영한다는 쿠라부(Club)을 지나치고 있었다….